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 기업문화·투기자본 극복 ‘동인’

국내 SRI(사회책임투자) 역사 정리=이재환l승인2008.04.1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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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의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로 주목

한국의 SRI의 역사는 서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SRI는 경제정의와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그 맥을 같이 한다. 한국은 재벌 위주의 경제독점과 정경유착, 불투명한 회계 관리, 개발논리를 앞세운 무차별한 환경파괴 등 불합리적인 기업문화가 만연해 있었다.

증권시장은 투기적 성향의 단기투자 문화가 퍼져 있었고, 연기금의 시장 영향력 또한 크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터진 지난 1997년 IMF 사태는 한국 경제의 수치스러운 알몸을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IMF 이후 한국의 기업들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충족시키고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렴하는 경영을 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한국에서 SRI는 이러한 객관적 상황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국내서도 종교계에서 시작

SRI가 국내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한 건 1999년 이후로 보여진다. 시작은 투자 시장이 아닌 종교계였다. 가톨릭, 개신교, 불교계의 목사, 수녀, 재가불자, 평신도 등 범종교인들이 모여 소규모의 모임을 가지는 정도였다. 이 모임은 2002년 ‘기업책임을 위한 시민연대’(현 기업책임시민센터)로 발전된다. 이 단체는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소속 15개 수도회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등의 종교자금 40억원 가량을 투자해 2003년 12월에는 제일투자증권에서 판매하고 제일투자운용에서 운용하는 ‘SRI-MMF 펀드’까지 출범시켰다. SRI를 전면에 표방한 국내 최초의 펀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재무적인 측면의 기업 공시 불충분, 제대로 된 기업 평가 툴 부재, SRI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 부족 등 열악한 SRI 인프라로 인해 이 펀드는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보다 앞서 2001년 8월에는 삼성증권이 출시하고 삼성투신운용이 운용하는 ‘에코펀드’가 선보였다. 기업의 ESG(환경, 사회, 거버넌스) 측면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선별하지는 않았지만 국내 최초의 SRI 펀드로 알려져 있다. 이 펀드는 재무구조가 우량한 기업을 우선 고른 후, 이들 중 친환경 정책을 펴고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외부의 환경 전문가들의 엄밀한 심사에 의해 투자 기업을 선정한다. 펀드 판매보수 중 일정액을 기금으로 조성해 ‘기업 지속가능성과 금융 부문’ 국제 세미나를 후원하는 등 환경관련 단체와 기업 등에 지원했으나 세상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한국 SRI 역사에서 2003년은 SRI가 최초로 공론화된 시기 혹은 그 계기를 마련한 시기라 할 수 있다. ‘한겨레’는 사회책임투자를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발전에 필요한 중요한 의제로 설정하고 2003년 6월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또 같은 해 12월에는 은행연합회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이 공동으로 ‘사회책임투자와 책임경영’에 관한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삼성 SDI는 국내 최초로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해 SRI 인프라 확장에 기여하기도 했다.(국내 최초로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한 기업은 삼성 SDI가 아니라 현대자동차라는 설도 있다)

SRI가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온 건 2005년 11월, SH자산운용이 ‘Tops 아름다운 종류형 주식투자신탁 1호’라는 SRI 공모펀드를 출시하면서부터다. 출시 7개월만에 설정고 1천억원을 돌파하는 등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펀드는 세계적인 지속가능성 평가기관인 이노베스트사와 제휴한 국내 지속가능성 평가 및 컨설팅 기관인 에코프론티어와 공동으로 기업의 ESG 측면을 총체적으로 스크리닝한 진정한 의미의 국내 최초 SRI 펀드라 할 수 있다. SH자산운용은 2007년 5월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지속가능한 글로벌 기업에 투자하는 ‘Tops 글로벌 주식투자신탁 1호’를 국내 최초로 출시하기도 했다. SH자산운용의 ‘Tops 아름다운 종류형 주식투자신탁 1호’의 성공에 힘입어 NH-CA자산운용의 ‘농협CA 뉴아너스 SRI 펀드’(2006. 8),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의 ‘기업가치향상장기주식 G-1’(2006. 8), 대신투신운용의 ‘행복나눔SRI 펀드’(2007. 10), 산은자산운용의 ‘산은SRI좋은세상만들기주식1’(2006. 10), 기은SG운용의 ‘좋은기업바른기업펀드’(2006. 11), 우리CS운용의 ‘프론티어지속가능기업SRI주식’(2006. 11) 등 SRI 공모펀드들이 연이어 출시되었다.

SRI 공모펀드 연이어 출시

이 과정에서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이 펀드는 그동안 삼성전자 등 국내 대표적 기업들을 대상으로 소액주주의 입장에 서서 거버넌스 개선을 요구해 왔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주도적으로 결성했고 고문을 맡고 있어 언론에서는 ‘장하성 펀드’로 불린다.

왜곡된 거버넌스로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기업의 주식을 매입한 후 해당 기업에 거버넌스 개선을 요구하므로써 기업 가치를 높이고 수익률을 제고시키는 것이 이 펀드의 목적이다. 2006년 4월부터 미국 버지니아대, 조지타운대 재단 등 투자자를 대상으로 1천300억원 가량을 모집, 조세 피난처로 알려진 아일랜드에 등록된 역외펀드다. 이 때문에 ‘헤지펀드’ ‘먹튀’라는 오해와 의심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는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라자드 사가 운용하고 있다는 점, 라자드는 SK와 소버린 간에 경영권 분쟁 때 소버린의 금융자문을 맡은 바 있고, KT·G를 공격했던 칼 아이칸을 도와 타임워너 공격에 함께 나서기도 했다는 점 등이 정서적으로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장하성 교수는 이에 대해 ‘장기투자’를 주장하고 있다. 장하성 펀드가 편입한 종목은 대한화섬, 화성산업, 벽산건설, 에스에프에이, 삼양제넥스, 대한제분, 성지건설, 한국전기초자, 대한제당 , 신도리코, 한솔제지 등이다. 사실 장하성 펀드가 SRI 펀드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엇갈린다. 그러나 장하성 펀드가 국내 SRI의 대중화에 적지 않는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장하성 펀드가 SRI 펀드로 국내 언론에 자주 언급됨으로써 일종의 ‘SRI 붐’이 형성되었고, 실제로 2006년 8월부터 SRI 펀드가 다수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도 ‘SRI 붐’ 조성에 큰 기여를 했다. 국민연금은 2006년 11월 총 1천500억원의 자금을 SH자산운용, NH-CA자산운용, 코스모투자자문 등 3개사에 500억원씩 위탁 운용시켰다. 또 2007년 4월에도 미래에셋자산운용, 삼성투신운용,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 등 3개 운용사를 선정, 각각 500억원씩 총 1천500억원을 위탁 운용시켰다. 2008년에는 3천500억원을 사회책임투자로 운용한다는 방침으로, 향후 주식투자 비중을 늘리면서 사회책임투자 금액도 더욱 늘릴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선진국의 SRI 발전이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활성화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SRI 펀드의 수가 증가하고 투자 규모 또한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2007년 4월, 국내 최대의 사회책임투자자 단체인 사단법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사장 김영호, 전 산자부장관)이 창립되어 SRI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2007년 6월 20일 국민연금과 머니투데이가 주최한 ‘2007 SRI 국제컨퍼런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책임투자 전략’이라는 국제 행사의 주관사로 참여하면서 8개 금융 및 컨설팅 기관(미래에셋자산운용, SH자산운용,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 NH-CA자산운용, 아크사모펀드, 에코프론티어, 서스틴베스트, 솔라빌리티)이 국제적인 책임투자원칙인 ‘UN PRI’에 서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기업사회책임 유도

또 최근에는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인 ‘CDP6’ 수행을 위해 조직된 CDP한국위원회의 한 축으로 참여하면서 신한은행, 대구은행, 미래에셋자산운용, 교보투자신탁운용, SH자산운용, NH-CA자산운용,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템피스투자자문 등 8개 금융기관을 서명기관으로 조직, 사회책임투자의 중요한 요소인 환경적 측면의 투자 인프라를 개선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와 에너지관리공단은 한국투신운용을 운용사로 선정해 2007년 12월 1천200억원 규모(당초 2천억원 규모를 계획했으나 이에 미치지 않자 산자부는 한전, 한수원, 발전 5개사 등이 모두 500~600억원 정도를 투자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의 탄소펀드도 출범시켰다. 탄소펀드는 온실가스 감축의무 부담을 안고 있는 선진국에선 이미 일반화된 금융상품으로 온실가스 감축사업에 투자해 확보한 탄소배출권을 배출권 거래시장에 판매한 후 얻은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분하는 펀드를 말한다. 펀드투자에는 에너지관리공단을 비롯해 보험사 4개, 은행 1개, 연금 1개, 일반기업 2개로 총 9개 기관투자자들이 참가했다.

일반적 의미의 SRI 펀드는 아니지만 2007년 6월에는 산업은행이 사회책임금융펀드 1조를 조성해 신·재생 에너지 생산기업 등 환경친화기업, 노인전문병원 및 실버타운을 운영하는 고령친화기업, 장애인고용 우수기업 등에 대해 일반자금 대비 최대 1.14%포인트 낮은 금리를 적용, 대출해 줌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유도하고 있다.

정리=이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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