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일손과 시골 고교

책으로 보는 눈 169 최종규l승인2012.09.1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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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을로 접어드는 날씨를 누리며 들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달립니다. 지난 2011년에 전남 고흥 시골마을로 들어온 우리 식구한테는 아직 우리 땅이 없이 이웃 할머니나 할아버지처럼 흙을 일구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땅이 없으니 네 식구 오붓하게 나들이를 다닙니다. 자전거를 몰아 이웃마을로 가고, 택시를 불러 바닷가를 다녀옵니다. 오가는 택시삯 만사천 원이면 하루 내내 바다를 실컷 누립니다. 나중에 우리 땅을 장만하면 우리도 한가을에 무척 부산할 테지, 하고 생각하며 할머니들 콩털기를 바라봅니다. 할아버지가 경운기를 몰아 콩포기를 밟으면 할머니는 곁에 주저앉아 나무방망이로 텅텅 하고 두들깁니다.

시골 마을 일손은 하나같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뿐입니다. 아주머니나 아저씨조차 볼 수 없으며, 젊은이나 푸름이나 어린이는 아예 없습니다. 젊은이는 거의 모두 도시로 나가 회사원이나 공장 일꾼이 되었고, 푸름이와 어린이는 학교에 있습니다.

시골마을 고흥군은 2012년 겨울에 나로섬에 있는 나로고등학교가 문을 닫습니다. 2014년 겨울이 되면 거금섬에 있는 금산고등학교가 문을 닫습니다. 학생 숫자가 적으면 학교를 닫을 수 있다지만, 나로섬과 거금섬 학교 학생은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고등학교가 통폐합되어 읍내 고등학교로 가야 한다면, 이 아이들은 집하고 떨어진 채 무척 먼 곳에서 어릴 적부터 ‘타향살이’를 해야 하는 셈입니다.

교육행정 맡은 분들은 아이들 하나하나를 헤아리거나 사랑하면서 일을 하는지, 아니면 숫자와 실적에 맞추어 효율과 능률을 따지며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셀마 라게를뢰프 님이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청소년문학 《닐스의 신기한 여행》(오즈북스,2006) 1권을 읽습니다. 1906∼1907년에 쓴 이 문학책은 ‘스웨덴 교육부’에서 작가 한 사람한테 맡겨서 쓴 ‘지리 수업 부교재’라고 해요.

“한 번이라도 저녁에 덤불 속에서 들려오는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들으면서 여기 암벽가에 앉아 저기 저 너머 칼마르 해협을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섬이 다른 섬들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생겨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208쪽).” 같은 이야기가 흐르는 ‘지리 수업 부교재’가 1906∼1907년에 태어날 수 있던 스웨덴 교육 행정을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서는 어떤 교재와 부교재로 아이들한테 마을과 이웃과 어버이와 동무를 사랑하거나 아끼는 길을 밝힐까요.

정영신 님이 한국땅 골골샅샅 누비며 사진을 찍어 빚은 《한국의 장터》(눈빛,2012)라는 두툼한 책을 읽습니다. “차들이 다니지 않았던 오래전 어린 시절의 장터를 상상해 본다. 사람들은 현대식 의복도 아닌 허름한 옷차림에 짐 보따리를 이고 지고 나와 공터에 보따리를 풀어 놓았을 것이다(61쪽).”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문명은 더 높아지고 기계는 더 나아진다는데, 사람들 살림살이는 어느 만큼 즐겁게 거듭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기계를 쓰거나 쓰리디 영화를 볼 수 있는 오늘날은 참으로 즐거운 지구별일까요. 고등학교도 중학교도 초등학교도 한가을 바쁜 일철에 ‘아이들 어버이’나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일손을 거들지 못하지만, 누구나 콩밥을 먹고 쌀밥을 먹으며 상추쌈을 먹습니다.


최종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를 쓴 사람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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