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꾀 말고, ‘인간’ 가르치는 큰교육 되찾자

강상헌의 한자, 인간의 맛/체덕지(體德智)와 지덕체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9.04.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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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덕지’라는 말을 어떤 글에 썼더니 ‘지덕체’를 잘못 쓴 것 아니냐고 지적해주신 분이 계셨다. 앞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군관민(軍官民)이란 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군 출신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내내 쓰이던 말이다. 말의 순서는 정치적이다. 권력의 크기라고 할까? 군인 퍼스트, 둘째는 관리(공무원), 국민은 세 번째 졸(卒)인 것이다.

언젠가 대통령이 바뀌더니 민관군(民官軍)으로 그 순서가 바뀌었다. 실은 천지개벽(天地開闢)과도 같은 변화였다. 그러나 우리 ‘국어’에서는 그 변화가 별 의미 없나보다.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에는 그 두 숙어(熟語)가 같은 뜻으로 풀이되어 있다.

‘체덕지’와 ‘지덕체’도 비슷한 관계다. 원전(原典) 즉 그 말이 생성(生成)된 근거가 된 문건으로 보자면 당연히 체덕지다. 어쩌다 그 순서가 그리 바뀌었을까?

지덕체를 풀면 智>德>體의 부등식(不等式)이 될 것이다. ‘아는 것’ 즉 지식이 가장 중요하고, 도덕 같은 사람 사는 일의 벼리(綱 강)는 그 다음이며, 튼튼한 몸은 맨 나중이다. 예외는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제도교육과 가정에서 마치 ‘원리’처럼 받들어져 온 우선순위다.

우리 삶의 터전이 학벌의 상징인 스펙과 약삭빠른 처세술 갖춘 이들만 살아남는 냉혹하고 부조리한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아닐지. ‘인간의 상실’로 줄달음치는 시대, 치유책은 무엇일까?

‘건강한 신체에 깃드는 건강한 마음’(a sound mind in a sound body)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말은 영국 철학자 존 로크가 1693년 어떤 에세이에서 ‘행복한 세상의 모습’이라고 묘사한 표현이다. 체육이 망가진 우리 학교교육에서 이 말은 어떤 뜻으로 이해될까?

‘주입식 암기를 피하고, 체육 덕육 지육과 수학적 추리를 강조하며, 소질을 본성에 따라 발전시켜야 한다’는 문구도 나온다. 그 순서가 바로 체덕지 아닌가? 그런데 우리 교육에서는 지덕체다. 외국에서 들어왔을 이 개념, 처음부터 그랬을까? 아니다.

‘대한자강회월보’에 실린 글(1906년)의 한 대목이다. ‘무릇 교육은 체육 덕육 지육의 3대 대강(大綱)이 있어야 할지니….’ 이 같은 체덕지 순서의 글이 당시 여럿이다. 이런 글도 있다. ‘셋 중 (하나를) 취해야 한다면 덕육과 지육를 버리고 차라리 체육을 취할 지로다’(대한매일신보 1908년) 놀랍지 않은가. 그러던 것이 언젠가 지덕체로 변한 것이다.

사람은 생명체다. 생명은 생동, 즉 ‘살아 움직임’이다. 그 반대는 ‘죽음’이다. 좋은 대학 가겠다며 운동을 포기한다면, 생명의 이 원리를 거역하는 것이다. 운동은 몸 안에 피(혈액)와 기(氣)가 흐르게 한다. ‘혈기’다. 몸(육체)과 정신(氣魄 기백)을 깨우는 것이다. 그게 체육이다.

운동으로 건강해지면 품성이 너그러워진다. 두뇌회전이 빨라져 공부도 일도 잘 된다. 이뻐지고 젊어진다. 아침에 꼭 운동을 하게하는 학교 학생들의 성적이 더 좋더라는 실증적인 자료도 많다. 체덕지의 순서로, 체육을 머리로 삼는 교육을 운용해야 하는 것이다.

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고 혈액의 순환도 원활하지 못하다면, 몸도 마음도 튼실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경쟁의 사회, 다만 공부로만 승부를 내야 하는 우리 학생들 심신(心身)이 무너지는 현실이다. 그 때가 튼튼한 몸과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심성을 갖추는 ‘교육의 시기’ 아니던가?

지식(지)과 마음(덕), 그것을 담는 몸(체)이 망가진 인간들의 참상을 자주 본다. 증오와 파괴다. 그래도 입시는 현실 아니냐, 우선 밥줄이 급하지, 이런 핑계로 계속 망가지자고? 아니다, 고쳐야 한다. ‘체덕지’의 새 생각으로 악(惡)의 그 고리를 끊자. 촛불이 어둠을 몰아냈듯.

▲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존 로크(1632~1704)의 초상화. ‘건강한 신체에 깃드는 건강한 마음’이라는 말로 좋은 교육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토막새김

“건강한 신체에 깃드는 건강한 마음”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하릴없는 옛 전설일까? 돈으로 제 자식 미래의 호사(豪奢)까지 넉넉히 확보하겠다는 이기주의가 상식이 됐다. 옛 과거(科擧) 시험이라 할 로스쿨 입시나 국가고시까지도 ‘똑 선생’ 과외로 공부한 부유층 권력층 자제들에게 점령당하는 시대다.

돈 없으니, 가난하니 공부를 못 한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태풍과 해일(海溢)이 지표면과 바다 속을 뒤집어 때로 세상을 청정(淸淨)하게 하는 것처럼, 교육과 사회진출의 기회균등은 세상의 최소한의 평등을 보장하는 장치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이 시스템이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부잣집 아이들이 커서 사회 요직을 얼마나 차지하는지, 거꾸로 개천에서 용이 얼마나 나는지의 비율에 관한 국가 간의 비교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편견일까? 상황이 비슷한 나라들 중 가장 나쁜 수준일 것으로 생각된다. 구체적인 수치와 원인, 개선책이 잇따라 나와야 한다.

‘몸’의 중요성을 회복하는 인간 본디의 교육으로 돌아간다면, 존 로크의 ‘체덕지’로 회귀한다면, 이런 상황이 좀 나아질까?

대부분의 시민들이 피해의식과 불신, 패배주의에 빠져있는 이 상황을 직시하자. ‘아이 낳지 않는 사회’의 치유책이기도 할 터다.​

강상헌 논설위원/우리글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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