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모순적 실체다. 기본적으로 강자의 논리가 관철되지만 약자의 주장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법이 적어도 이념적으로는 보편성의 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만명’에게만 평등한 것이 법의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보편성의 선언 없이는 법은 법이 아니다. ‘법의 지배’에 대한 동의가 존재한다면 비록 형식적이지만 보편성이라는 법의 이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지배사회에서 권력은 법을 벌거벗기려 한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보편성의 형식마저 거추장스러운 모양이다. 휠체어 탄 회장님들에 대한 솜 방방이 판결에서처럼 법이 기업사회에서 형평을 잃어가고 있는 징후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이에 더 나아가서 정부는 노골적으로 만명만을 위한 법을, 경제를 걱정하는 법을 주문한다. 노동자, 서민의 권리 행사는 떼법이라고 딱지 붙이면서, 정작 스스로는 ‘대기업프렌들리’라는 일방적인 정서법을 헌법 위에 세우고 있다. 시장에 대한 정당한 규제는 폐지하면서, 헌법상의 기본권에 대한 규제의 벽은 높여간다. 법을 벌거벗겨 노동하기는 어렵고 기업하기는 좋은 나라를 만들려한다. 이제 법의 지배는 보편성의 형식마저 던져버린 ‘벌거벗은 법의 지배’가 되어가고 있다.
최근에 이 벌거벗은 법의 지배에 문제를 제기하는 의미 있는 판결이 있었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간부들의 경찰 연행에 항의하며 도로에서 농성을 벌인 혐의로 약식기소된 사안에서 법원이 선고유예를 판결을 한 것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법원은 ‘노조원들이 파업 이후 약 7개월 가량 월급을 받지 못한 점을 고려할 때 벌금 100만원은 개개인에게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이고, 코스콤 노조를 재정적으로 파탄시킨다면 양극화문제 등에 관한 사회적 토론을 중단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이 보도를 접하고 답답했던 가슴이 뚫리는 듯 했다. 나는 이 판결에서 한 법관이 벌거벗은 법을 주시하며, ‘헐벗은 삶’을 걱정하는 성실한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삶의 구체성은 언제나 법보다 우선한다. 법률가는 법과 정의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구체적인 삶의 무늬와 사회적인 의미를 살펴야 한다. 부당하게 선언되는 ‘떼법 청산’이라는 권력의 시선으로는 삶도 법도 제대로 살필 수 없다. 삶을 걱정하고, 권력을 의심하는 법, 그러한 법의 적용만이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제한해 온 진정한 ‘법의 지배’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정정훈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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