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수가 이장 된 사연

지금 우리 마을은 ‘공사 중’이다. 완전 신품 타워 크레인 3대가 부지런히 이리저리 움직이며 철제 빔 같은 걸 나른다. 터파기 공사에 이어 말뚝 박는 소리가 ‘탕, 탕, 탕’ 하루 종일 요란하다. 모두 988세대, 최고 20층 중대형 아파트를 12개 동이나 지으려 한다. 총 사업비가 3천억 원짜리다. 대략 계산해서, 한 달에 1천만 원 버는 의사가 3,000년 동안 죽지 않고 모아야 되는 돈이다. 시행사는 ‘부동산개발투자 회사’를 영어로 REDI라 한다. 사람 헷갈리게 하는 수법이다. 시공사는 대림산업으로 ‘e-편한 세상’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이른바 ‘에코 프로젝트’란 이름 아래 ‘맑은 공기와 숨 쉬는 집’이라 선전한다. 좋은 전원 풍경과 구릉과 과수원을 훼손하고 짓는 아파트가 ‘에코 프로젝트’라니‘자기기만’도 대단하다. 천문학적 돈벌이를 위해서는 이렇게 부단한 자기기만이 필요한가.

이 사업은 원래 1천121세대의 15층 아파트 15개 동을 2005년부터 착공해서 2007년 말에 완공하려던 것이었다. 알고 보니 토지용도 결정이 2005년 3월말에 났는데, 이미 2004년에 교통영향평가를 조건부 통과시켰다. 토지용도 결정 이전에 시골 마을에, 그것도 고대와 홍대 캠퍼스가 남북으로 있는 그 사이 공간에 15층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려는 절차가 끝났다니 놀랍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04년 6월 초까지만 해도 충남 연기군에서 2000년부터 항공 촬영 등을 해서 토지용도에 관한 내부 입안 상 위 대상 토지가 ‘제1종 일반주거지역’(평균 4층 이하 건축 가능)이었다는 사실이다. 충남도의 최종 결정을 한두 달 앞둔 시점에서 ‘희안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2004년 5월에 위 시행사가 현지 부동산 업자들과 토지 매입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 게다가 2004년 6월초에 전 이장이 주민 7명의 도장을 도용하여 “제1종 일반주거지역이 아니라 (15층 건축이 가능한) 제2종지로 해야 한다”는 허위민원서를 연기군청에 넣었고 군청은 이를 수용, 제2종지로 재입안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과정이 주민들 몰래 이뤄졌다. 아파트 사업과 관련 그 어떠한 주민 총회나 토론회, 설명회도 없었다. 다른 주민들의 삶과 환경이 어떻게 되든 업자들과 전 이장, 일부 지주들끼리 몰래 ‘마을을 팔아먹을’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 마치 일제 때 친일파들이 국민들 몰래 나라를 팔아먹을 음모를 꾸몄던 것처럼. 개발이든 파괴든 만약 주민들과 개방적인 토론을 거쳤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알고 보니 전 이장과 공무원, 업자들의 유기적 협력 없이 진행이 불가능한 사업이 1천여 주민들 모르게 척척 진행되던 터. 평소에 자연에 묻혀 조용히 살던 내가 마침내 2005년 3월초부터 ‘문제제기’에 나섰다. 터무니없는 아파트 사업이 어떻게 진척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사태를 규명하러 나섰더니 연기군청에서 문제의 ‘허위민원서’가 나왔다. 주민총회를 열어 전 이장을 불러 해명을 들으니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화난 주민들이 ‘당장 이장 자리 내 놓아라’고 요구했고 며칠 버티더니 마침내 ‘사직서’를 주민들 앞에 내놓았다. 2005년 5월 18일이었다. 나는 비공식적으로 몇 명이 ‘고층아파트저지주민대책위’를 꾸렸던 상태를 주민총회 자리에서 공식화했다. 적극적인 남녀 주민 15명을 핵심으로 하는 ‘주민대책위’를 공식 구성했다. 그 다음 총회에서 주민들은 나를 새 이장으로 추대했다. “이 복잡한 사태를 추스르고 끌고 나갈 사람은 강 교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부디 이장 역할을 맡아 달라.” 연세 많은 어르신들도 나를 보며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약 70명 가까이 마을 회관을 가득 채웠는데 한두 명의 술 취한 이는 “강 교수가 이장이 되면 안 된다”고 했지만, 90% 이상의 대다수 참여자들은 “강 교수가 적임자”라고 했다. “저야 자연 속에서 조용히 살고 싶어 99년에 서당골에 흙집을 짓고 어머니를 모시고 온 가족이 함께 살고 있지만 주민들께서 원하신다면 이장이 되어 이번 싸움에 앞장서겠습니다. 다만 주민들께서 함께 싸워주신다고 약속하는 한 같이 할 것을 다짐합니다.” 마을 회관이 떠나갈 듯 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시작된 싸움이 3년이 다 되어 간다.

최근 대법원에서는 토지용도 결정이 불법이라는 우리 요구를 ‘기각’했다. 또 아파트 사업 승인에도 절차상, 내용상 하자가 있다는 우리 요구를 대전지법은 보기 좋게 ‘기각’했다. 거대 자본 앞에 약한 주민들은 ‘다윗과 골리앗’ 꼴이다. 그러나 재판 결과가 모두는 아니다. 그동안 주민들은 사태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생태환경을 파괴하는 막개발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졌다. 우리 싸움은 이 사업의 마구잡이 진행을 지연시켰다. 원래 올해 끝날 사업이 비로소 올해 착공에 들어간 것. 앞으로도 주민들은 눈과 귀를 열고 이 사업이 초래할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피해에 대해 부단히 문제 제기할 것이다. 결과를 떠나, 싸움의 ‘과정’에 꾸준히 동참하는 우리 주민들이 고맙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