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대통령 노무현

고춘식 연재 칼럼[3]_어둠을 파다, 꿈을 캐다 고춘식l승인2008.02.25 11:48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2002년 12월, 대선 마지막 유세가 열리던 종각역에서 노무현 후보를 처음 보았다. 마지막 유세치고는 생각보다 청중 수가 너무 적었다. 날씨 탓이랄까. 마음은 을씨년스러웠다. 기억이 분명하지 않지만, 노무현 후보는 청중들에게 정몽준을 소개했고, 이어서 우리 당에는 정몽준만 있는 게 아니라 정동영도 있고 추미애도 있다면서 그들의 손을 추켜올린 것 같다. 청중들은 아주 큰 박수로 화답을 하기도 했다. 그 때 정몽준의 표정을 살필 필요는 없었다. 우리 당에는 이렇게 인물이 많다, 그러니 정권을 맡아도 충분히 나라를 잘 이끌어갈 수 있다, 그러니 나에게 표를 달라... 이런 뜻이었으니 말이다.

“10년을 헛살았다”


유세가 끝나고 뒷골목에서 함께 간 사람들과 술을 몇 잔 하면서 투표 결과에 대한 무거운 예상들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던 버스 속에서 청천벽력 같이 정몽준이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는 방송을 들었다. 어찌 믿어지겠는가. 불과 몇 시간 전에 바로 그 현장에 있었던 내가 아닌가? 아, 이게 정치라는 것인가?정몽준이란 사람은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아니 이 지구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려고 저럴까...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자택을 찾아갔는데 만나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정몽준의 지지 철회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고도 했고, 더 결정적인 것은 조선일보가 매우 신속하고도 친절하게 호외를 발간하는 바람에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도 했다. 우리나라의 정치사가 이렇게 극적으로, 그러면서 수많은 국민의 환호와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8년 2월은 어떤가.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노 대통령의 입은 무거웠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5년 동안 혹독한 시련을 겪었는데, 그 시련은 ‘노무현 대통령’과 ‘대통령 노무현’이 바뀌고 뒤섞이면서 시작된 게 아닌가 한다. 많은 국민은 ‘대통령다운 노무현’을 바랐는데, 반대로 ‘노무현다운 대통령’으로 국민 앞에 너무 자주 나타났다. 말의 내용을 씹어보면 틀린 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되면서 지지자들까지도 기대를 접게 되었고, 불신이 쌓이면서 ‘노무현’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정나미가 떨어지면 아무리 옳은 정책을 논리적으로 얘기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서히 외로워지기 시작했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명하고 설득을 해도 먹혀들지 않았다. 노 대통령에 대한 거부 반응은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 개가 나와도 당선될 거라는 외신 보도가 나올 정도였다.

문정현 신부님은 ‘지난 10년을 헛살았다’고 가슴 쓰린 고백을 했다. 그 기사를 읽어 가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두 명의 민주 대통령이 다스린 10년인데, 이 시대의 큰 어른 입에서 어찌 이런 통한이 나와야 하는 것인가?

노무현의 한 시대가 끝났다. 대통령으로서의 기본적인 권위마저 잃은 것은 문제지만, 앞으로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이 나올 수 없게 한 것은 그 나름의 업적이다. 탄핵 정국 속에서 국민들이 주인 의식을 실감나게 체험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공적이다. 보수 단체들까지도 집단적으로 대통령에게 들이대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앞으로 독선적인 대통령이 나온다면 국민들이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5년은 민주주의 학습을 제대로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국민 주인의식 체험은 공적

‘조중동’의 적대적이고, 철저한 능멸 속에서 5년을 그나마 견딘 것도 평가할 만하다. 대통령으로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듯한 거대 언론들의 집요한 학대가 5년 내내 계속되었는데, ‘권위주의’까지 버린 대통령이 어찌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임기가 끝나니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 정치사에 이런 대통령이 한번쯤은 나올 만하지 않은가? 메마르고 척박한 정치 무대에 이런 등장 인물을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것은 아닐까.

노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이어갈 대통령들과 정권들에 의해서 계속 새롭게 평가될 것이다. 바라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차라리 그립다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될 테니까 말이다.


고춘식 한성여중 교사·본지 편집위원

고춘식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고춘식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