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계화운동 등 아래로부터의 흐름 주목
새 시대 비판적 지식생산 방향 고민 자리

지난해 구 산업사회학회에서 명칭을 변경한 비판사회학회(회장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지구화의 흐름 속에서 ‘탈국가적 상상력’에 대한 학술적 논의를 모으는 자리를 오는 11일과 12일 양일간 숙명여대 사회교육관 5층에서 진행한다.

그동안 지구화(세계화)의 성격 및 지구화가 동반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에 대한 연구들은 상당히 진척돼 왔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회과학 자체가 그 인식론과 사회과학적 상상력을 어떻게 전환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크게 진전되지 못했다는 것이 이날 심포지움에 참석한 이들의 지적이다.

한국 비판학계의 진전 모색

이들은 근대 사회과학이 기본적으로 ‘국민국가’, ‘국민경제’, ‘국민국가적 시민사회’를 전제로 상상력이 발휘돼오고 지적 생산이 이뤄졌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제 이는 거대한 변화 속에 과거의 일이 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경제적, 정치적, 법적, 군사적, 문화적인 초국경적 상호연계성이 증대하고, 주권국가의 규제능력이 일정한 영역에서 도전받고 감소함에 따라 국민국가의 성격, 범위, 통제능력이 위로부터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 지역적, 지구적 상호연계성의 확대로 인해 국민국가를 뛰어넘는 일련의 정치적 결정과 결과가 사회의 역동성과 함께 국민 또는 시민들의 일상적 삶을 새롭게 규정한다고 지목한다. 나아가 그동안 대표성과 책임성 있는 정당한 권력체계로 간주된 국민국가가 이미 국민국가적 경계를 벗어난 여러 가지 초국경적 운동들, 특히 반세계화운동 등에 의해 아래로부터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비판사회과학의 지적 상상력이 이제 단순한 국민국가적 상상력의 차원을 넘어 어떤 형태로든 ‘탈국가적 상상력’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란게 이들의 관점이다.

비판사회학회는 “이 학술대회가 탈국가적 상상력의 구조적 근거들 및 관련된 다양한 논의들을 끌어어 한국의 사회과학이 지구화 시대에 새로운 상상력을 모색하는 지적 논의의 장을 마련해보고자 한다”며 “논의는 1차적으로는 학술적 의미를 담지만 한국처럼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정서가 강한 사회에서 어떻게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적 정서가 재위치 지워져야 하는가에 대한 대중적인 의미도 갖는다”고 설명했다.

민족·국가주의 재정립 시도

심포지움에선 정치학 쪽에서는 지구화에 따른 국가의 위상변화와 관련된 다양한 논의, 경제학적으로는 지구화와 국민경제의 초국경적 통합과 관련된 토론이 진행된다.

사회학이나 문화학 쪽에서도 지구화와 시민사회의 변화, ‘트랜스-내셔널한 문화이동’과 관련된 여러 논의들이 이어진다.

왕태영 기자

지난 2006년 7월 12일 시청앞 광장 한미 FTA 반대 집회

비판사회학회는 “지구화된 세계경제의 맥락에서 사회과학의 대부분 주제영역은 그것이 권력이든 혹은 민주주의이든 자신의 논지를 새롭게 재구성해야만 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며 “사회과학의 협소한 한 분과학문에 얽매이기 보다는 범사회과학의 차원에서 ‘지구화 시대의 비판적 지식생산’의 방향을 고민하는 자리가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반면 지구화 시대에 요청되는 탈국가적, 탈민족적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그것의 복잡한 성격을 드러내려는 시도도 병행된다. 예를 들어 현재 사회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한미FTA는 지구화의 관점에서 볼 때 단지 교역상의 금전적인 손익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근본적인 국민국가적 주권의 문제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한미FTA에서 국민국가의 주권을 심각히 제약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도입은 근본적으로 탈국가적, 탈민족적 성격을 띠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 국민을 미국인으로 만들어주지 못하는 점’에서 매우 비대칭적인 지구화, 자본의 세계화, 노동의 국민화 성격을 띠고 있는 설명이다.

이론 넘어 실천 활동 논의

또 변화하는 시대의 ‘다중’을 이야기 한 하트와 네그리(Hardt and Negri)처럼 전지구적 주권의 형성을 찬양하면서 이러한 국민국가 주권의 약화를 무조건 찬양할 것인가 아니면 전통적인 국민국가 주권의 수호를 주장할 것인가를 되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기든스는 지구화가 ‘저기 멀리’(out there) 떨어져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 ‘바로 여기’(in here)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지구화 시대 탈국가적, 탈민족적 상상력에 대한 논의는 단지 이론적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문제들을 파악하고 진단하는 데 있어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작업이 될 것이란 화두다.

이날 심포지움은 특히 과거 개발 국민국가 시대의 향수를 다시 되새기려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주목되는 학자들의 논의 자리이기도 하다.

▶주요 발제 핵심 키워드 세계주의와 애국주의 [발표: 김명섭 연세대 교수] “세계화는 일종의 자연현상과도 같다. 그것이 오히려 자연현상과도 같기 때문에 일정한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국가가 그러한 관리를 위한 최적, 최선의 주체는 아닐 것이다. 다만 유용한 도구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이행기 논쟁과 장기 21세기 [발표: 백승욱 중앙대 교수]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적 탄생이 장기 16세기에 걸쳐서 진행된 과정이었던 것에 비견해 현재 이행의 시대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좀 더 긴 ‘장기 21세기’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 가정해 볼 필요가 있다” 캘리니코스의 반자본주의 이론과 전략 [발표 : 정성진 경상대 교수] “반자본주의 이론과 전략에 관한 캘리니코스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최근 논의를 정리하고 관련 쟁점을 검토, 기존연구의 공백을 메우고 반자본주의 운동의 이론과 실천의 발전을 검토해 본다” 지구화 시대의 국가변화와 탈국가적 상상력 [발표 : 지주형 연세대 교수] “지구화에 따라 국민국가체제 하에서도 탈(국민)국가적 경향은 나타나지만 이러한 경향은 현실적으로 제국주의와 자본의 논리의 지배 하에 있다. 현실적으로 국민국가 없는 지구화는 있을 수 없다” 지구화 시대의 정보화와 탈국가적 상상력 [발표: 서이종 서울대 교수] “세계적 차원의 문화적 다원주의의 이상이 현실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배태되는 미국식 문화적 다원주의의 지배에 놓여 또 하나의 제국주의로서 정보제국주의의 경향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지구화 시대 여성주의 연대의 정치적 확장 [발표: 이나영 중앙대 교수] “지구화는 새로운 노동자 계급의 형성, 이주의 여성화와 여성의 빈곤화, 국가간 빈부격차의 확산, 신자유주의 논리 및 신제국주의의 확산 등 초국적으로 대응해야할 여러 가지 문제들을 낳았다” 지구화 시대의 국적 및 시티즌십: 근대국가, 시민권, 주체 [발표: 최현 제주대 교수] “문화적 동질성을 확보한 후 초국민적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초국민적 공동체에 대한 상상은 초국민적 시티즌십에 대한 상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의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사회적 과제 [발표: 이종구 성공회대 교수] “한국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진영은 다문화를 지향하는 가치관과 민중의 국제적 연대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당위성을 인식하게 됐다. 이주노동자 운동은 운동의 건강성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주권의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이중국적의 논리 [발표: 이철우 연세대 교수] “세계의 여러 사례들을 들어 이중국적이 주권의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를 도모하는 국민국가의 논리를 담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중국적의 빈발이 탈국가적 현상이라는 관점을 반박하고자 한다” 탈민족 국가시대 국적문제와 동포 및 국민에 대한 정의 [발표: 이승원 영국 에섹스 대학원 박사과정] “민족주의’, ‘동포’, ‘국적’, ‘국민’이라는 네가지 이데올로기적 대상들에 대한 문제의식은 민주주의의 경계선에 작동하는 제도적 폭력의 성격과 영역확대를 위한 투쟁의 의미라는 새로운 인식의 장” 지구화시대 새로운 주체의 등장과 사회운동의 방향 [발표: 윤수종 전남대 교수]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계급 대 계급의 권력 장악 방식이 아니라 영원한 개량을 향해 나아가는 다차원적이고 연속적이며 우라늄 농축하듯 하는 영구혁명이 있을 뿐이다” 반세계화운동의 이념과 탈국가적 상상력 [발표: 원영수(진보평론)] “반세계화운동의 현국면은 일종의 조정국면, 그 성과와 한계가 동시적으로 맞물려 운동 자체에 대한 총체적 재평가와 이후의 전략에 대한 논의에서 구체적 성과를 도출해야 할 시점에 있다” 아래로부터의 지구화와 탈민족적 상상력 [발표: 임지현 서강대 교수] “‘국사’의 패러다임에 입각한 역사논쟁은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적대적 공범관계’와 그것을 강화시키는 ‘국사’의 헤게모니적 역할을 드러냈다. 이를 해체하는 작업은 일국적 틀에 갇혀선 곤란하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민중적 민족주의 [발표: 김귀옥 한성대 교수]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민족주의는 낡은 것이거나 매력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 분단국가주의를 넘어서서 전체 민족주의적 인식을 갖게 될 때 분단적, 국가적 사고를 뛰어넘을 수 있다”

정리=이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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