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거래, '공정무역'은 가능하다

유럽에선 2천종 상품유통 제3세계 '희망무역'
국내 시행단체간 연대·인지도 제고가 관건

공정무역, 미래를 말하다

‘공정무역.’ 단어를 풀어보자. ‘공정하게 무역한다.’ 더 풀어보자. ‘공평하고 올바르게 나라와 나라 사이 서로 물건을 사고팔거나 교환한다.’

뭔가 이상하다. 서로 물건을 사고 팔 때에는 자신에게 하나라도 ‘콩고물’이 떨어지게 하기 마련이다. 그 과정이 공평하고 올바르게 이뤄지려면 서로 얻으려는 콩고물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야만의 세계’는 좀 더 쉬운 자유무역을 선호하고 일부에게만 큰 콩고물이 떨어진다. 콩고물은 커녕 있는 물건의 제 값도 못 받고 자꾸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더 이상 안되겠다며 공정하게 무역을 해보자고 사람들이 나섰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동등한 관계로 물건뿐만 아니라 서로의 역사와 경험을 주고 받으며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무역을 꿈꾼다. 그래서 커피를 팔고 축구공을 산다.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공정무역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국내 공정무역의 현재를 살피고 공정무역의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이 원하는 콩고물은 어떤 것일까. /기획취재팀

공정무역 대안과 과제

네팔에서 염색한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동티모르산 커피를 내려 필리핀산 마스코바도 설탕을 한 스푼 넣어 마신다. 창 밖에선 파키스탄에서 만든 축구공을 차며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세계화 시대의 한 단편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어색하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중국 등에서 생산한 물건들이 아닌 제3세계에서 만든 물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네팔의 염색천, 동티모르의 커피, 필리핀의 설탕과 파키스탄의 축구공 등은 공정무역의 대표적인 물품들이다.

세계시장은 자유무역체제 하에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자유무역은 선진국과 다국적기업 등 자본을 많이 가진 쪽이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지구적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문제의식은 바로 공정무역으로 이어졌다.

그들만의 세계화에 반대한다

생산자들에게 보다 나은 교역조건을 제시하고 권리를 부여하며, 원조를 넘어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한 자립을 돕는 무역이 바로 공정무역이다.

한국공정무역연합

가나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장 활발하게 공정무역이 이뤄지고 있는 지역은 1950년대부터 시작된 유럽 중에서도 영국이다. 런던 시장까지 앞장서서 공정무역을 홍보하고 있다. 또 공정무역의 날 행사를 꾸리고 시민들에게 알린다. 공정무역을 위한 예산책정 및 관세감면혜택 등으로 공정무역을 장려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엔 아직 첫 단추를 끼웠을 뿐이다. 지난 2003년 9월 아름다운가게가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등의 공정무역 단체에서 수공예품 샘플을 들여와 팔기 시작했던 것으로 공정무역이 시작됐다. 하지만 공정무역이 전혀 소개되지 않았던 당시의 한국 상황에선 제3세계의 수공예품은 생소하기만 했고, 판매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 아름다운가게는 수공예품에서 식음료분야로 물품을 바꾸려고 하던 중 일본의 대표적인 공정무역 단체인 ‘네팔리 바자로’와 연락이 돼 네팔의 커피를 들여오게 된다. 이 커피가 아름다운가게의 대표적인 공정무역 상품 ‘히말라야의 선물’이다.

신충섭 아름다운가게 아름다운무역팀장은 “네팔에서 재배된 커피는 생두 형태로 한국에 수시로 들어오며 아름다운가게가 2주마다 전문가와 함께 직접 볶아 공급한다. 현재 홍차와 초콜릿 등 생산시장의 확대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가게가 첫 시도

두레생협에서는 2004년부터 필리핀의 네그로스와 마스코바도 설탕 교역을 시작했다. 단순히 물품교역이 아니라 500g 설탕 한 봉지를 팔 때마다 200원씩 적립해 1천4백여만원의 기금이 조성됐다. 이는 ‘네그로스 프로젝트’로 불리는 지역의 환경개선 작업에 쓰였다. 기부금은 단순히 전달의 형태가 아니라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 생산자들이 주체적으로 함께 기금을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높은 상환율을 보이고 있다.

공정무역은 주로 NGO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다. 아예 본격적인 사업체를 만든 단체도 있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해부터 희망무역이란 이름으로 공정무역을 도입해 캠페인을 벌여왔다. 빈곤국에게 원조가 아닌 무역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고 친환경적 생산과정을 장려하면서 상대적으로 빈곤화가 심해지고 있는 여성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좀 더 전문적으로 공정무역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주)페어트레이드코리아를 설립했다.

인도의 생산자들로부터 유기농 면 제품으로 만들어진 원단을 수입, 한국에서 가공해 ‘GRU'라는 브랜드로 판매하는 형태이다. 현재 인터넷쇼핑몰에선 일본의 ‘네팔리 바자로’의 의류를 수입해 팔고 있으며 네팔의 향신료 등도 팔고 있다.

한국YMCA전국연맹에선 지난 2005년부터 동티모르 구호활동의 일환으로 동티모르 평화 커피를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고산지대에서 유기농으로 키우는 동티모르 커피는 맛과 향이 좋아 국제적으로도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유통과정으로 인해 정작 생산자들에게는 돌아가는 것이 없었다. 동티모르산 커피만 사용하는 ‘카페 티모르’도 설립해 현재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단체 참가로 확산

한국공정무역연합에서는 축구공으로 공정무역 사업을 벌이고 있다. 전 세계에 보급되는 축구공의 75%는 파키스탄에서 생산된다. 파키스탄 내 공정무역을 하는 회사는 4군데다. 한국공정무역연합은 이들 중 ‘비전테크놀로지’와 교역을 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 생산되는 축구공에는 국제공정무역인증기관인 FLO의 마크가 찍혀있다.

박창순 한국공정무역연합 대표는 “현재 한국에 들어오는 공정무역 물품 중 FLO 마크가 찍혀있는 것은 우리 축구공 뿐”이라며 “공정무역을 하기 위해선 국제적인 네트워크 형성이 중요해 세계공정무역협회에 가입승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름다운가게

아름다운가게에서 판매하고 있는 네팔 커피 '히말라야의 선물.'

아직 갈 길은 멀다. 국내 성인소비자 중 86%가 공정무역을 모른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아름다운가게가 지난달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다. 86.6%가 공정무역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다고 답했다. 들어본 적은 있으나 잘 모른다는 답은 10.3%, 알고 있다는 답은 3% 정도에 그쳤다.

박 대표도 공정무역의 인식이 부족한 점을 현재 한국 공정무역의 발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로 지적했다. “최근 언론에서 다루고는 있으나 진정한 공정무역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도 없다”고 말한 박 대표는 “이젠 해외원조가 아닌 공정무역을 통해 제3세계를 도와야한다”고 덧붙였다.

아직 소비자의 인식이 낮다 보니까 시장이 안정적인 커피, 차 등으로 물품이 국한되어 있는 것도 문제점이다. 유럽에선 2천 종이 넘는 공정무역물품이 판매되고 있다.

국내 공정무역단체 간 연대도 아직 활발하지 않다. 신충섭 아름다운무역팀장은 “단체들이 모두 연합체 결성이나 공동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업무과다, 국내인지도 빈약 등의 현안을 해결하느라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자생력을 키운 후 곧 연대를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상희 기자

전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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