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양(羊)띠해, 인류학의 한 대목을 보는 듯
양을 보고 심사가 뒤틀릴 사람은 없다. 순하디 순한 두 눈과 둔중한 그 몸매에서 공격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선량함의 극치다. 그래서일까, 양(羊)은 상서(祥瑞)로운 길상(吉祥)의 동물이다.
12지신도의 양[미(未)]신 그림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두 단어 상서와 길상의 상(祥)자는 상서롭다, 복 받는다는 의미다. 제사상[시(示)]과 그 녀석 양(羊)을 함께 쓴 글자가 상(祥)이다.
제사상 위의 양이라, 동아시아 문자의 새벽 갑골문 시대 사람들의 느낌도 우리와 같았던가보다. 보면 기분 좋은, 그래서 신(神)에게 바치고 싶었던 동물이었겠지.
희생(犧牲)은 천지신명(天地神明)에 제사 지낼 때 바치는 동물을 말한다. 두 글자에 다 소 우(牛)자가 부속품으로 들어있지만, 희(犧)자에는 이 녀석 양의 글자도 들어있다.
소와 양을 갑골문 시대 황하 유역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려 글자로 활용했는지를 보는 것은 흥미롭다. 두 글자 다 머리(얼굴)를 정면에서 바라본 그림이다.
그림에서 글자로, 그 상징(象徵)의 변용(變容)이 동양 문자 즉 한자의 역사이자 핵심이다. 한자는 원래 그림이다. 그 글자들이 뜻을 품고 있는 인연이다.
왜 양과 소의 그림이 희생의 글자에 들어 있는지, 왜 그 제사 동물이 오늘날의 ‘희생’의 의미로 쓰이는지, 새해 아침의 명상에 끼워 넣을만한 화두(話頭)다.
서양 종교에서 기원한 말일러라, 희생물(犧牲物)로서의 양을 희생양(scapegoat)이라고 하는 까닭도 아울러 생각해야 한다. 지구촌 여러 지역의 첫 인류들이 함께 가진 비슷한 생각이나 행동양식에 대한 궁리 즉 인류학(人類學)의 한 대목을 보는 듯하지 않는가?
상(祥)이나 희(犧) 뿐인가? 착할 선(善)과 아름다울 미(美) 글자의 핵심이 이 양의 그림(글자)이다.
양정(羊鼎)과 양정의 세 발 중 하나에 조각된 양 모양. 옛날에는 소나 양을 끓여 제사할 때는 각각 다른 솥은 썼다. 소를 희생물로 삼았을 때 쓰던 솥은 우정(牛鼎)이다. 鼎은 발(받침)이 셋 달린 솥이다.
바다[양(洋)]에도 羊자가 들었다. 우리 이름의 성씨에도 있다. 필자 이름에도 있는 강(姜)씨다.
올해가 양[羊, 여덟째 지지로 未)의 해 을미년(乙未年)이니 이를 아는 사람 모두, 특히 이 글 대하는 귀하는 큰 복을 받을진저.
그 녀석의 평화와 순종의 미덕이 세상을 휘감아 북녘의 저 심통쟁이들까지도 기쁘게 착함을 행하는 시기가 되리라 상상하고 간절히 염원한다. 하는 양을 보면 어쩌면 사람보다 더 존엄해 보이기도 하는데.
모양은 낯설지만, 그 녀석은 양고기라는 존재로 우리 주변에 이미 가까이 와 있다.
아시아 나라들의 귀한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음식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안 먹어 봐서 못 먹는다.”면 당신의 ‘국제화 지수(指數)’는 꽝, 새로운 문물이 주는 즐거움을 새해부터는 더 누리시길 권한다.
더구나 ‘양(陽)을 돋우는 식품’이라니, 쫒아가서 먹어야 하지 않겠나?
“유유자적(悠悠自適), 은혜를 아는 동물”
양[未]은 12지의 여덟 번째 동물이다. 12지신의 양은 시간으로는 오후 1시에서 3시, 달[月]로는 6월에 해당한다. 방향으로는 남남서(南南西)를 지키는 방위신이다.
출토유물, 조각, 그림 등 고고학과 역사가 품은 양의 모습은 위기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은,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여유와 멋을 느끼게 한다. 평화와 순종의 모습이기도 하다. 정의(正義)의 상징으로도 묘사된다. 義 글자 안에 양(羊)의 모습이 괜히 들어간 것이 아닐 터다.
젖을 빨 때 무릎을 꿇는 행태를 보며 사람들은 ‘은혜를 아는 동물’이라고 한다. 무리를 지어 군집생활을 하면서도 우위를 다투거나 암컷을 독차지하려 하지 않는다.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함도 있다. 성격이 부드러워 좀체 싸우는 일이 없으나 일단 성이 나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多血質)이기도 하다. 양의 일반적인 성질이다.
강상헌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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