평화·인권 울림이 있는 그곳에 가고 싶다

노근리평화공원, 가슴 시리도록 서글펐던 그날을 보듬다 설동본l승인2012.05.1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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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의 아픔을 딛고 억울한 넋, 희생자 추모

노근리평화공원 내 위령탑과 탑신. 높이 25미터의 탑신은 5개 기둥으로 오방(동서남북중)을 나타내며 1950년과 50여년간 노근리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50년의 세월을 상징한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한달 뒤인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5일 동안 충북 영동군 하가리와 노근리의 경부선 철도 및 쌍굴 일대에서 참전 미군에 의해 발생한 피난민 대량학살 사건이 있었다. 당시 미 제1 기병사단과 소속 미군들의 무차별적인 기관총 및 소총사격에 의해 무고한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채 죽어갔다. 인근 미 제25 보병사단에는 피난민 속에 적군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전선을 통과하는 피난민을 적으로 간주해 총격을 가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노근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지금까지 AP통신 기자나 미 국방성 조사반에서 미군이 노근리에서 민간인을 공격한 사실을 증언한 참전 미군은 확인된 사람만 25명에 이른다. 1950년 노근리 사건 발생 직후, <조선인민보>는 사망자만 약 400명에 이른다고 보도하기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정확한 피해규모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인물상이다. 아픈 전쟁역사의 실제적인 이해를 돕고 피난민의 행렬을 사실화하고 있다.
노근리 사건은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사건대책위원회의 활동과 AP통신보도(2000년 탐사보도부문 퓰리처상 수상)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한국전쟁 중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의 구체적인 사례로 꼽힌다. 또한 아우슈비츠 유태인 학살 사건만이 부각되는 현실속에서 제3세계 민간인 학살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며 지금도 진행중인 미국을 비롯 강대국에 의한 전쟁중 민간인 학살 사건의 중요한 사례로써 의미를 갖는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08년 12월 12일, 사망 150명, 행방불명 13명, 후유장애 63명 등 총 226명을 희생자로 결정했다.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건해결을 위한 첫 시도는 1960년 10월부터 시작된다. 이 사건으로 어린 아들과 딸을 잃은 정은용씨는 유가족들의 연명을 받아 서울에 있는 주한미군소청사무소에 공식사과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해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노근리사건에 대해 말조차 꺼내기 어렵게 되버렸다. 1975년 정은용씨는 노근리사건에 관한 중편소설을 발표했고, 10여년간 준비한 끝에 1994년 4월,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장편 실화소설을 출간하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유족들이 나서 내외신 언론기관을 방문하고 취재요청이 이뤄져 노근리사건의 전모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1994년 6월 ‘노근리사건 미군 양민학살대책위원회를’를 결성했다. 이 노근리사건을 무려 21년 동안 추적, 기록하며 국제사회에 널리 알린 장본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현재 (사)노근리국제평화기념관 관장인 정구도 박사(인터뷰기사 참조)다.
쌍굴다리. 그때, 그 아픈 상처가 고스란히 남은 곳이다.

평화기념관으로 재탄생

아픈 상처뿐인 노근리가 이제 인권과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노근리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노근리평화공원이 지난해 10월 활짝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온전히 희생된 영혼을 추모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픔을 딛고 노근리는 평화의 길을 걷게 됐다.

노근리 평화공원은 노근리사건 현장 옆인 옛 노송초등학교 일원 13만2240㎡에 만들어졌다. 191억원의 예산으로 2008년 6월 착공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과 평화기념관(1500㎡), 강의실과 숙소 등이 있는 교육관(2046㎡), 조각공원, 야외전시장 등을 갖췄다.

평화기념관에서는 사건 당시 상황을 영상물과 모형, 패널 등을 통해 관람할 수 있고, 야외전시장에는 1940~1950년대 미군의 주력 전투기이며 노근리사건 공중공격에 동원됐던 F-86F기를 비롯해 군용 트럭(K-511)과 지프(K-111)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공원내 교육관은 최첨단시설을 자랑한다. 연면적 2046 제곱미터에 500여명을 수용할수 있는 국제회의장(동시통역실 포함) 규모의 대회의실이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숙박시설도 안락하게 꾸며져 있는 것도 특징이다.

노근리평화공원 관계자는 “인권평화의 전당으로서 자리매김되고 시민사회와 관련된 대회 등이 역사적인 이곳에서 열리길 바란다”며 “노근리평화공원이 국민과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에게 노근리사건의 진실을 바르게 알리고 인권 및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산 교육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계 인권 메카, 평화확산 전당”

정구도 노근리평화기념관 관장

정구도 관장
노근리 평화공원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유족들과 함께 생과 사를 넘나들며 21년 동안 고군분투한 인물이 있다. 정구도 (사)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노근리평화기념관장)이 바로 주인공.

정구도 관장은 90년대 대책위 기획위원으로서 사건 해결의 결정적 증거확보를 위해 문서자료를 찾아나서는가 하면, 학술논문발표 등 연구에 열을 올렸다. 마침내 1994년 8월, 노근리사건 발생 직후에 학살사건을 취재한 르포기사를 찾아냈고, 이를 이슈화하는데 동분서주했다. 드디어 1998년 AP통신이 이를 받았고 이듬해 노근리사건이 빛을 보게 된다.

“2000년 5월 대책위가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대사를 면담하여 진상조사를 빨리 마쳐 줄 것을 요청했었죠. 15개월간의 진상조사를 마친 뒤 2001년 마침내 클린턴 대통령이 노근리사건 피해자와 한국민에게 유감성명을 발표했지요. 이 일은 세계인권사 측면에서 매우 의미있고, 한미간 이례적 상과이며, 우리 국가의 자존심을 드높인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구도 관장은 한미 양국 정부의 진상조사결과가 미흡하다고 판단, 2001년 진상조사결과의 문제점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이어 2002년 노근리사건특별법 제정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2004년 2월 9일, 우여곡절 끝에 ‘노근리사건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정구도 관장은 21년간의 보람과 감회에 마냥 젖어 있을 수 없단다. 지난 4월 자신이 이곳 노근리평화공원 책임자로 부임한 까닭이다. 제2의 인생이다. 벌써 의미있는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대전 대구 김천 무주 지역과 영동 관내 학교의 방문객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행정기관과 한국외대 정보기록관리대학원에서도 세미나를 열었다. 앞으로 전국 100여개 대학 국사학과에 노근리평화공원 홍보공문을 보내 학부생들의 유적답사코스에 포함시킬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정구도 관장은 특히 2014년 제8차 INMP 컨퍼런스 및 총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선진국 스포츠인 동계올림픽 유치의 경우처럼 평화박물관 분야 국제기구인 INMP의 제 8차 컨퍼런스와 총회행사를 어려운 과정을 통해 지난해 10월 유치했다”며 “아시아 국가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열리고,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한국에 있어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최소 50개국 참가를 목표로 단순한 국제학술대회가 아닌 예술과 문화행사가 어우러지는 품격있고 국격을 높일 수 있는 행사로 추진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이밖에 오는 8월 20일부터 일본 쿄토 리츠메이칸 대학생들이 노근리평화공원으로 평화투어가 예정돼 있는데 내년부터 노근리국제평화재단과 리츠메이칸 대학과의 여름학점제 운영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귀띔한다.

“지난 3월에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제의로 5.18기념재단, 부산민주화기념사업회, 4.3평화재단간 업무협조 및 교류활성화를 위한 MOU도 체결했지요. 5.18기념행사기간에 동아시아 민주인권평화네트워크로 확대 결성할 예정입니다. 시민사회와 연대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전국시민운동가대회 등도 이곳에서 개최되면 정말이지 남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정구도 관장은 노근리평화공원을 아픈 과거사를 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계기를 만든 역사의 진전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이제 노근리평화공원을 세계 인권의 메카로, 평화확산의 전당으로 승화발전시키는 게 제2의 인생이라며 각오를 다진다.


설동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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