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정당화’ 시켜준 법원

작은 인권이야기[39] 배여진l승인2008.04.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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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 한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다. 지하철 안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앉아있던 20대 여성의 치마 밑 다리를 찍었다가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 대해 대법원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촬영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 판결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는 기사였다.

법원은 “‘여성의 치마 속 다리부위’가 반드시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증거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수영장에서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를 집중 촬영한 일본인 관광객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두 개의 판결은 좁게는 이 판결을 내린 판사들이, 넓게는 우리 사회가 여성의 신체에 대해 어떠한 시각을 갖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신체는 성적으로 상품화, 대상화 되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의 몸은 고유한 신체로서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혹은 만족시켜야만 하는 대상 또는 수단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숱한 성폭력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의 몸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생기는 권력불균형이 이루어지는 장소, 즉 더 힘이 센 남성에 의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의 몸은 제압당하고 위협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 자체이다.

많은 여성들은 일상의 곳곳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것이 고의적인 것이든, 고의적이지 않은 것이든) 성적수치심과 위협을 느끼며, 불쾌감과 공포심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위의 판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느끼고 감내해야만 하는 불쾌함과 공포심을 더 일상화시키려 하고 있다. 더 나아가 불쾌함과 공포감을 느끼게끔 한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 아무거나 마구 찍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순간 카메라 렌즈에 담긴 그것은 ‘대상’이 되고, 그 대상은 ‘소유’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즉 사진으로 담는 다는 것은 그 대상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성의 다리와 가슴, 엉덩이를 찍은 행위는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것이며, 더 나아가 그 소유를 통해 성적인 만족을 느끼고자 함이다. 더군다나 위 판례의 사진촬영은 흔히 말하는 ‘몰카’로서 사진을 찍힌 사람의 동의는 전혀 없었다. 이에 피해자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은 심한 모욕감과 불쾌함,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 ‘성폭력’이라 함은 단순히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에 강제로 삽입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기의 강제삽입이 아니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성희롱’ 또한 일상적으로 겪거나 느끼게 되는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성폭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도대체 대법원이 말하는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는 과연 어느 부위인가? 중요한 것은, 신체의 어떤 부위이던 간에 피해 여성(유아와 어린이를 포함)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모욕감을 느꼈으면 그것은 성희롱이고 성폭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대법원 판결은 성희롱, 성폭력의 개념을 더욱 축소시키며, 성희롱과 성폭력을 더욱 조장하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판결을 내린 판사가 남성이라는 점은 ‘성폭력’의 개념이 여전히 힘의 논리에서 더 우위에 있는 남성에 의해 규정지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준다. 더 나아가 성폭력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생기는 권력불균형의 결과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이번 판결은 여성에 대한 일종의 성폭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기야, 성희롱 가해자 최 모 의원이 또 당선된 걸 보면 우리나라는 성희롱을 마음 놓고 해도 되는 나라인가보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배여진 천주교인권위 상임활동가

배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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