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블로그에 홈에버 상암점 관련 기사와 소식들을 올리면서 여기저기에 이랜드 홈에버 사태가 알려지도록 지지를 보냈습니다.”

성공회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금다니엘 씨는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비정규직 전시회 시즌 1’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마음이 답답하죠. 전시물 중에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힘든 문제가 돈, 경제상태 등이라고 적혀 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최근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88만원 세대’에 속하게 될 대학생들이 현실의 ‘88만원 세대’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공간이 마련됐다.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은 학내 민주주의와사회운동연구소와 공동으로 ‘비정규직 전시회 시즌 1’을 지난달 27일부터 3일간 개최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학생식당 옆 공간에 이랜드-뉴코아·홈에버 노동조합과 롯데호텔 비정규직 노동조합,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에게 협조를 얻어 노동자들이 교육과 투쟁 현장에서 직접 적은 이야기들이 전시됐다.

비정규직 전시회 시즌 1 전시물들

빨간색 종이에 펜으로 눌러 쓴 ‘가족의 반대’란 글자에 동감을 뜻하는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전시물에는 이랜드 유통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많은 노동자들이 주로 여성이다 보니 가족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하고 마음에 밟힌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가족 문제 다음으로 노동자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그 다음은 ‘동지의 배신’이었다. 차비가 없고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노동자들의 의견 옆에는 같이 투쟁하던 언니가 어느날 나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현장에 복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아팠다고 적혀 있었다.

이겨낼 극복방안으로 ‘아르바이트, 신문배달’ 등과 ‘동료들의 연대’ 등의 게시물로 이어진다. 현재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보게 하는 대목이다.

전시회를 기획한 양규헌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지도위원은 전국노동자협의회 위원장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을 지냈다. 노동운동을 해오며 현장에서 느낀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터다. “70년대 노동자들이 지금 40~50대 아주머니들이 되어 다시 노동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의 현실이 바뀌지 않았다는 게 슬프네요.”

‘놀고 먹는 대학생’은 이제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도서관에서 자리싸움은 흔한 일이 되었고, 취업이 잘 되는 스터디 모임에 들어가기 위해선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학점 관리에 봉사점수, 다양한 경험을 위한 인턴생활, 영어연수는 기본이고 제2외국어 연수에 외국어 점수를 ‘만들기’ 위한 시험 등을 준비하느라 대학생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앞으로 신자유주의 공세가 멈추지 않는 이상 노동시장은 불안정해지고 비정규직은 늘어날 것입니다. 그런 사회에 뛰어들어야 할 대학생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취업설명회를 따라다니느라 바쁩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엔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양 지도위원은 말했다.

“이 전시물들은 노동투쟁의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직접 쓴 숨결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들도 대다수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고, 정규직으로서 미래를 꿈꿨고, 취업설명회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돼서 이렇게 투쟁을 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오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이 내일은 자신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대학생들이 몸소 체험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랜드 홈에버 상암점 투쟁현장을 찾았던 홍익대의 한 학생은 차가운 바닥에서 박스를 찢어 앉아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보고 “그 동안 나의 문제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 노동자로 살아갈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는 글로 노동자들을 응원했다.

전시회 한 쪽에 마련된 ‘성공회대 학생들이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무엇이 있을지’ 직접 적어보는 게시물에는 ‘연대’,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함께 하는 것’ 등의 내용들이 붙어 있었다.

양 지도위원은 “대학생들이 청년실업문제를 자신의 팔자 탓, 운명 탓, 능력부족 탓으로 돌리지 말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사회에 나가주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더 욕심을 내자면, 이들이 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천적 주체로서 현재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심적으로라도 함께 해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영기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자료실장은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서는 기획전시든, 상설전시든, 게릴라성 전시든 지속적으로 다루고 안고 가야할 우리 모두의 고민이기 때문에 시즌1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밝혔다.
전상희 기자

전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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