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양이 해는 없는거야"

쥐는 다산과 근면 상징
희망과 기회의 영물로도

역시 제리에게 지고 말았다. 분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 녀석은 늘 빠르고 영리하다. 숨기도 잘 숨고 나타나기도 잘 나타난다. 제리를 잡으려는 노력은 피아노에 깔려 납작해지고 문에 부딪혀 깨지고 쥐덫에 걸려 꼬리에 붕대를 감는 결과를 낳았다. 내 꾀에 당하고야 마는 것이다. 안되겠다. 매번 제리를 쫓다가 다쳐서 나만 손해 보는 악순환을 끊어야겠다.

남극과 뉴질랜드를 제외하고 전 대륙에 약 8천억 마리가 존재한다는 제리와 그 친구들을 내가 다 쫓아다닐 수도, 피해살 수도 없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제리에 대해, 아니 쥐에 대해 자료를 좀 모아봤다. 앞으론 당하고만 살지 않을 테다.

제리, 그 녀석. 한 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움 받을 때도 있었다. 서양에서는 페스트를 퍼트린, 동양에서는 식량과 살림살이를 축내는 범인으로 몰려 퇴치대상이었다.

나도 여태 그런 줄 알고 꼴좋다고 비웃고 있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꼭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당시 유럽 도시들의 갑작스런 발전으로 인구가 많아지다보니 환경을 청결하게 관리하지 못해 쥐들도 같이 증가했던 것이고 쥐에 붙어살던 쥐벼룩들이 숙주를 옮겨 다니면서 병을 퍼트렸다는 것이다.

동양에서도 사람 세계에 들어와 끈질기게 나무를 갉고 또 차곡차곡 모으는 성격 덕분에 근면하고 끈질기며 성실한 이미지로 인식되기도 한단다. 그리고 요즘엔 실험실에서 각종 의학테스트에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유전자 변형 실험용 쥐 중에는 2억 원까지 나가는 쥐도 있다고 한다. 유전자로 보면 침팬지 다음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란다. 나보다 몸값이 더 비싼 쥐도 있다니. 자존심이 상한다.

12지 신들 중 정북방향을 지키는 쥐신.

자료를 찾다가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됐다. 쥐들은 미국이 10년 동안 핵폭탄 실험을 한 섬에서도 살아남았고, 방사능 피폭 후유증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쥐들은 번식력이 왕성해 출산 후 몇 시간만 지나면 또 교미가 가능하다고 한다. 역시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그래서 쥐가 동양에서는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다. 쥐를 뜻하는 한자는 아들을 뜻하기도 한다. 다산을 상징하는 쥐에게 동양인들의 아들에 대한, 자식에 대한 염원이 담겨져 있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그러고 보니 제리의 친구이자 라이벌, 미키마우스는 벌써 올해로 80살이 된다. 나와 제리가 케이블TV에서 여전히 지지고 볶고 싸우는 동안 제리의 다른 친구들은 영화계에서 잘 나가고 있다.

스튜어트 리틀은 벌써 영화를 두 편이나 찍었고 라따뚜이는 영화 주인공답지 않은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요리사로 활약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나와 내 친구 가필드는 그 동안 뭘 한 걸까.

동양의 한국이란 나라에서는 쥐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쥐 떼가 배에서 내리면 난파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안 지역인 전남 비금도 월포리 당, 우이도 진리, 대촌리 등에선 쥐신을 모신다는데 이는 쥐가 재해가 일어나기 전 미리 알고 도망치기 때문에 영물로 생각돼서란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대통령까지 앞장서 쥐 잡는 방법을 온 동네에 전파하며 쥐잡기에 열을 올렸었다. 나도 아직 제대로 제리를 잡아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제리만 보면 괜히 괴롭히고 싶은 피가 들끓었지만 그 동안의 전적을 보면 그냥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런 저런 정보를 모아 봐도 언제 어디서나 살아남는 제리와 그의 친구들을 이기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내가 그렇게나 쫓아내고 싶어하는 데도 아랑곳 않고 자기 공간까지 만들어서 화장실과 식당 등의 구분까지 해놓으며 여유있게 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 제리를 쫓아내려고 노력해봐야 나만 손해라는 걸 이제야 깨닫다니. 차라리 친하게 지내야겠다.

게다가 동양에서 올해는 쥐띠 해이다. 쥐띠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먹을 복도 많고 근면·성실하고 꾀가 많다고 여겨진다. 또 쥐띠 해는 풍요와 희망, 기회를 상징한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한 해의 동물이니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겠지? 도대체 왜 12지에는 고양이가 없는 걸까.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