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를따라26- 동해의 사월은 돌미역 세상

뭍은 삭은 거름내음...바다는 싱싱한 돌미역 향기 남효선l승인2008.04.1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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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은 봄을 여느라 바쁘고, 사람들은 살림살이 준비로 분주하고

온 산천이 봄을 열고 맞이하느라 분주합니다.

산천은 봄을 알리느라 분주하고 사람들은 새봄을 맞으며 한 해의 살림살이를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산으로 오르는 길섶에는 봄풀이 앞다투어 연록의 생명을 피워내고 어름장 밑으로 숨죽여 흐르던 개울물은 겨울의 흔적을 말끔히 씻으며 생명의 노래를 부릅니다.

계곡의 끝자락에는 자주색 노루귀가 ‘노루 귀’처럼 앙징맞은 꽃잎을 열어 봄 내음을 뿌리고 산천은 참꽃과 돌복상꽃 가득합니다.

삼라만상이 봄향을 풀풀 날리며 기지개를 펴는 동안 사람들은 뭍과 바다에서 싱싱한 노동을 풀어놓습니다.

봄바람에 묻혀 잘 삭은 거름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힙니다. 농꾼은 보드라운 논흙을 밟으며 논둑바르기에 나서고 아낙들은 봄을 몰고 흐르는 개울에서 봄나물을 씻습니다.

마을로 들어서는 어귀에는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달고 길섶에는 큰개불알꽃이 다다귀처럼 무리지어 연보랏빛 봄세상을 열었습니다.

4월의 울진은 ‘미역의 세상’입니다.

남효선
남효선

겨우내 그물코를 깁던 어부들은 새벽을 가르며 잘 자란 미역을 뜯기 위해 부산합니다.

울진사람들에게 미역은 생명을 버팀해 준 소중한 먹을거리이자 환금작물이었습니다. 40~60년대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던 보릿고개 시절, 미역은 울진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준 유일한 생명초였습니다.

‘미역 없었으면 울진사람 모두 다 죽었지’라는 향언이 지금도 전승되고 있듯이 미역은 울진사람들의 생존을 지켜준 버팀목인셈이지요.

돌미역(자연산 미역)은 바다 속 1.5~20m 내외의 바위군락에서 자랍니다. 이를 ‘미역짬’이라 부르지요.

미역짬은 뭍에서는 논밭이 농민의 생명줄이듯 어민들의 삶을 담보하는 텃밭이기도 합니다.

미역짬의 관리와 미역채취는 마을 공유자산인 까닭에 마을자치조직인 ‘대동추’나 ‘어촌계’에서 공동경영과 공동분배 규정에 따라 철저하게 관리합니다.

울진 연안의 해촌에서는 매년 마을별로 6월 경이면 ‘대동추'(마을 공동자치조직)나 ‘어촌계’모임을 열고 ‘미역짬’을 분배합니다. 미역짬 분배는 마을별 짬의 숫자에 따라 어촌계원들을 고르게 나누고 ‘송치'라고 부르는 표식을 ‘뽑기’형식으로 뽑아 정합니다. 공정성을 기하기위함입니다.

어민들은 자신들을 살려 준 미역에 대해 각별한 정성을 쏟아 왔습니다.

남효선
울진 해촌에는 지금도 '짬고사'라는 독특한 제의가 치뤄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미역 생장을 기원하는 고사입니다.

해촌의 아낙들은 10월 경이면 미역이 포자를 내리는 짬(미역바위)을 흡사 자기 몸을 씻듯 잘 닦아낸 뒤, 보름 달이 뜨는 날을 잡아 좁쌀을 집에서 정성껏 빚은 막걸리에 섞어 미역바위에 뿌리고 미역씨앗이 바위에 잘 붙도록 빌었습니다.

울진사람들은 또 매년 입동을 전후해 ‘짬매기’를 했습니다. 짬매기는 미역포자의 발아를 돕기 위해 돌미역이 무리지어 자라는 수중의 바위군락을 닦는 일입니다. 짬매기는 '기세닥기'라고도 부르지요.

해촌 주민들은 10월부터 11월 중순까지 어촌계별로 품앗이를 이뤄 '낫대'와 '씰개'를 들고 정성 들여 미역바위를 닦았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이미 우리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친환경적 생업기술을 체득해 온 셈입니다.

미역농사는 바람이 결정...음력 이월초하루에 영등고사

미역의 생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바람'과 '해류'입니다. 울진지방이 자연산 미역의 보고로 자리잡은 까닭은 특히 바람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울진 돌미역이 한창 출하되는 시기는 3월에서 5월 사이로, 이 무렵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로 불어 오는 '높새바람'(푄현상)은 때깔좋은 미역을 건조시키는 데 필수적인 조건인셈이지요.

때문에 울진의 사람들은 음력 이월 초하루날에 ‘바람을 관장하는 신’인 ‘영등고사’를 지내고 보름동안 풍물을 치고 별신굿을 벌이며 노동축제를 벌였습니다.

이월 초하루날 ‘날씨가 흐리고 비가 내려야’ 미역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이월 영등은 해촌에서는 설 명절 다음으로 큰 명절이자 공동축제였습니다.

울진의 최북단에 자리잡고 있는 자그마한 해촌인 ‘고포(姑浦)마을’은 동국여지승람이나 조선왕조실록에 빈번하게 등장할 만큼 이름난 ‘조선의 특산물이자 울진의 명품’입니다.

3월 말에서 4월 초순, 놉새바람이 불어오는 보름동안 고포마을을 비롯 울진연안 해촌은 싱싱한 돌미역 내음이 온 마을을 휘감고 돕니다.

동이 트기 무섭게 어부들은 ‘떼배’를 띄우고 해녀를 동원하여 돌미역을 채취합니다. 아이들이나 노인들은 ‘틀개'(3m 크기의 장대에 갈고리를 단 긴 장대)를 들고 파도에 떼밀려오는 ‘돌미역’을 건지러 불가(백사장)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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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은 연신 미역짬으로 자맥질하고 어촌계원들은 해년들이 채취한 돌미역을 ‘떼베’로 나르며, 아낙들은 싱싱한 돌미역을 ‘미역발’에 널어 말립니다.

해녀는 주로 인근 삼척이나 죽변 등지에서 고용을 하며 보수는 미역 전체 채취량을 기준으로 대개 6:4로 몫을 나눕니다.

태백을 넘어 동해로 치닫는 놉새바람은 잘 자란 미역을 사흘이면 윤기로 반짝거리는 ‘울진 고포돌미역'(돌곽)으로 탄생시킵니다.

이렇게 탄생한 울진산 미역, 특히 울진 북면, 죽변 일대에서 생산되는 '고포미역'은 스무 올을 기준으로 한 단에 13만원을 홋가하는, 최고의 명품으로 주부들의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난 해 울진 연안어장에서 생산된 미역은 1만5천809단에 이르며, 이를 무게로 환산하면 72톤가량 입니다. 돈으로 환산하면 13억4천여만 원에 달합니다.

해마다 3~5월 경이면 고포 바다는 울진산 돌미역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흥청댑니다.울진군에서는 '울진 미역'을 특산품으로 지정해, 생산기반 조성에서부터 포장, 유통에 이르기까지 예산지원과 함께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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