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후유증 크다"

정부제공방제장비 건강보호엔'무용지물'

“태안 기름유출사고 피해주민들이 생활고에 건강까지 해치는 상황은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태안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지 85일이 경과했지만태안주민들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등 심리적 고통과 함께 신경계 증상 및육체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심리적 고통의 수준은 대구지하철 참사를 상회하는 것으로 확인돼회복을 위한 생계안정 등 지원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환경운동연합 시민대책단

기름유출과 부실방제로 인한 태안주민 신체건강 및 정신적 피해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이4일 프레스센터 18층 언론노조 강당에서 열렸다.

보건의료단체연합과 녹색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달 16일부터 17일 양일간 기름유출 피해를 입은 태안군 소원면 모항, 법산, 의항 등의 주민 325명을 대상으로 면접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에서는 방제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주민 65명을 포함시켜 방제작업이 건강상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비교·분석했다.

조사에 응한 방제작업 참가주민 가운데 60%를 넘는 주민들이 한 가지 이상의 정신·심리적 이상증상을 보였다. 특히 자살 충동이 광범위하게 나타난 것으로 드러났다.

주민들의 61.5%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고통받았고 우울증(44%), 강박장애(39%), 불안장애(28%) 등 심리적 불안상태를 보였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자연재해나 인위적 재난, 사고 등 급격한 충격으로 인해 나타나는 이상 심리증상으로 세계무역센터 붕괴, 스페인 폭탄테러 이후 피해자들에게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사고 피해자의 가운데 10%, 참전 병사 중 15% 정도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대구지하철 참사 피해자 가운데 50%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증상을 보였다.60%를 상회하는 비율은 심각한 수치”라고 말했다.

심리적 불안 자살 충동으로

심리적 불안은 자살 충동으로 이어졌다.설문조사 1주일을 전후로 ‘죽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63명(20%)으로 응답자 5명 중에 한 명이 자살을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41명은 매일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이 가운데 6명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거나 계획한 것으로 답해 심리적 외상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었다.

조용범 생명인권운동 대표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충격 직후 1차로 치료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사고 직후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2차적 증상으로 이어진다”며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2차적 상태로 전이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적절한 치료법인데, 치료가 되지 않을 경우 알콜 중독, 가정파탄, 자살 충동으로 이어진다”며 “이 문제가 본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녀의 정신병리증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빈곤의 되물림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사후적인 조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방제장비 미비로 두통 등 신경계 증상

최예용

방제작업 현장에서 주민 설문을 진행하는 모습

이러한 심리적 후유증과 함께 신체적 이상징후도 적신호를 보였다.

방제작업 참가자들은 하루 평균 7.14시간 작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방제장비 미비로 광범위한 건강피해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두통(70%), 메스꺼움(58%) 등의 후유증이 나타났고 특히 눈과 관련 된 증상 및 신경계 증상의 경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눈 충혈 증상의 경우 작업을 하지 않은 대조군와 비교해 10배 높은 발병률을 보였다.

하지만 방제작업에서 보호용 장비 착용한 경우는 드물었고 그나마도 적절하지 않은 방제장비여서건강상태를 악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방제작업자 260명 가운데 유기용제용 마스크를 착용한 경우는 고작 8명에 그쳤고 단 6명만이 유기용제용 장갑과 보호용 고글을 사용했다고 응답했다.

172명이 방제복을 지급받았지만 피부가려움과 피부발진 등 증상은 착용여부에 관계없이 높은 수치를 보여 정부지급 방제장비가 효과에 있어선 '무용지물'이었다.

주영수 한림대 교수는 “방제장비가 유기용제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던 적절한 것이 아니었다”며 “방제복이라는 것만 확인한 상태에서 용도에 맞지 않은 장비를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결과에 대해 녹색연합, 건강의료단체연합 등 기자회견 참가단체들은보건복지부 등 관계기관이 정신적 피해, 신체 건강 피해 부분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생계안정 이뤄져야정신적 외상 극복"

이와함께참가 단체들은 정부가 생계안정을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할것을 요구했다.건강문제로 고통받는 주민들이경제적 지원을 호소하고 있고,생계안정이 심리적 후유증을 완화하는전제조건이기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정부의 선보상(33.3%), 기초생계비 지원(22.2%), 삼성중공업의 무한 배상(24.4%) 등 생계관련 문제 해결을 가장 중요하게 풀어야 할 과제라고 답했다.

참가단체들은 특히 피해상황에 대한 기록과 실태가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면서 IOPC(국제유류오염보상)펀드 규정에명시돼 있는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이나타날 것을 우려했다. 단체들은 “정부가 피해상황을 종합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할 수 있는 총괄 지휘본부를 구성해 IOPC펀드 배상한도액 3천억원을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역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정부는 초기 대응에서 실패했다. 방제에 대한 매뉴얼이 미작동했고, 적절한 방제장치 미지급됐다”며 “더 이상 대응을 늦출 수 없는 현장 상황을 고려한다면 지휘본부 체계만이라도 조속히 구성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이어 “펀드의 배상금액을넘어서는 피해에 대해선 ‘중과실 입증’을 철저히 가려 사고 1차 책임자인 삼성중공업에게 무한책임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재훈 기자

심재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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