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붕괴돼 가고 도시는 삭막해져 간다. ‘마을’이란 단어는 이제 농촌에서도, 도시에서도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농촌과 도시를 살리기 위해 마을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사진)는 지난 달 ‘다시, 마을이다’란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책에는 부제가 붙어있다. ‘위험 사회에서 살아남기.’ 책은 근대를 분석하고 후기근대를 살피며 위험한 시대의 청소년들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조한 교수는 말한다. 다시 마을이라고.

희망제작소 농촌희망본부는 지난 20일 조한 교수에게서 ‘교육으로 풀어보는 농촌의 새로운 청사진’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0월부터 매달 진행해온 ‘비농업인이 바라본 한국 농업·농촌의 미래’의 3번째 시간이었다.

조한 교수는 문화인류학과 여성학을 전공했다. 1980년대에는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과 여성운동을 했고, 1990년대에는 대안교육현장에서 청소년운동을 했다. 농촌과 큰 접점은 보이지는 않는 약력이다.

“운동을 하다보니까 작은 학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배움의 공동체가 중심이 됐을 때 새로운 마을,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거죠.” 농촌은 작은 학교와 작은 마을이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조한 교수는 덧붙였다.

왜 다시 마을인가

왜 우리는 마을로 돌아가야 할까. 아니, 왜 우리에게 마을이 필요할까. “우리는 위험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위험사회는 다른 게 아니라 무엇을 하면 할수록 더욱 망치게 되는 사회를 말합니다. 우리는 이제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꿔야 하는데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나갈 아이들은 협력을 배우지 못했고 경쟁만 강요당했습니다. 서로 소통하면서 사랑하는, 협력하는 관계를 맺지 못해 아이들은 늘 미래가 불안하고 절망감으로 괴로워합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너무 바쁘다. 학점 관리, 동아리 활동, 각종 봉사에 영어는 물론 제2외국어도 배워야 산다. 방학이면 해외 연수에 인턴까지 해야 한다. 이들을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게 만드는 것은 미래에 대한 열정과 꿈이 아니다. 불안이다.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불안정한 젊은이들은 실체는 있지만 존재하지 않아요.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본 근거는 더불어 사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가 일상을 공유하며 치유되고 자활, 자존, 공생이 가능한 돌봄의 사회로 가야 합니다. 바로 ‘마을’에서 이런 사회를 만들 수가 있어요. 서울 마포의 성미산학교를 중심으로 시작된 성미산마을이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농촌의 경우 배움의 공동체, 작은 마을을 꾸리기엔 문화시설이나 환경이 부족한 게 아닌가라고 물었다. 확고한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은 결핍이 축복입니다. 요새는 거의 가짜 문화가 판을 치고 있어서 오히려 문화를 접하지 않는 게 좋을 수 있어요. 그런 시설이 없는 농촌이라도 멀티미디어를 잘 활용하면 교육, 문화인프라는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젠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시간과 의지를 가지면 어디서든 구할 수 있어요. 그리고 농촌에서 더 쉽게 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 하나의 문화, 교육 경험은 더욱 소중하게 기억되고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해줄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 없어서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자조 섞인 걱정이 비췄다. “계속 그들에게 그래야 한다, 그것이 옳다 라고 얘기하니까 그런 거에요. 언어가 후지기 때문에 농촌에 가지 않는 것이죠. 지금의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미가 없어서 괴로워합니다. 재밌고 즐겁게 농촌에서 무언가를 함께 하자고 열린 자세로 행동하다보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될 것입니다.” 조한 교수의 답이다.

‘88만원 세대’에게 제안한다

마을을 만들고자 농촌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잠시 살다가 떠날 사람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농촌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고 배타적인 경우가 종종 있다. “좀 더 열려있는 지역을 먼저 두드려야지요. 열려있는 지역끼리 서로 연대하면 가능합니다. 그리고 농촌에 계신 분들도 이젠 지배층에서 주입한 이데올로기인 결핍·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동안 지역방송국이 다 죽어서 몇몇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왜곡되고 선정적, 일방적인 시선으로 농촌을 바라봤기 때문이에요. 마을이 생기면 마을 내에 작은 지역방송과 언론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런 선례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뜻이 있는 사람들이 계속 노력해야겠지요.”

위험사회, 경쟁사회, 불안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한 교수는 '88만원 세대'에게 제안한다. 다시 마을을 만들자고.

전상희 기자

전상희  @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