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 휴전깨고 유엔 상주 감독관을"

버마총파업위원회(GMCC) 간부들을 만나다 랑군=이유경l승인2007.12.2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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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깃꼬깃한 종잇장에 전술과 계획, 도표까지 한 가득이다. 모두 펜 글씨다. ‘버마 내부’의 운동가들은 멋드러지게 인쇄한 문건하나 없었지만, 몸으로 고민한 흔적을 빼곡히 적어 놓은 치열함을 내게 들이밀었다.

10월 말께 나는 랑군에서 세 명의 주동자급 운동가들을 인터뷰했다. 나는 이 인터뷰를 통해 그 큰 시위들이 ‘일정한 수준에서’ 계획 중이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명은 버마총파업위원회(General Movement Control Committee) 간부들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이 조직의 ‘세컨 라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들에 따르면, 이 조직은 군부가 가장 잔인한 진압을 보였던 9월 27일 그날, 각계 ’민주인사’들로 긴급 구성되었고 10명 내외의 ‘중앙위원급’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인터뷰로부터 1~2주 안에 한 명은 잡혀갔고 두 명은 ‘실종’되었다. 그리고 3주 쯤 지나니 모두들 악명 높은 인세인 감옥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다시 최근 "내 사진이 담긴 시위 사진 하나가 군부의 ‘기자회견’ 장에서 공개되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하고 있다" 는 메일이 또 다른 이로부터 날라들었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잃었지만, 버마 내부는 이렇게 ‘끔찍한 숨바꼭질’을 계속하고 있다. 동시에 ‘세컨 라인’ 혹은 ‘투명인간’들은 암흑천지 버마에 반딧불이라도 켜 보고자 발악하고 있다. ‘진짜’ 항쟁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

이유경
랑군 시내 어둡고 음침한 거리마냥, 아름 다운 자연과 달리 버마 내부 정치와 인권은 암흑천지다. 이 암흑속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버마 내부운동을 향해 이제는 좀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돌려져야 할때다. 그렇지 않으면 고립되고 방치된 내부는 회생 기력을 찾지 못할 것이다.

-최근 데모는 계획된 것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

▲버마는 종교적 나라다. 시민들은 승려들을 존경한다. 그런 승려들이 시위를 주도하면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들에게 일종의 시작할 ‘특권’을 준 셈이다.

-그렇다면 ‘포코쿠 시위’(9월 5일 승려 폭행 사건이 발생하여 전국 시위를 점화시킨 시위사건)는 시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었나.

이유경
인도 델리에 거주하는 버마인들이 2004년 10월 탄쉐 장군의 델리 방문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도, 태국, 미국, 유럽 한국 등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버마인들은 이주노동자로, 난민으로 어려운 처지에서도 조국 민주화를 위해 각종 캠페인을 벌여왔고 버마 이슈를 국제적으로 알리는데 기여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좀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버마 내부 운동으로 돌려져야 할때다.
▲그 사건 자체는 좀 예기치 않은 우연이었다. 계획하고 논의 중이었는데 그 폭행사건이 터졌고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추진했다. 그건 일종의 기회였다.

-‘우린 계획 중이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정확히 누구인가.

▲‘88세대’, ‘소수민족그룹 활동가들’ 변호사, 아티스트, 여배우 등 ‘전문가 집단’, 그리고 승려들이다.

-그 그룹들이 모임을 갖는게 가능했다는 말인가.

▲아니다. 우린 손전화와 인터넷을 이용해서 의사소통한다. 모임은 서너 명씩 갖는다.그중 한 명이 또 다른 서너 명의 모임에 참여하는 식으로 의사소통을 해왔다.

-운동의 열망은 오랜 기간 있었겠지만, 구체적으로 시위같은 걸 계획한 건 언제부터인가.

▲2003년 5월 데파윈 학살(아웅산 수치의 현 가택 연금을 야기한 사건) 이후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정말 기회가 사라지겠다고 생각했다.

-만일 포코쿠 승려 사건이 없었다면 9월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을지.

▲그렇게 금방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좀 더 길게 잘 준비해서 가까운 미래 어느 한 날 터트렸을 것이다.

데파윈 학살 이후 위기감 느껴

-최근 계획 단계를 좀 설명해달라.

▲‘88세대 그룹’ 외에 ‘버마개발위원회’(MDC : Myanmar Development Committee)라는 조직이 있는데, 후자에 속한 활동가 틴쵸(Htin Kyaw)가 8월 21일 미디어 인터뷰에서 "내일(22일) 데모가 있을 예정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 때문에 SPDC(버마 군부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88세대’를 의심하고 들이닥쳐 민코나잉 쿠쿠치 등을 잡아갔다. 틴쵸는 도망칠 수 있었는데 일주일 후 그 역시 구속되었다.

-그래서 22일 데모는 없었나.

▲있었다. 인세인 지역에서. 3천~4천명의 시위대가 참여했다. ‘88세대’ 소속인민민과 닐라떼인, 코아웅나잉 등이 참여했다.

-당신들의 요즘 생활은 어떤가.

▲집에 머물 수 없고, 거의 매일 밤 잠자리를 바꾸고, 차림도 자주 바꾼다.

-그렇게 부자유스러운 환경에서 얼마나 자주, 어떻게 다른 조직원들과 상의할 수 있나.

▲전화를 걸 때는 공중전화를 이용하고, 전화를 받을 때는 그날 이동할 집의 번호를 다른 동료들에게 알려준다.

-9월 폭력 진압 이후 몇 번이나 모임을 가질 수 있었나.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 2명이 만났고 우리 중 1명이 논의 사항을 가지고 다른 대표를 다시 만날 예정이다.

-당신들의 로드맵과 전술은 뭔가.

▲첫째, 소수민족활동가 대표들은 휴전한 소수민족 무장투쟁그룹을 설득하여 SPDC에 압력을 가하도록 한다. 둘째, 국제적 명성이 높은 아웅산 수치를 통해 국제사회의 압력을 최대한 확대시킨다. 셋째, 유엔은 감독관을 파견 상주시켜 ‘군부+NLD(민족민주동맹)+소수민족대표’간 ‘3자회담’을 지속적으로 중재한다. 넷째, 우리 활동가들은 대중적 총파업을 꾸준히 이어간다.

-군부는 살인마들인데, 여전히 대화 상대로 보고 있나.

▲살인마이지만, 그들을 배제하면 평화가 없다. 배제는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그리고 우린 군을 두개 층(장성과 사병)으로 꾸준히 갈라 놓아야 한다.

-그 분열정책은 뭔가.

▲사병 등 낮은 층을 설득해야 한다. "장성들은 지들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한다. 현실을 봐라. 당신들도 그것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 않나"와 같은 메시지를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전달하는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라는 건 무슨 말인가. 사병들이 라디오를 듣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렇다. 들을 수 있다.

-우아 멋지네!

‘라디오 플레이’로 군부 분열을

-언제부터 사병들이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나.

▲오래전 부터인걸로 안다. 연대장(colonel)과 장군들(generals) 사이에도 갈등이 있다. 그리고 라디오도 서로 듣겠다고 ‘싸우기도’ 한다고 들었다.(웃음)

이유경
9월 5일 승려 폭행 사건으로 전국 시위를 점화시킨 포코쿠 타운의 한 사원에서 어린 승려들이 불교철학을 공부중이다. 총파업 위원회 활동가들은 포코쿠 사건이 예상외로 터지면서 미완된 파업 계획을 그냥 밀어붙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가까운 미래 계획은.

▲또 다른 파업으로 이동 중이다.

-언제쯤 되겠는가. 몇 주안? 몇 달안?

▲단언하긴 어렵다. SPDC의 조치와 국제사회의 움직임 등 여러가지 상황을 봐서 결정해야 하지만 매우 가까운 미래이다. 사실, 오늘도 이미 카렌 주에서 시위가 하나 있었다.(필자는 이 시위가 보도된 미디어를 색출하지 못했다)

-규모는.

▲훨씬 더 크고 잘 조직된 시위를 만들 거다. 최근 시위는 사실, 준비를 제대로 못한 것이었다.

-장담할 수 있나. 시위 규모가 참가자 수에 달려있고 최근의 폭력 진압으로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던데….

▲우린 민중을 믿는다.

-NLD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국제사회에서는 최전선주자로 묘사되곤 하는데.

▲NLD에는 아웅산 수치밖에 없다. 그리고 상황을 정확히 읽지 못하고 뭔가를 피하고 있다.그리고 SPDC ‘7단계 로드맵’에 따른 선거가 이루어진다면 NLD는 와해될 가능성이 높다.

-국경지대 무장투쟁그룹은 "지금이야말로 무장투쟁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SPDC는 아무도 듣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당신들의 견해는.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휴전한 소수민족 무장그룹이 SPDC에 압력을 가하도록 설득하는 게 우리 주요전술 중 하나라고 이미 말하지 않았나.

-그 ‘압력’이라는 게 무장투쟁 재개를 말한 것이었나.

▲우선은 휴전부터 깨고 상황 봐서 다시 싸우라고.

-휴전을 깨는 게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까.

▲가능하다. 최근 자잘한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사회를 향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SPDC는 버마에 평화가 왔다고 한다. 그런 외교적 수사는 절대 믿지 말고 현실을 똑바로 봐주길 바란다. 버마에서 진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우린 상주해서 활동할 유엔감독관의 파견을 강력히 요청한다. 동티모르에 선거감시단을 보낸 것처럼 우리에게는 3자 회담을 중재하고 SPDC에 강한 압력을 넣을 팀을 보내 달라. 외교적 방식 말고. 이브라임 감바리가 왔다갔다 하는 거 외에 도대체 뭘하고 있나.

‘감옥’안 ‘숨박꼭질’은 재밌을까?

이유경
9월 총격 진압에 항의하는 한국 주재 버마대사관 앞 시위에서 한 버마인이 대사관에 ‘항의 꽃’을 전달하려하자경찰로부터 제지당하고 있다. 인도, 태국, 미국, 유럽 한국 등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버마인들은 이주노동자로, 난민으로 어려운 처지에서도 조국 민주화를 위해 각종 캠페인을 벌여왔고 버마 이슈를 국제적으로 알리는데 기여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좀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버마 내부 운동으로 돌려져야 할때다. 그
버마운동 지원을 위한 제언


그동안 나는 버마 내부와 외부(타이-버마 국경지대나 기타 해외 지역)의 운동에서 적잖은 거리감을 발견했다. 내부 활동가들이나 야당정치인들을 만나면‘빠져 나간’ 이들에 대한 암묵적 원망이 슬쩍 슬쩍 배어 나왔다. 이주노동자로, 난민으로 열악한 사회적 위치를 무릅쓰고 타국에서도 조국의 민주화에 혼신을 다하는 그들도 힘들겠지만, 감옥과 다름없는 내부에서 밥줄은 커녕 지원 한 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견뎌내는 이들의 운동은 ‘끔찍’했다.

내게 "버마 군부가 민주화 운동가들의 탈출을 눈감고 있다"는 말은 이미 설득력 있게 들려온 지 오래다. 그들은 보기 싫은 자들이 다 떠나고, 찍소리 하는 이들도 없었으면 싶은 거다.


그리하여 한때 내부는 너무 공허했다. 2004년 11월, 민코 나잉을 비롯한 88학생운동 지도자들이 석방되기 전까지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들이 풀려나 ‘88세대 그룹’이라는 걸 조직하면서 내부는 아주 조금씩 기동을 시작한 듯 했다. 지난 8, 9월의 대규모 시위는 그런 몸부림의 한 반영이다. 그리고 그 커다란 시위에 이르기까지 전국 66개 도시에서 약 200여건의 시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었다.

나는 버마 운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국경지대에 차고 넘치는 단체들이나 난민들에게 가는 것도 의미 있지만 이 ‘버려진’ 내부에서 ‘방치된’ 현실을 딛고 꿋꿋하게 제 할 일을 하는 이들에게도 절대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지원이 몰리고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국경 밖으로 계속 빠져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군부의바람대로 내부 민중항쟁의 씨는 말라 비틀어질 것이다.

랑군=이유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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