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의료채권법, 9월 의료법 전면개정 가능성
시민사회 “민간의보 확대 등 ‘의료양극화’ 심화”

18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의료산업화 관련 법개정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정부는 가급적 빠른 시간 내 의료산업화 관련 법안 개정작업을 마무리해 국회로 보낸다는 입장이다. 각 부처 업무보고 등 지금까지 정부가 밝힌 로드맵만 보더라도 6월 국회에 의료채권법, 9월 정기국회에 의료법 전면개정안이 제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 법안에는 시민사회가 ‘의료양극화’를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하는 영리병원 설립과 민간보험 활성화를 위한 각종 규제완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총선 결과만을 놓고 보면 국회에서 정부의 의료산업화 드라이브를 제어하긴 힘든 상황이다.

총선 전 경실련이 실시한 정당별 정책공약 조사에서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등은 정부가 검토 중이라고 발표한 영리법인 허용과 민간의료 보험 활성화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혔다.

통합민주당, 민주노동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수 양당과 친박연대, 무소속의원 등 200석에 달하는 범보수진영이 큰 틀에서의 의료 산업화 방향에 공감하는 만큼 국회에서 의료상업화정책이 법제화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

새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발표와 전문가들의 예측을 종합해보면 의료상업화 법제화는 ‘병원의 자본확보를 위한 의료채권법 제정→영리병원과 개방병원을 허용하면서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의료법 전면개정→당연지정제(의료기관이 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게 한 제도) 완화가 포함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 순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먼저 정부는 의료기관 채권발행 절차를 담은 의료채권법을 6월중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병의원의 채권발행을 자산의 4배까지 자금을 유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도입이 결정돼 12월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의료산업화를 우려하는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걸려 후속작업이 주춤했다. 보건의료단체들은 의료채권법 제정을 병원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만들어진 의료상업화의 전초단계로 보고 있다.

건강연대 등 보건의료단체들은 “채권발행을 위한 수익성 평가를 하기 전 병원은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돈벌이 추구를 우선할 가능성이 높다”며 “수익성 경쟁은 과잉진료를 불러오고 병원 간 양극화를 심화시켜 지역의료 부실을 부추길 것”이라고 지적한다.

의료채권법 제정이 의료상업화의 전초전이라면 올해 10월로 예정된 의료법 전면개정은 한국 의료 제도의 향방을 결정하는 본 게임이다.

이미 지난해 5월 보건복지부가 의료상업화를 가속화 할 수 있는 ‘환자 유인알선 허용과 개방병원(병원 내의 의원급 의료기관)을 허용하는’ 의료법 전면 개정안을 국회로 보내 11월 보건복지위원회 심의까지 거쳤지만 시민단체 뿐 아니라 의사협회 등 직능단체의 반대로 본회의 상정이 무산된 바 있다.

새 정부에선 산업화 내용이 강화된 방향으로 의료법 전면개정이 추진될 전망이다. 이미 기획재정부는 의료서비스산업 재고를 위해 참여정부에서 무산됐던 영리의료법인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해 건강보험의 의료정보를 민간보험사와 공유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의료법 개정으로 영리병원과 개방병원이 허용될 경우 현재 ‘예치과’, ‘고운세상피부과’ 등 일부 진료과목의 개인병원이 시도한 프랜차이즈형 병원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병원경영지원회사(MSO)가 지분을 소유하는 수직계열화된 대형체인 형태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 또 백화점식 종합메디컬센터도 건립이 가능하게 된다.

이에 대해 의료전문가들은 기업화 된 병원 또는 기업소유의 병원 출현은 수익성을 위해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각종 비급여 의료서비스 개발을 부추겨 의료비 폭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기다 건강보험 가입자의 의료정보까지 민간 보험사가 공유할 수 있게 된다면 국민건강보험의 위축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일정표대로 관련법 제개정 작업이 원활히 진행된다면 의료상업화의 최종단계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 또는 폐지가 될 전망이다. 총선에서 당연지정제 폐지에 대한 강한 반대 여론을 의식해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았던 한나라당도 당연지정제 폐지 또는 완화가 의료서비스 다양화, 고급화를 추구하는 의료산업화의 핵심내용인 만큼 국회입법 과정에서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병원협회, 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당연지정제가 건강보험공단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춰 진료하도록 해 획일적인 의료서비스를 조장한다며 완화를 요구해 왔고, 정부도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여 규제완화 차원에서 당연지정제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회의 의료산업화 관련법 재개정이 쉽지 않다고 전망한다. 비록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원내 입지가 축소됐지만 총선과정에서 당연지정제 폐지와 민영의료보험 확대를 대표적인 1% 특권층 정책으로 지목하면서 전면폐기를 요구했던 만큼 쉽게 양보할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시민단체와 보건의료단체들도 이번달 개봉한 영화 ‘식코’ 함께보기 캠페인을 펼치며 의료 공공성 후퇴를 막기 위해 적극적인 국민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여론도 의료상업화에 우호적이지 않다.

결국 의료 관련법 재개정 추진은 의료를 서비스산업의 영역으로 보면서 수익자 원칙을 강조하는 의료계, 보험업계와 의료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중시하는 시민사회, 보건의료단체간 대국민 여론전과 맞물리며 18대 국회의 사회복지분야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심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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