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플레이션. 지구촌을 위협하다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와 살과의 전쟁 저편에서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

전 지구적 식량난이 현실화하고 있다. 기후변동으로 말미암은 잦은 폭우와 가뭄. 서리 등 냉해가 곡물수확에 악영향을 주고 중국. 인도 등 신흥공업국의 경제발전으로 식량수요량이 지속적으로 늘어왔다. 여기에 더하여 석유가격 급등은 곡물 생산. 수송비 인상과 함께 곡물을 사용하는 바이오연료개발을 부추겨 옥수수. 콩 등 곡물가격 폭등을 불러왔다.

전 지구적 식량난이 가져오는 문제는 다양하다. 식량이 부족과 투기화로 가격이 오르면 곡물을 원료로 사용하여 만들어내는 음식과 가공 식품가격이 오르고 곡물사료가 원료인 육류 가격이 올라 인간 식생활의 질과 양에 직접적 악영향을 준다. 다음 문제로는 식품가격이 오르면 낮은 소득으로 생활하는 가난한 계층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더 낮아지게 되어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이는 기타 물가인상으로 확산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처럼 전 세계적 곡물가격 급상승은 인간 생활의 모든 부문에 악영향을 주고 모든 물가상승에 견인차구실을 하고 있다. 식량 등 농산물가격이 오르면서 식당 음식과 가공 식품가격이 오르고 다른 물가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현상을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라고 한다. 애그플레이션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일반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식량수요는 늘어가는 데 생산은 제자리걸음이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세계 곡물가격 급등을 불러온 큰 이유 중 하나로 미국달러화 약세를 지적한다. 계속되는 무역적자. 재정적자로 달러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미국 국내경기활성화를 위해 금리 인하를 계속해왔다. 미국의 거대자본이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자 석유와 철광석. 금 등 원자재와 함께 국제 곡물시장으로 눈을 돌려 투기성 투자를 시작한 것이 폭발적인 곡물가격 상승을 불러온 것이다.

국제 곡물가격은 2005년 이후 평균 75%가 올랐다고 한다. 2005년 9월 1t당 132. 66 달러이던 밀 값이 2007년 12월에는 125%나 오른 298. 44달러에 거래되었다. 쌀 가격은 2008년 1월 시카고 상품거래소 기준으로 1년 전보다 33%나 오른 가격에 거래되었다. 2007년 1월부터 2008년 1월까지 1년간 상승률을 보면 콩은 95.8% 밀은 79.9% 옥수수는 25%가 올랐으며 지금 현재도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전 세계 주요곡물 생산증가율은 약 1%에 머물러 왔다. 반면 1987년 16억 8651만 t이던 전 세계 곡물 소비량은 2007년에는 21억 413만 t으로 약 24%나 늘었다.

석유가격 급등으로 바이오에너지 시장이 급팽창하는 현상도 곡물가격상승의 직접요인 중 하나이다. 휘발유 대체연료인 “에탄올”을 만드는데 옥수수를 대량으로 소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2년 20억 갤런의 에탄올 생산량이 2007년에는 세배가 넘는 70억 갤런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현상은 브라질 등 남미와 유럽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특히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사용하는 옥수수와 사탕수수의 재배면적이 늘어가는 만큼 다른 작물의 재배면적이 줄어들어 곡물가격급등을 이중으로 부채질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증가율보다 곡물소비량이 더 많이 늘어가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중국. 인도 등 신흥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이다. 경제상황이 나아지면서 더 많은 먹을거리를 소비하게 된다. 특히 곡물사료가 주원료인 육류 소비가 크게 늘어 곡물소비증가. 가격 급상승의 주범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1kg의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돼지고기는 3kg의 곡물을. 쇠고기는 약 8kg의 곡물을 소비한다.

중국의 예를 보면 1985년 1인당 연간 20kg이던 육류 소비량이 20여 년 후인 2007년에는 50kg으로 배 이상 늘었다. 대한민국의 사례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세계적으로나 국내 현실로 볼 때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경지면적의 대폭적인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에 도시화로 기존 농경지가 사리지는 현상이 빨라지고 있다. 중국. 인도. 베트남 등 신흥 공업국의 식량소비. 육류소비 증가. 에탄올 등 바이오연료 생산 증가. 기후 변동 등으로 “애그플레이션시대”는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인 “애그플레이션 현상”으로 많은 나라에서 사회. 정치적 불안이 현실적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러시아는 보리는 30% 밀에는 10%의 수출세를 부과해 수출을 통제한다. 우크라이나는 콩. 옥수수. 밀에 수출한도 정해 그 이상의 수출을 막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밀과 밀가루에 대해 수출승인을 중지하고 있으며 쇠고기의 수출량도 통제하고 있다. 중국은 2008년 1월부터 쌀. 옥수수. 밀. 밀가루 등 주요 곡물의 수출에 5~25%의 수출세를 부과하고 있다.

식량 자급률이 낮은 우리에게 더욱 큰 문제는 주요 식량생산국들이 “식량 무기화”를 택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마치 석유 수출국 기구 회원국들이 “석유 무기화”를 실천하듯이 본격적으로 식량 수출을 통제. 높은 가격을 유지하려 할 경우 식량자급률이 낮은 나라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식량안보”를 말해왔다. 쌀을 포함한 전체 식량지급률은 사료용 곡물 포함 약 28%에 이른다. 그러나 쌀을 제외하면 2006년 기준 총 식량지급률은 약 4.6%에 불과하다. 쇠고기는 약 48% 돼지고기. 닭고기 포함 육류 총 자급률은 약 70%에 이르지만 이 또한. 대부분 수입 곡물을 사료로 먹여 키운 만큼 식량안보차원에서 볼 때 자급률 수치는 큰 의미가 없다.

쌀 1개 품목의 자급률은 달성했으나 다른 품목의 자급률을 보면 밀은 0. 2% 옥수수는 0.8% 콩은 13.6%에 불과하다. 좁은 국토에서 식량생산을 위한 경지면적을 늘려갈 방법은 매우 제한적이다. 해안 간척. 매립. 산지 개간을 통한 대폭적인 경지면적확대는 환경적 측면에서 볼 때 불가능에 가깝다.

당장 채택할 방안으로는 쓰레기 처리장이 넘칠 정도로 버려지는 음식물 낭비를 줄이는 일이다. 두 번째로는 남아도는 쌀 소비를 늘리고 육류와 밀가루 음식 소비를 줄여가는 방법이다. 두 가지 방법 다 말로는 쉬우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어 큰 성과를 보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석유무기화 시대. 애그플레이션시대를 슬기롭게 이겨나가고자 하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한용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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