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격변기였기 때문에 수업거부도 유난히 많이 했던 대학, 어쩌다 수업에 들어가도 배우겠다는 자세가 안 되는 학생과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던 대학, 그 대학이란 것이 이렇게 ‘비싼 것’이었구나! 대학생이란 것이 그저 합격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돈을 풍덩풍덩 바쳐야 누릴 수 있는 신분이었구나! 나는 당시 이런 바보 같은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다.
본전 뽑기 힘든 대학
그 이후 나는 학교에서 본전을 뽑기로 했다. 따야 하는 학점만 억지로 신청했던 이전과는 달리 학점과 상관없이 그저 끌리는 수업은 다 찾아가보고(‘칵테일 만들기’나 ‘바람직한 성’ 이런 것도 들었다), 저렴한 학교 커피와 식당 밥도 더 많이 사먹고, 도서관 책도 더 많이 빌리고, 한마디로 나는 아까운 학교를 애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난 학교에서 본전을 뽑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너무 비싼 대학….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던 중 나는 한겨레신문에서 ‘언론학교’ 광고를 보게 되었다. 민언련의 전신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서 하는 대중강좌였다. 직장인의 삶이 무료해지기 시작했던 나에게 눈에 확 들어왔지만 당시 5만원 용돈을 쓰던 나에게 5만원의 학비는 많이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기 언론학교를 신청했고 1992년 2월 첫 수업을 들었다.
나는 지금도 언론학교 첫날이 너무 생생하다. 작은 강의실에 사람이 꽉 찼고, 서 있는 사람들은 ‘지옥철’처럼 붙어 있어야 했다. 환불소동이라도 일어날 법한데 오히려 수강 신청자들은 서서라도 듣겠다며 입학허가를 졸라댔다.
첫 강의를 하셨던 서울대 이상희 선생님은 그때도 포근하고 현명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셨는데 칠판에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그리셨다. 그리고는 세상은 이렇게 동그랗게 생겼는데 언론은 세상을 네모라고 보여주기도 하고 세모라고 보여주기도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그 말씀은 언론은 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너무 쉽고도 강한 메시지였다.
본전 뽑고도 남은 언론학교
첫 강의 이후 120명 동기들은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키우는 개를 팔아 수강료를 마련해왔다는 농부 아저씨, 중년을 훌쩍 넘기신 노작가, 전교조 활동 때문에 학교를 떠나야했던 선생님, 주부, 대학생. 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박수치고 웃는 동안 나는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언론에 불만과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음을 보며 언론개혁의 필요성이 머리가 아닌 가슴과 눈으로 각인되는 시간이었다.
이후 나는 언론학교에서 강의 듣고, 조별토론을 하고, 술을 마시고, 모꼬지 가고, ‘신문비평팀’을 만들어 선거보도감시활동을 했다. 그 삶이 이어져서 지금 나는 민언련에서 활동가로 일한다. 한마디로 본전을 뽑고도 남은 것이다.
언론학교는 지금 64기 언론학교 신입생을 모집 중이다. 언론학교 뿐 아니라 시민단체에서 참 많은 강좌를 연다. 사람들이 그 강좌에서 지식만을 얻어갈 것이 아니라 설레임과 감동, 그리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활동으로까지 연결시켜보겠다는 ‘본전 의식’을 가져봄이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경제를 중시하는 시대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경제의식이 아닐까.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협동사무처장
김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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