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연말이면 길거리에서 종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무심코 스쳐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발걸음을 멈추고 애써 주머니에 넣은 손을 꺼내 모금함에 돈을 집어넣는 이들도 있다. IMF 외환위기 때 사람들은 장롱 깊숙한 곳에 모셔둔 금붙이를 꺼내 은행으로 갖고 왔다. 검은 원유로 뒤범벅이 된 태안지역 구제를 위해 성금과 물품을 모으고 직접 자원봉사활동을 떠나기도 한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오는 19일 이전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호프를 연다. 지난 10일엔 지구촌나눔운동이, 지난 5일엔 녹색소비자연대가 후원의 밤을 개최했다. 단체들의 영원한 목표는 회원들의 정기적인 회비로 단체를 운영할 수 있는 재정자립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먼 이야기이다. 단체 살림은 늘 빠듯해서 연말이면 후원의 밤을 조직하고 재단이나 정부에서 하는 공모사업 지원을 위해 기획안을 작성하느라 활동가들은 일 년 내내 바쁘다.

뭐가 문제일까. 공급이 있고 수요도 있다. 하지만 두 손바닥은 좀처럼 만나서 경쾌한 소리를 내지 못한다. 기부문화가 정착됐다고까지 말하긴 힘들지만, 한국 시민사회는 공익을 위해 선의의 목적을 갖고 자신의 돈과 시간, 노력을 기부할 만큼 성숙해있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은 늘 시민들의 기부와 참여를 위해 열려있다.

지난해 아름다운재단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기부동기 외 기부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74.5%의 시민들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요청을 받는 경우 기부를 한다고 대답했다. 소위 ‘좋은 일을 위해’ 사람들은 요청을 받으면 대개 거절하지 않고 기부를 한다고 볼 수 있다.

비영리단체의 모금교육·컨설팅 전문회사인 (주)도움과나눔의 이준모 기획·마케팅팀장은 “한국기부문화는 낮은 편이 아니다”라며 “단체들이 모금하는 기술이 부족해 기부자들을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단체들의 모금에 대한 인식도 문제”라고 이 팀장은 말했다.

모금은 한 단체의 정체성과 철학, 조직문화 등이 모두 어우러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아직도 단체 관계자들은 모금 활동가 한 두 명이 업무를 담당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9월 아름다운재단은 '비영리단체와 시민이 함께 만드는 기부와 모금의 새로운 패러다임, 세상을 바꾸는 두 개의 심장'이란 주제로 제1회 비영리컨퍼런스를 열었다. 참가자들이 해외모금전문가 킴 클라인의 강연을 듣고 있다.

지난 9월 아름다운재단은 제1회 비영리컨퍼런스를 열었다. ‘비영리단체와 시민이 함께 만드는 기부와 모금의 새로운 패러다임, 세상을 바꾸는 두 개의 심장’이란 주제였다. 처음 모집인원은 200명이었으나 참가자 모집이 끝난 후에도 전국 곳곳에서 참석문의가 왔다. 이틀 간의 일정에 총 325명의 비영리단체 실무자들이 참석했다. ‘기부’와 ‘모금’에 대한 단체들의 갈증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줬다.

컨퍼런스에서는 ‘모금의 시작, 우리 조직 1분 안에 설명하기’란 세션과 ‘나눔의 미래세대 키우기’, ‘한국의 모금사례 발굴 및 컨설팅’ 등이 가장 높은 호응을 얻었다. 한국식 모금활동의 성공적인 사례를 듣고 실제 적용을 해보는 시간들이 인기가 많았다. 단체의 모금 담당자들은 당장 자신들의 가려움을 긁어줄, 갈증을 해소해줄 모금 방법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직 ‘모금’의 영역이 낯선 한국사회에서 모금과 기부가 문화로 안정적으로 정착되려면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수다. (주)도움과나눔 정지혜 교육담당 코디네이터는 “모금교육을 받으러 온 활동가들이 당장의 해결책을 찾기에 급급한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근본적으로 모금을 바라보는 단체와 활동가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기 위해선 지속적으로 모금과 기부에 관심을 갖고 전문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정 코디네이터는 덧붙였다.

도봉시민회는 오는 26일 뮤지컬 ‘골목길 이야기’ 공연을 한다. 지역의 주민들이 참여해 만드는 뮤지컬이다. 현재 연습이 한창이다. 도봉시민회는 아름다운재단의 지난 컨퍼런스에서 ‘변화의 씨앗상’을 수상해 300만원의 사업지원금을 받았다. ‘변화의 씨앗’상은 아름다운재단이 재미있고 현실적인 모금 아이템을 공모해 1차 심사 후 컨퍼런스 당일 날 현장투표로 선정했다. 이 지원금과 함께 지역 주민들이 발품을 팔아 모금을 통해 무대에 올리는 행사다.

시민들과 단체가 만날 때 일본 우토로의 주민들은 땅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시민들과 단체가 만날 때 북한 수재민들에게 옷과 먹을 것이 제공될 수 있었다. 시민들과 단체가 만날 때 차별받는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어린 학생들은 학교를 지킬 수 있었다.

시민들의 ‘기부’를 통한 참여와 단체들의 ‘모금’을 통한 활동이 함께 잘 맞부딪칠 때 큰 박수소리가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전상희 기자

전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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