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재 양성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가 훌륭한 인재 양성에 최선을 다하겠다.” 지난 5월 17일 ‘임시이사의 정이사 선임 결의 무효 확인’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 직후 김문기 전 이사장은 환호했다. 민주 시민대학을 자부하던 상지대에 다시 암운이 깃들기 시작했다. 김문기 전 이사장의 끊임없는 복귀 시도가 지난 5월 대법원 판결에 힘입어 다시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묘한 시점이 겹쳐졌다. 7월 사학법 개정안 통과에 따라 그동안 교육부가 해온 이사 선임 권한이 독립기구인 ‘사학분쟁조정위’로 사실상 이관된 것이다. 사학분쟁 학원 모두 초미의 관심사로 지켜보고 있지만 대선과 국감 등 거대 이슈에 묻혀 ‘사학민주화의 토대’가 될 것인지, ‘보수화 경향 퇴보’로 갈 것인지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학분쟁조정위 구성에 대한 관심은 떨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사학개혁의 상징과도 같았고, 사학분쟁조정위가 구성되면 논의 1순위로 지목되는 상지대는 또다시 사학민주화의 고삐를 죄고 있다. ‘사학비리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렸던 김문기 전 이사장이 복귀 의지를 다시 살리고 있는 것은 사학법 개정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여타 사학재단과 보수 언론 등의 지원사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다가온 상지대의 위협과 미래는 비리사학에 맞서 온 교육개혁세력, 나아가 민주화세력의 공동 대응과제가 되고 있다. 상지대를 찾아 만난 교수 학생 직원 등 학내 주체들은 ‘상식과 진실’이 살아 있는 한 구 재단의 복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결의를 모으고 있었다. 이번 주 이슈리포트는 상지대의 앞날을 진단한다. 기획취재팀

상지대 ‘구 재단’ 복귀 시도 차단 최고 관심사
임시이사 파견 학교 문제 해결 가늠자로 지목

사학의 ‘비리종합선물세트’라는 오명을 받으며 문민 사정 1호로 지목돼 실형을 받고 상지대에서 물러났던 김문기 전 이사장이 복권을 기대하고 있다. 민주·시민대학을 자부하던 상지대 구성원들은 한 목소리로 김 전 이사장의 재등장에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대선시기와 사립학교법 개정에 따른 이사 선임 방식 변화 등으로 사학개혁의 상징이었던 상지학원의 문제 재발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 환호한 김문기 씨=상지대 전 이사장 김문기 씨의 사학비리는 김문기 씨 측의 부정과 별개로 이미 널리 알려진 바다. △부정편입학 △직원 봉급포기각서 강요 △학원 이용 땅투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부정입학 부분이 유죄로 인정돼 지난 93년 김문기 씨는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86년에는 ‘가자, 북의 낙원’으로 등의 유인물이 학내에 뿌려졌고, 당사자로 학생회가 오인 받았으나 이후 내부 고발자에 의해 당시 학생과 직원이 김문기 씨의 사위인 총장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아 뿌린 것으로 밝혀진 ‘상지대 용공조작 사건’도 있었다. 국가보안법상 무고 행위에 대해서도 동일한 형량을 적용하는 조항이 있지만 시효가 지나버린 뒤라 적용되진 않았다.

김상택 기자

정이사 체제 구성으로 정상화 기반을 구축했던 상지대가 김문기 전 이사장의 복귀시도와 대법원 판결, 그리고 사학분쟁조정위 구성으로 다시 혼돈의 길을 걷고 있다. 상지대 정문 앞에 걸려 있는 '구재단' 복귀 반대 플래카드.

이후 지난 93년부터 10년간 상지대는 교육부가 파견한 임시이사 체제가 지속됐다. 그러다 2003년 12월 상지대 임시이사회가 9명의 정이사를 선임하고, 교육부가 이를 받아들여 2004년부터 정상적인 대학의 모습을 갖췄다. 하지만 김문기 씨가 다시 등장한다. 같은해 1월 김 씨는 ‘임시이사의 정이사 선임 결의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선 상지대 측, 2심에선 김문기 씨 측이 승소했고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지난 5월 17일 김 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로 정이사로 선출된 변형윤 이사장, 최장집 고려대 교수,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 등은 자격을 상실했다. 김 씨는 대법원 앞에서 환호했고, 상지대 구성원들은 또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판결 해석에 대한 논란=대법원의 판결은 즉각 논란으로 이어졌다. 비리 이사장에 소송제기권을 확대한 공교육 사유화 조장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리고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해석이 분분히 쏟아지고 있다.

김 씨측 입장을 대변하는 ‘상지학원·상지대 진실규명 및 설립자 학교 찾아주기 운동본부’와 ‘전국NGO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전대열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고문은 “대법원 판결은 청암학원(상지학원의 전신)을 인수해 새로 설립한 ‘인수설립자’로 20년간 학교를 운영한 김문기 씨가 상지대 설립자임을 확인해 준 것”이라며 “7월 대법원의 ‘경기대 판결’과 더불어 판단한다면 학교 긴급사무처리권 역시 김문기 씨에게 돌아 갈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대 판결’이란 지난 7월 19일 대법원 전원합의부가 소송으로 해임된 이사들의 권리가 회복되고 임시이사의 직무 권한이 상실되면 ‘종전 이사’들이 후임이사 선임 때까지 긴급처리권을 갖고 후임 이사도 선임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을 말한다. 상지대 사건에 이어 사학의 자율성만을 크게 강조하는 새로운 판례로 주목받았다. 경기대 사건은 지난 2004년 당시 총장이 교수 임용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자 교육부가 임시이사를 파견한 사건이다.

상지대 구성원들은 그러나 △임시이사가 정이사 선임을 하지 못한다 △긴급사무처리권은 구재단이 아닌 직전 임시이사가 맡는다. △그렇다고 구재단이 이사 선임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등으로 요약되는 5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김문기 씨가 반드시 환호할 만한 것은 아니다’란 입장이다. ‘종전 이사’가 아닌 ‘직전 임시이사’는 2004년 정이사 체제를 수립한 임시이사들이란 설명이다.

조석곤 상지대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는 “대법원 판결이 김문기 씨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며 “그에게 학교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긴급사무처리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예”라고 지적했다. 박병섭 상지대 부총장은 “대법원이 자연인 김문기 씨의 손을 들어준 것은 없다”며 “과다하고 일방적인 김 씨 측 해석에 개혁을 두려워하는 다른 사학과 보수 언론 등이 동조하는 형국”이라고 지목했다.

◇또다른 변수, 사학분쟁조정위=대법원 판결에 따른 혼란은 이내 또다른 국면을 맞았다. 지난 7월 임시이사가 선임된 사립학교의 정식이사 선임과 관련, 종래 학교구성원들에게 보장되었던 의견진술권과 3분의 1이상의 정식이사 추천권이 삭제되고 대통령 3인, 국회의장 3인, 대법원장이 5인을 추천해 구성하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심의결과에 따라 선임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 사립학교법이 통과된 것이다.

상지대의 경우 5월 대법원 판결 이후 내년 6월까지 임기가 규정된 임시이사가 선임된 상태다. 현재 임시이사가 선임된 상지대를 비롯한 다른 학교의 정식이사체제로의 전환이 급격하게 이루어질 전망이다. 문제가 됐던 ‘구 재단’측과 이를 방어하려는 현 사학간 각종 소송이 난무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지난 9월 7일 ‘부패재단 복귀 저지와 학교정상화를 위한 임시이사파견학교공동대책위’는 ‘민주적 사학분쟁조정위 구성을 위한 교육사회단체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판·검사, 변호사, 군법무관 △대학 총·학장, 초·중등학교장 경력자 △대학 교수 이상자 △회계사 △교육행정기관 고위공무원 경력 각각 15년 이상 근무한 자로 규정한 조정위원 자격 요건에 대한 우려가 크게 제기됐다. 교육 수요자인 학생·학부모나 교육시민단체 대표, 교육 전문성을 가진 교사 대표가 배제된 채 자칫 ‘보수적’ 진용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문기 씨 측 전대열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고문은 “15년 이상 교육과 법조계에 있었던 이들이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게 나타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사학분쟁조정위는 사학문제 해결의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며 “조정위원의 민주적 인사 선임을 통해 부패사학재단에 또다시 면죄부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학분쟁조정위는 당초 9월말 구성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현재까지 미뤄지고 있다. 교육부 사립대학지원과 신인섭 사무관은 “입법부와 사법부 추천이 늦어지고 있다”며 “지금 추세라면 11월 말이나 돼야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조정위원 구성 이후 활동 계획은 의사일정 등을 감안해 사학분쟁조정위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권철현 위원장(한나라당 부산 사상구 의원)실 이춘호 보좌관은 “국회 의장에게 조정위원 1명 추천을 의뢰하고 대통합 민주신당과 한나라당에서 각각 1명씩 추천할 계획”이라며 “국정감사 등 현안이 많아 국감 이후인 11월 초에나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조건이 많고 까다로워 찾기 후보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학개혁의 잣대, 민주적 구성 요구=상지대를 비롯한 사학분쟁 학교들의 문제 해결 단초는 이제 사학분쟁조정위로 몰리고 있다. 이전 교육부 관할의 경우 책임소재가 분명했으나 사학분쟁위는 독립기구의 위상에서 책임소재를 묻기 모호할 수 밖에 없어 조정위원의 선임 문제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지난 9월 있었던 ‘민주적 사학분쟁조정위원회 구성을 위한 교육사회단체대토론회’에서는 △사학재단 쪽에 서서 활동한 전력이 있는 사람 △부패와 비리·폭력 등 반민주·반인권 활동 전력자 △‘강제선교’ 등을 행한 종교재단 관계자 △사학의 문제를 잘 알지 못하는 국립대 교수 배제 등의 조정위원 구성 원칙이 제시되기도 했다. 또 총장·학장·교장, 교수, 공무원은 자격을 인정하면서 일반 교사만 인정하지 않는 것은 기능적 문제 뿐 아니라 인권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에 즉각 개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박병섭 상지대 부총장은 “사학분쟁조정위가 독립기구라는 믿음과 함께 객관적인 판단을 한다면 결코 김문기 씨 등 부패 사학재단 관계자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진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학분쟁조정위가 적극적인 해결노력을 보이지 않으면 상지대를 비롯한 분쟁학교들의 상황이 ‘방치’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조정이란 이유로 긴 공방이 다시 지속될 경우 해당 학교의 정상적 운영이 어려워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부총장은 또 “반복되는 사학재단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현 시점이 중요할 수 밖에없다”며 “사회 각 분야의 민주화 흐름 속에서도 정체되는 사학개혁을 위해 시민사회단체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사학개혁의 성패 여부를 가르는 갈림길 앞에 시민사회가 직면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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