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에 작은 날개 달고 새벽안개 걷히고 나면 구름사이 새어나오는 그 빛을 따라 올라 날아가고파….”

16살 나이에 일본 정신대 위안부로 끌려간 연이는 좁은 방, 깊은 어둠 속에서 작은 날개를 달고 빛을 따라 올라가고 싶었나보다. 연이를 그리며 연이가 되어버린 만화가 권태성 씨의 귓가에 드라마 ‘하얀거탑’에서 흘러나왔던 음악 ‘날개’가 무한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면.

외울 것이 많아 유독 싫어했던 ‘국사’였지만 권 씨의 가슴에 새겨져 손끝으로 펜을 따라 그려져야만 했던 한 구절이 있었다. ‘여자들까지도 정신대라는 명목으로 끌려가 희생되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 당했다. 그 동안 정신대 위안부 관련 자료를 스크랩해놓은 것을 토대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나눔의 집을 방문하며 다시 자료를 모았다.

“처음에는 할머니들한테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어요. 워낙에 당신들의 아픔을 가지고 뭔가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지치셨던 것 같아요. 그 때 받은 자료들과 할머니들 수기집을 반복해서 읽고 만화를 그렸죠. 만화책이 나오고 갖다 드리니까 그 때는 굉장히 잘해주셨어요.”

왕태영 기자

일본에서 먼저 관심

권 씨는 수기집에서 이야기를 토대로 상상력을 더해 만화를 완성했다. 지난 2006년 5월 홈페이지에 먼저 올린 ‘다시 태어나 꽃으로’는 귀여운 그림체와 다르게 심각한 정신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뤄 네티즌으로부터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적극적인 반응은 일본에서 먼저 왔다.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의 무라야마 잇페이 연구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시 태어나도 꽃으로’ 일본어판을 만들어 일본에도 소개하자는 잇페이 씨의 말에 무척 기뻤습니다. 제가 원하던 바였으니까요. 잇페이 씨의 도움으로 번역 작업이 끝나고 같은 해 6월 네이버 재팬과 일본 야후에 올렸어요. 예상대로 일본인들이 엄청난 악플을 달기 시작했고 제 홈페이지도 악플 공격을 받았습니다.”

현재 권 씨의 홈페이지인 www.overkwon.com에 ‘다시 태어나도 꽃으로’ 일본어판 만화에는 약 7천 개의 댓글이 달려있다. 내용은 없지만 너무 많이 댓글이 달려 있어서 그 게시물을 열면 시스템 오류가 나 인터넷 창이 꺼져버린다. 일본에 만화가 소개된 다음부터 시작된 일이다. 처음엔 댓글을 일일이 지웠지만 현재는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그들 외에도 공감해주는 사람들의 조용하면서 뜨거운 호응에 권 씨는 계속 희망을 갖고 그림을 그렸다. 친구의 도움으로 영문판도 만들었다. 일본 시민단체에서 더 관심을 갖고 책으로 출간해도 되겠냐고 연락이 왔다. 일어판과 영문판이 각각 다른 책에 실려 출간되었고 이후 UCC로도 제작돼 유투브에도 오르며 다시 해외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았다.

만화 통한 사회와의 대화

“한국에서도 더 많은 단체들이 제 만화를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중국어판도 만들어져서 한국 외에도 정신대 위안부로 고생하신 분들 이야기를 널리 알리는 데 제 만화가 쓰였으면 해요.”

이번에 ‘다시 태어나 꽃으로’가 실린 책에는 유기견 이야기를 다룬 ‘괜찮아요’도 실렸다. 만화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만화가들이 있다지만 만화로 사회를 이야기하는 만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권 씨는 ‘책무’라고 말했다. “대학 때 학생회장을 하기도 했지만 그 때에는 운동권도 아니었고 사는 게 바빠 관심도 없었어요. 저는 뒤늦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케이스죠. 어린 나이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대중들에게 알려야 하는 어떤 책임감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책에 실린 그림들은 모두 연필로 그렸다. 친구의 습작노트를 몰래 보는 것처럼 그의 만화는 비밀스레 가슴으로 전해진다. 정신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이전에도 만화로 나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성인만화 코드로 흘러가면서 그 문제가 알려질 수 있는 대상이 제한되어 버렸다.

“초등학교 선생님들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아이들한테 가르칠 때 사용해도 되냐고. 가장 바라던 바였지요.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어린 시절, 어린이들의 로망이라는 만화가게를 했던 덕분에 자연스레 권 씨는 그림을 따라 그리며 자랐다. 하지만 굳이 만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책에서 권 씨가 표현했듯이 꿈이란 녀석은 늘 주위를 맴돌며 자신을 바라볼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결국 만화를 그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그는 만화가가 됐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달라는 목소리들을 피하기가 힘들다고 권 씨는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 책

자료를 모으던 중 어느 할머니의 수기에서 다시 태어나면 꽃이 되고 싶다는 구절을 보고 만화의 제목이 정해졌다. 아름답게 피었다가 이내 사라지고 말지만 오랜 기다림 뒤에 다시 피어나는 꽃처럼 정신대 위안부 할머니들도, 권 씨의 만화를 읽는 모든 사람들도 삶의 많은 아픔을 겪으면서 다시 아름답게 태어나게 되길.

전상희 기자

전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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