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불편’의 실천

[시민운동 2.0] 박경진l승인2007.10.2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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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나눠 주실 분?” “얼갈이배추 필요한 사람?” “파 좀 더 가져갈래요?”

시끌벅적한 장터(?)같은 이곳은 두레생협연합회 조합원들이 생활재를 나누고 있는 곳이다. 필자는 두레생협연합회의 홍보담당자로서 취재를 위해서 생활재 나눔으로 분주한 이분들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지나가는 이웃 주민들이 ‘장이 섰냐’ 며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서 열심히 생활재를 나누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실제로 옛날 장터와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정겨웠다.

편지담긴 채소꾸러미

개인화되는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모임을 통해서 생활재를 공급하던 생협도 대부분 개인공급으로 바뀌었다. 인터넷의 발달은 쇼핑몰이라는 편리한 매체를 제공해 주어서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쇼핑몰을 이용해서 주문을 하고 각자의 집에서 공급을 받는다. 그러나 여전히 모임 공급을 고집하며 올 초부터 ‘제철채소꾸러미’ 라는 사업을 새롭게 시작한 지역이 있다. 이 사업은 제철에 나는 채소를 생산지에서 꾸러미를 만들어서 보내면 조합원들이 나누는 시스템이다. 낱개 포장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비량에 주문량을 맞추던 시스템에서, 생산량에 맞추어 소비자가 이용하는 역발상의 시스템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깍두기를 담으려고 무를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무가 많이 오면 깍두기를 담는 식이다. 인간의 필요 중심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만큼 제공받게 되는 자연중심의 가치가 깃들어 있다.

꾸러미 안에 어떤 채소가 들어 있을지는 생활재가 도착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사실 처음 이 사업이 제안 되었을 때는 조합원들의 호응이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단다. 실제로 초기에는 젊은 주부들이 채소의 양이 많거나 요리해 보지 않은 채소가 올 때면 당황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채소꾸러미 태풍이라는 말도 생겨났다고 하니 꾸러미를 여는 공포(?)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면서 채소꾸러미를 선물처럼 여기는 조합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생산지에서 정성스레 써주신 편지를 읽으며 생산지의 날씨와 작황을 걱정하는 조합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어떤 채소가 들어 있을지 기대감에 맘이 설레기도 한단다. 가끔 시골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선물 꾸러미처럼 몇 알의 과일이나 풍성한 옥수수에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기쁨 2배, 식탁은 풍성

더욱 놀라운 일은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는데, 본인에게 주어진 채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나눠주기도 하고 넘치는 채소는 자연스럽게 더 가져가기도 하는 것이다. 가까운 대형 마트에만 가도 값싼 물건을 사려고 서로 경쟁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30년쯤 거슬러간 풍경 같아 새삼 낯설기조차 했다. 채소꾸러미를 받으면서 터득한 방법이라며 살짝 귀띔한 한 조합원은 어떻게 해서 먹어야 할지 모르는 채소는 이웃에 나눠 드리기도 했는데 받는 분도 좋아 하시고 조리법을 덩달아 배우는 경우도 많아서 식탁이 풍성해졌다고 자랑하신다. 이제 ‘제철채소꾸러미’는 하나로 축제로 자리를 잡은 듯 했다.

조그마한 불편도 감수하지 않으려고 하는 요즘 세태에 이렇게 불편함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훈훈함을 안겨준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 사업에 약간의 의구심을 보였던 필자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만일 이름 모를 채소를 제공받는다면 어떻게 할까, 무가 10개쯤 주어진다면?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필자는 김치를 담궈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할 줄 아는 요리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지경이다. 새삼 이분들의 행위가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찰나이다. 그러나 취재과정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결코 대단하거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채소꾸러미에서 만난 조합원님들도 그러했다. 아마도 보통의 자선 행위처럼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행하고 있는 크고 작은 실천이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생활 속에서 이 분들이 얼마나 의미 있고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찾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을 한다. 그것이 홍보담당자로서의 내게 주어진 감사한 몫이며 이 공간에서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박경진 두레생협연합회 홍보팀

박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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