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책을 읽냐고 묻는다면"

'비정규직 읽기' 등 다양한 독서프로젝트

누군가 “How are you?”라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답한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취미가 무엇인지 고민할 새도 없이 우리의 입에선 자동적으로 ‘독서’라는 단어가 나온다.

물론 우리는 늘 ‘독서’를 하고 있다.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나눠주는 무가지를 읽고, 사무실에선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를 잘 만드는 책을 읽고, 틈틈이 ‘직장상사에게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이나 ‘나는 이렇게 10억 모았다’, ‘하루 10분 투자로 주식 대박나기’ 등의 처세술서까지. 퇴근길에는 영어 점수를 높이기 위해 토익책을 뒤적이기도 한다.

하지만 ‘독서’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독서가 교양의 한 행위로써, 나를 꾸미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 되는 책 읽기가 뭔지 고민하던 사람들이 모여 느슨한 연대를 맺은 것이다. 자신들을 ‘책을 사랑하고, 책을 통해 세상을 읽고,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모임’으로 소개하는 ‘시민지식네트워크’가 그들이다.

처음 이 네트워크를 기획해 제안한 사람들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원들이었다. 연구를 위해 늘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너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만 책을 읽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시민지식네트워크

시민지식네트워크를 위한 독서프로젝트 '우리의 불안정한 삶, 비정규직을 읽는다'의 선포식이 열린 지난 13일 청계광장에서 참가자들과 시민들이 식전행사에서 소통하는 네트워크를 형상화한 걸개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를 위해 읽는 책?

이 고민은 연구자로 사는 것도 이 사회를 사는 것인데 내가 속한 사회와 별개로 책을 읽고 그저 ‘연구활동’에 그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또한 이 문제의식은 지난해부터 가을마다 진행해온 학술제 프로그램 중 이런 고민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일을 벌이자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시민지식네트워크를 위한 독서프로젝트 ‘우리의 불안정한 삶, 비정규직을 읽는다’가 탄생하게 됐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원들을 중심으로 준비 모임을 통해 무슨 책을 어떻게, 왜 읽을 지에 대한 논의 중 ‘불안’이란 단어로 의견이 모아졌다. ‘불안’을 현실에 대입해 보니 ‘비정규직 문제’로 치환이 가능했다. 그렇게 첫 번째 독서프로젝트의 주제가 결정됐다. 이 주제에 맞게 프로젝트에 참여할 의사를 표시한 단체 혹은 모임들은 스스로 책을 정하고 모임과 나눔의 방법을 정해 정기적으로 각자 진행한 후 인터넷 공간에 알리기만 하면 된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비정규직 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보자는 생각에 KTX 여승무원들의 수기집인 ‘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와 20대 비정규직의 삶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88만원 세대’, 여러 분야 비정규직의 삶을 진솔하게 기록한 ‘부서진 미래’ 등 세 권을 읽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 이런 제안을 했을 때 오해를 받기도 했다. “순수하게 책을 읽자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 건 지나치게 정치적인 것 아니냐, 혹시 민노당 쪽 단체냐, 나는 정규직인데 왜 비정규직에 대해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김연숙 연구원은 말했다. “하지만 책을 읽음으로써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고 문제제기를 해보자는 우리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했더니 조금씩 동의를 구할 수 있었다”고 김 연구원은 덧붙였다.

28일엔 연구공간에 이번 독서프로젝트에 참가하는 40여개의 모임 당사자들과 일반 시민들이 함께 모여 ‘축제: 책으로 바꾸는 세상’을 진행했다.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독서프로젝트 참가자들이 모처럼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고 소통하는 자리다. 오픈 포럼의 형식으로 세대 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논의의 시간과 한국의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순서도 마련돼 있었다.

실험은 현실서 의미 된다

다음달 17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독서프로젝트가 어떤 결과를 나을 수 있을까. 김 연구원은 “사실 어떻게 끝나게 될지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다음달 17일이 폐막인데 그 이후에 또 다시 다른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할지, 이번 프로젝트만 잘 정리를 해 기록으로 남길지는 나중에 얘기해봐야 할 문제”라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주제를 정해 책을 읽고 소통했다는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결과물을 꼭 만들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김 연구원은 말했다.

한편 지난 13일에는 청계천 청계광장에서 출범식을 진행했다. 식전행사로는 시민들의 소통네트워크를 형상화 한 걸개그림을 참가자들과 지나가던 시민들이 모두 참석해 꾸며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또한 사전공지를 통해 참가자들이 갖고 온 비정규직과 관련된 책을 청계광장 여기저기에 앉아 5분 동안 읽는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다 읽고 나서는 옆에 있는 사람과 책을 교환해 소통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도 있었다.
전상희 기자

전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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