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로 규정 확성기 등 사용 해산 종용

경찰이 시민·사회단체의 옥외 기자회견을 ‘집회’라며 해산을 종용하거나 진행을 방해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신문> 확인 결과 일선 경찰서 사이에서도 옥외 기자회견와 집회의 구분기준이 다르거나 명확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이명박 당선자가 신년사에서 ‘떼법’, ‘정서법’을 거론하면서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 이후 경찰의 눈치보기가 시작된 것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명확한 기준 없이 집회 기준을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의존케 하는 현행 집시법의 개정요구도 재점화되고 있다.

지난 29일 국회 국민은행지점 앞에서 열린 인권·장애인 단체의 기자회견에서 경찰은 ‘연사가 발언하고 참가자들이 구호를 선창한다’는 이유를 들어 미신고 집회로 규정, 해산을 종용했다. 경찰은 이날 확성기를 사용해 기자회견을 방해했다. 30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개정 입법청원안 발표 기자회견에서도 경찰은 미신고 집회라고 주최 측을 압박했다.

앞서 지난달 24일 독립문 앞에서 열린 국가인권위 대통령 직속 반대 기자회견에서도 경찰은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었다는 이유로 3회에 걸쳐 해산 경고 방송을 했다. 확성기 사용을 막는 과정에서 경찰은 집회 참가자의 머리를 가격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지현 참여연대 의정감시팀장은 “경찰이 피켓을 사용하는 등 집회 성격이 있다고 말해 법적 근거를 들어달라고 요구했다”며 “나중엔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 해달라며 더 이상 방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의도 국민은행 앞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국회 회기 중 법안 관련 기자회견 대부분을 열었던 장소다. 지난해까지 경찰이 경고방송을 내보내면서 기자회견을 방해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과잉대응 논란이 일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경찰에게 자의적인 해석과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집시법의 포괄적인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미국의 경우 수정헌법 1조에서도 표현권을 강조하고 있으며 관련법에도 보장 측면을 강화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제한된다”고 지목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집시법은 보장 중심이 아니라 규제 중심으로 주객이 전도됐다”며 “헌법적 관점에서 집시법이 전면 손질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우리나라 집시법은 경찰청에 너무 많은 재량을 주고 있다”며 “누더기 집시법을 유지시킨다면 결국 불복종운동이 나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심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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