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인수위 착오를 반면교사로
향후 5년간 향방 가늠할 시험대
전문가들 "통합국정운영 기틀을"

각 부처 식품산업 업무 농림부로 일원화, 국정홍보처 폐지, 대학학생선발권 대교협으로의 이양 등. 지난 2일 교육인적자원부 업무보고를 시작으로 대통령직인수위의 활동은 매일 신문 1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지난달 인수위가 발표한 △민생경제 활성화 △공공부문 개혁과 정부조직 개편 △해외투자 유치 및 국내 투자 활성화 △교육개혁 △부동산 안정화 △부패 척결 △청년실업 해소, 보육 및 노인복지 대책 등의 8대 의제를 위한 정책들이 하나씩 발표되면서 시민사회는 술렁이고 있다.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위해 기존의 모든 정책들은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의구심을 표시했다. 희망제작소는 지난달 27일 ‘좋은 준비, 좋은 정부’란 주제로 대통령직 인수 심포지움을 열었다. 5년의 성공을 가늠할 60일의 준비를 위해 시민사회, 언론계, 학계, 정계 등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편집자주

흔히 인수위 2달이 정권 5년보다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인수위 활동을 통해 향후 정권의 정치철학과 방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수위의 일거수일투족에 언론들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하지만 이날 심포지움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인수위 관계자들에게 지나친 관심을 경계해야 하며 좀 더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 할 것을 주문했다. “새 정부에는 희망이 없다”는 말로 첫 번째 세션의 기조연설을 시작한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10년 만의 정권교체라는 명목과는 달리 기존의 인식 틀과 알고리즘(문제해결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했다.

개별 아닌 종합적 사고 가져야

김 교수는 21세기의 핵심 키워드는 ‘관계’라고 강조하면서 인수위에게 전뇌적 사고를 부탁했다. “평가 기준이 하나 밖에 없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양자 패러다임의 시대이고 융합 과학의 시대이다. 그 동안의 관료주의가 우리를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복잡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문제를 풀었다고 국민을 호도해왔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왕태영 기자

지난달 27일 희망제작소는 '좋은 준비, 좋은 정부'라는 주제의 대통령직 인수 심포지움을 개최했다.

또한 “이제는 개별 정책이 아닌 정책군으로 묶어 사고해야 한다. 경제정책을 세울 때 산업, 환경 등과의 관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 하나만 만족시켜서도 안 되고 만족시킬 수도 없다. 세포가 유전자를 바꾸지 못한다. 세포군이 유전자를 바꿀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인수위가 철저한 분석과 종합적인 사고로 이명박 정부가 현실적으로 실천이 가능한 정책기조를 세워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공직사회를 경쟁사회로 탈바꿈하되 정부를 기업의 논리로 운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공직은 시장을 위한 서비스 조직이고 성과위주가 아니라 공덕과 공윤을 함양해 국민들로 하여금 따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통찰력 있는 인사 채용과 융합적이고 예술미학적인 정부 운영 등도 함께 제안했다.

이어진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발제는 각각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인수위에게 하는 제언들이었다.

윤 전 장관은 이번까지 총 4번이 인수위가 있었는데 우리 사회가 인수위의 기능과 활동에 대한 정확한 인식없이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특히 이번 인수위는 여야 간 정권교체와 총선을 바로 앞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인수위와 다른 상황임을 잘 인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윤 전 장관은 “인수위는 활동기간인 약 60일 동안 전임 정부의 정책을 다 파악해 ‘캠페이닝’에서 ‘거버닝’으로 옮겨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능력 갖춘 인재가 필요한데 이명박 당선자가 처음 실무 위주로 인수위를 구성하겠다고 말한 것과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새로운 인물 등용도 중요하지만 국정업무의 연속성을 감안할 때 정부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과욕은 금물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것과 성과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팀워크를 이루는 데에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과욕을 부리지 말고 성공적인 정부 출범의 기반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목했다. 전임 정부와의 단절과 차별화에 목적을 두어서도 안 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박원순 상임이사도 윤 전 장관과 의견을 같이 했다. “이번 인수위에는 과거 인수위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다”며 “좀 더 경험적인 접근으로 인수위를 구성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박 상임이사는 한국의 4차례에 걸친 인수위 경험은 대개 미국 경험들과 많이 일치한다며 미국과 같이 경선을 통해 당의 후보가 되는 순간부터 팀을 꾸려 이후 정부 구성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상임이사도 역시 정책과 정부의 일관성·지속가능성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존의 인물과 정책들이 모두 새롭게 바뀐다고 해서 새로운 정부가 되는 것은 아니라며 국정의 연속은 국정의 총체적 성공을 보장한다고 말했다. 이는 책임감 있는 인물이 임명될 경우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함께 갔으면 하는 바람도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왕태영 기자

심포지움에서는 인수위원회의 구성에서 향후 새 정부와 시민사회 관계, 정부운영, 고위직 인사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직 인수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인수위 기간은 준비를 하다 끝나버릴 정도로 짧은 기간”이라며 “이 기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내겠다는 식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점수를 잃지 않을까에 강조점을 두어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수위가 공식적인 정책 결정·집행 기구도 아니기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소화해내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정부를 잘 꾸려나갈 수 있는 사람, 전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을 잘 발굴해 동참하게 하는 업무에 비중을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무능력자의 역량 발휘

하승창 함께하는시민행동 정책위원장은 “과거 인수위 참여한 사람들을 인터뷰해보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통적으로 많은 준비를 할수록 제대로 인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통령 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의 옆에서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고 이후 관료로 직접 실행까지 하는 전체적인 팀을 뽑는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문경란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는 정책검증이 사라졌는 이번 대선의 문제점을 뒤돌아보며 인수위 기간 동안 이명박 당선자가 내놓았던 정책과 공약들을 꼼꼼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소리를 냈다.

전상희 기자

전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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