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지난해 아주 고통스러운 대통령 선거 과정을 겪었다. 아니 차라리 선거를 앓았다고 하는 것이 더 나을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많은 국민은 참담한 좌절과 배신감을 날마다 되씹어야 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언제 어떻게 끝나게 될지 모르는 이 정치적 상처는 고스란히 우리가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민주주의의 꽃의 하나인 선거가 축복의 잔치가 아니라 또 하나의 상처를 생산하는 절차에 불과하다면 너무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름지기 선거권이란 국가나 자치단체의 공직에 취임할 자를 선거하는 국민의 권리를 의미한다. 선거를 선거인단이라고 하는 합의제기관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직에 취임할 자를 선임하는 행위라고 이해할 때에는 선거권이란 이 선거인단을 구성하는 선거인의 지위이고 직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거권은 국민의 중요한 권리인 동시에 선거권의 행사는 국민의 중요한 의무다.

하지만 제18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된다. 우리는 과연 선거를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 결과적으로 우리의 ‘지배자’를 뽑고, 어찌 보면 점령군을 뽑는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선택’이라 말할 수 있는가. 우리의 양심과 양식을 능멸하는 세력을 법적으로 공고하게 만들어 주는 과정을 선택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되는가. 다수결에 의해서 수많은 또 다른 다수가 상처를 입게 되는 그런 선택은 과연 의미 있는 제도인가. 누구에게는 선택이고 누구에게는 강요가 될 수 있는 이 절차는 민주 사회에서 필요악인가.

영남이나 호남에서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그 몰표 현상을 과연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후보나 그 후보가 소속된 당이 무슨 짓을 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 선택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며, 그것을 선택했다고 해도 되는 것인가.

선택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진정으로 ‘선택’하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유권자인가, 아니면 출마한 후보자인가. 어느 후보자가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을 위한 공약을 내세웠다면 그 후보자는 보수 유권자를 그가 선택한 것이고, 진보적인 공약을 내놓았다면 그 후보자는 진보 유권자를 그가 선택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유권자는 오히려 후보자에게 선택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각 당이 공천심사위원회를 꾸려 후보를 결정했는데, 국민의 입장보다 그 당의 존재 이유를 위하여 후보자를 결정했다면, 각 당은 그들이 필요한 후보자들을 자신들이 가려내어 유권자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 나누어준 것 중에서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서 그 권한과, 권력을 확인시키고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닌가.

다시 의문이 생긴다. 선거는 권리인가, 의무인가. 우리는 선거권을 가졌다고 하지만 진정한 권리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가. 진실이 오히려 조롱을 당하는 이 정치 현실 앞에서는 권리라는 말이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우리는 오히려 엄숙한 의무감으로 기표소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총선을 며칠 앞두고, 희망이 아니라 선거의 한계, 선거의 좌절, 선거의 의무를 말해야 하는 국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시민사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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