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민주화’와 ‘제3의 정치성’을 말하자”

조희연의 시민운동 혁신을 위한 토의(2) 조희연l승인2012.05.1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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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지식정보화 시대와 새로운 정치적 요구와 이해·지향 변화 형태
대중 비판성·저항성, 헤게모니 깨진 중도개혁정당에 미수렴 주목 필요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새 정치성과 시민운동 접속 과제

우리가 현실을 인식할 때 미시적 시각과 거시적 시각이 존재하며, 또한 단기적 시각이 있고 중장기적 시각이 존재한다. 요즘 나는 거시적 시각에서, 그리고 중장기적 시각에서 우리가 직면한 현실변화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대중의 비판성(性)과 저항성에 기반하여 전개되는 사회운동 역시 이러한 현실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한 현실변화에 따라서 대중의 비판성과 저항성의 질적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포스트민주화라는 시대규정

그래서 나는 요즘 ‘포스트민주화’라는 개념을 천착해보고 있다. 특히 2008년 이명박 정부라고 하는 ‘신우파정권(혹은 신보수정권)’의 출범 이후 현재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포스트민주화라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失政)과 문제들을 단지 ‘정부 수준’의 문제로만이 아니라 더 큰 거시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해보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이다.

주지하다시피 87년 이후 구 독재체제를 민주주의체제로 전환해가는 거대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를 87년 체제 혹은 민주화체제라고 표현한다. 87년 이전 진보의 핵심적 과제가 ‘반독재’였다고 하면, 87년 이후 지난 20여년 동안의 핵심적 과제는-반독재의 과제를 이어받은-민주개혁 혹은 독재체제의 민주화라고 하는 것이었다.

87년 이후 민주화 체제는 반독재의 과제를 이어받은 민주개혁의 과제가 주된 과제로 존재하던 시기였고,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상징성을 갖는 반독재 중도개혁자유주의정당(민주당 등)이 정치적 중심에 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포스트민주화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러한 민주화 ‘이후’ 체제로 돌입했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미 민주화체제 하에서 ‘정형화’되어 존재하였던 정당, 정부, 통치, 운동, 시민사회, 대중과 거대한 변화의 와중에 놓이게 되었다.

최장집 교수는 그의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이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때 ‘민주화 이후’는 민주화가 시작된 이후 시기, 따라서 크게 보면 87년 체제를 주로 가리킨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민주화체제를 뒤로 하고 시작된 포스트민주화 시대는 이른바 ‘독재 대 반독재’, ‘(민주)개혁 대 반개혁’의 구도가 주변화되고 새로운 대치선을 둘러싼 각축의 시기라고 하는 의미를 담는다.

결국 나는 포스트민주화라는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한국사회 혹은 한국민주주의가 87년 이후의 하나의 사이클에서 새로운 사이클로 전환되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민운동의 콘텍스트의 변화를 말한다.

포스트민주화체제의 성격

그렇다면 이 포스트민주화 체제의 성격은 무엇인가.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새로운 현상들-예컨대 일찍이 촛불시위에서 보여진 바와 같이 조직화된 시민운동을 뛰어넘는 대중의 역동성, 기존의 정당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과 이반, 기존의 운동틀로 포괄되지 않는 비조직적이고 무정형(無定型)적인 새로운 역동성의 출현, ‘99대 1’로 상징화되는 기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구별되는 새로운 불평등의 출현 등-을 이러한 포스트민주화라는 시대규정과 관련해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어느 사회에서건 체제의 모순으로 인하여-정치체제와 경제체제의 불안전성과 결합으로 인하여-대중들의 삶에서 발생하는 불만과 거기에서 유래하는 대중의 잠재적 비판성과 저항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것들은 즉자적인 ‘사회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임계점에 이르게 되면 ‘정치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운동이 수렴해야 하는 이러한 비판성과 정치성을 줄여서 정치성(性)이라고 표현해보자. 이러한 새로운 정치성은 충분히 대의·반영되지 않고 그래서 부유(浮游)하는 새로운 정치성이 광범위하게 출현한다. 안철수 현상도 나는 이것의 한 현상이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라고 하는 신우파정부 하에서 새롭게 3가지 정치성이 출현했다고 생각한다. 첫째, 미완의 민주주의개혁, 민주주의개혁의 후퇴에서 발생하는 정치성이다. 이는 민주화 체제 하에서 성취된 민주주의개혁의 후퇴와 퇴행에 따른 위기감에 기초하여 민주화체제의 성과를 방어하고 민주화 정신의 확장과 심화를 지향하는 데서 발생하는 정치성이다.

둘째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도전 속에서 허구화된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 차원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지향에서 발생하는 정치성이다. 비정규직, 양극화, 고용불안정 및 실업, 청년실업, 중소자영업자층의 붕괴, 도시 및 농촌 빈곤의 증대 등 대중들의 사회경제적 삶의 악화에서 발생하는 정치성이다. 그 근저에는 평등과 공평(公平)에 대한 가치지향이 근저에 존재한다.

‘제3의 정치성’

셋째는, 이런 정치성으로 포괄되지 않는 지구화·지식정보화 시대와 포스트개발자본주의화의 조건 속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정치적 요구와 이해, 지향들이다. 이를 ‘제3의 정치성’이라고 불러보자. 이는 지구화와 이른바 ‘탈근대화’, 지식정보화로 인하여 변화된 삶의 변화와, 그 삶을 규율·통제하던 기존의 정치시스템·통치 시스템이 괴리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정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번째의 정치성은 무정형(無定型)적이기도 하고,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를 ‘제3의 정치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첫째가 독재와 권위주의의 유산과 관련된 것이고 둘째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고 새로운 형태로 증폭되어 나타나는 신(新)불평등의 문제라고 한다면, 셋째는 경제적으로는 ‘풍요의 모순’ 혹은 ‘왜곡된 풍요의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인의 자유와 자율에 대한 새로운 요구, 다양한 탈권위주의적 요구들, 사이버 공간에서의 통제에 대한 저항, 생활세계적 영역에서의 다양한 탈권위주의적 요구들, 교육, 소비 등의 삶의 영역에서의 삶정치적 쟁점들, 환경생태주의적 요구 등을 포함하여 이전의 프레임으로 포괄되지 않는 새로운 정치적 성격을 갖는 분노와 저항성이 셋째에 포괄될 수 있다. 이른바 ‘탈근대적’이라고 표현되는 이슈들이 이러한 저항성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정치성의 근저에는 개인의 반권위주의적 자유와 자율, 공정(公正)성에 대한 가치지향이 근저에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하나의 예를 들어 제2의 정치성과 제3의 정치성을 설명해보자.

한동안 ‘탈정치화’되는 것처럼 보여졌던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 세대들이 그들이 직면한 새로운 사회경제적 조건에 매개되어 ‘재정치화’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새로운 정치성은 우리와 같은 독재 하에서의 젊은 세대가 ‘반독재민주화운동’이라는 양식에 수렴되었던 것과 다르게국 민소득 3만불과 같은 상이한 경제적 조건, 인터넷과 SNS와 같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조건에 매개되면서 현재와 같은 표현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경제적 모순에 기반하는 제2의 정치성도 변화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비정규직 문제, 정리해고 등을 예로 들어보자. 이것은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98년 김대중 정부 이후 전면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런데 사실 김대중 정부에서는 큰 저항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2년만에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하는 찬사 속에서 묻혀버렸다. 그러나 그런 유연화가 가져오는 고용의 불안과 불안정, 실업의 확대, 양극화는 노무현 정부 중후반 이후 전면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중도개혁정부에 대한 ‘좌절’도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한맺힌 투쟁들은 계속 되었지만 그것이 대중적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대중들이 그러한 현실을 순응하고 적응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지배적인 태도가 순응적 기조 위에 서 있고 그러면서도 뭔가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상황에서의 대중의 선택이 어떤 의미에서 이명박의 대선 승리였다고 할 수 있다.

성장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약속하는-747공약이나 ‘선진화’담론으로 무장한-이명박 후보가 일종의 ‘순응적 불만’을 갖는 대중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이명박 정부의 초중반을 거치면서 점차 변화하였다.

참여정부 보다도 더 친기업적이고 성장위주의 이명박 정부 하에서 역으로 좌절은 정치적 분노와 저항적 요구로 변환되기 시작하였다. 민주정부 10년,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초중반은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를 ‘불가피한’것으로 수용되면서 그것에 대해서 대중이 적응적 경쟁을 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작동하던 시기였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이나 정리해고의 현실을 순응 혹은 적응적 경쟁을 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던 상태에서,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저항의 대상으로 삼는 방향으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새로운 제2의 정치성이라고 본다. ‘희망버스’의 성공적 진행도 이러한 새로운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고 하겠다.

첨예한 쟁점영역으로서의 제도정치

그런데 이러한 정치성의 변화와 관련하여 가장 첨예한 쟁점영역이 바로 제도정치, 그 일부로서의 정당정치영역이다. 기존의 정치세력들은 바로 이러한 정치성의 변화에 가장 첨단으로 맞닥뜨리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러한 정치성은 기본적으로 비판성이자 저항성이기 때문에, 민주화 체제 하에서 주도적인 야당이었던 반독재 중도개혁정당, 즉 민주(통합)당이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런데 ‘반독재세력이 독재에 대항하는 투쟁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민주화체제의 후반부에 전면적으로 제기된 세계화의 도전에 적절히 응전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헤게모니를 상실하게 됨으로써, 포스트민주화 시대에 대중의 비판성과 저항성은 일관되게 중도개혁정당에게 수렴되지 않는다(이것이 이른바 ’연합정치‘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중도개혁정당의 헤게모니 균열과 함께, 한국 보수정당의 천민성, 권위주의, 국가주의는 당연히 새로운 정치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기성정당에 대한 광범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새로운 정치성은 기성의 정당 모두에 위협적이기 때문에, 심지어 보수정당인 새누리당 조차도 이러한 위협적 상황에 대응하여 자기변신과 혁신을 하게 된다.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가 민생, 복지,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했던 것도 이러한 변신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존의 주류정당에 대한 불신과 이반은 진보정당에게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진보정당은 이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정치성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에 서 있었던 것이 진보신당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 평화, 평등, 탈권위주의 등의 지향을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정당은 대중의 새로운 정치성을 전유하는데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살리지 못하였다. 최근에는 통합진보당 사태처럼 오히려 ‘퇴행’적 모습 마저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기성정당과 새로운 정치성 간의 괴리, 정당이나 정치세력들의 큰 위기와 도전에 직면하는 것은 사실 전지구적 현상이기도 하다.

즉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파괴적 공습으로 ‘사회 자체의 해체적 위기’가 출현함에도 불구하고, 국제경쟁력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나아가 ‘기업사회’가 되면서 그나마 정당정치의 역할이 더욱 제약?왜곡된다. 여기서 대중의 새로운 정치적 요구와 이해, 감수성을 담아내지 못하는 기존 정당들에 대한 대중의 광범한 불신과 이반이 편만해 있는 현상이 일반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정당은 정당대로, 운동은 운동대로 혁신 요구받아

이러한 새로운 저항성과 정치성의 출현이라고 하는 새로운 포스트민주화의 조건 속에서 정당은 정당대로, 운동은 운동대로 자기혁신을 해야하고 자기를 풍부화시켜야 한다. 새로운 정치성에 ‘접속’하고 이를 수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즉 정치와 운동은 한편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확대발전시키면서 대중의 사회경제적 요구를 끌어안아야 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기존의 프레임에 포괄되지 않는 새로운 정치성(性)을 끌어안는 것은 물론 그러한 정치성을 담지하는 새로운 주체들과 연대하고 하나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포스민주화 시대의 진보적·개혁적 정당과 운동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굳이 강조하여 포스트민주화라고 하는 문제설정을 하는 것은, 반독재 민주주의 담론, 민주개혁 민주주의 담론이 이전과 같이 강력한 호소력을 갖지 않게 되었으며, 포스트민주화시대에 조응하는 새로운 재구성과 혁신·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는 민주주의 담론이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명박정부라고 하는 신보수정부가 60·70년대 개발독재적 보수와 연속성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듯이, 포스트민주화라는 새로운 각축의 조건(지배와 저항의 각축, 보수와 진보의 각축 등) 하에서 진보는 민주화 시대의 진보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나는 민주주의의 후퇴와 퇴영에 견결히 저항하면서도(이른바 ‘반MB’로 표현되는 ‘연속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핵심적으로 정치와 운동이 제2의 정치성, 즉 현재의 사회경제적 모순에 대응하는 저항성과 정치성에 부응하는 형태로 자신을 급진적으로 재구축하는 기조 위에서, 제3의 정치성을 접합시키기 위해 각축하고 스스로를 풍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운동전략이라는 측면에서 표현하면 ‘반신자유주의투쟁’과 제3의 정치성을 담지하는 다양한 민주적 투쟁들을 접합시키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포스트민주화 시대에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의미를 이러한 새로운 정치성을 해결하는 담론으로 급진화시키면서(그래서 나는 ‘급진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그를 기반으로 한국민주주의를 한단계 높은 수준으로 전환시켜 가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의 국가·정치·경제가 그에 대응하는 한단계 높은 공공성을 담지하고 실현하기 위한 형태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른바 ‘2013년 체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국의 국가, 정당, 경제, 시장, 시민사회에 공공성을 확대관철시키는 것이 될 것이고, 이는 운동이 이러한 새로운 정치성들과 접속하고 수렴하면서 한단계 높은 공공적 민주주의를 추동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힘을 만드는 조건 위에서 일 것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NGO대학원장(민교협 공동의장)

조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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