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지향적 대안 세계화를

특집 대담_국제석학에게 듣는다 정수복 파리 특파원l승인2008.04.2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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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시대, 사회운동과 사회과학
대담=정수복 파리특파원-미셀 비비오르카 세계사회학회장


<시민사회신문> 창간 1주년을 맞아 정수복 파리 특파원(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객원교수)이 세계사회학회(ISA) 회장인 미셸 비비오르카(Michel Wieviorka) 교수를 만나 세계화 시대의 사회운동과 사회과학 그리고 동아시아의 근대성 문제에 대해 심층적 대화를 나누었다. 대담은 지난 16일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이 있는 ‘라스파이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편집자

-정수복=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세계사회학회 회장으로서 학회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니고 계신데요. 그런 과정에서 세계화의 효과를 몸으로 직접 느끼고 다니신다고 봅니다. 실제로 다녀보시면 어떤 점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지요.

▲비비오르카=변화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몇 달 간격으로 같은 나라, 같은 도시를 방문해 보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사회적, 정치적 영역에서의 변화는 물론이고 문화적이고 지적인 차원에서도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1989년에서 2000년 사이에는 경제적 세계화가 거침없이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테러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형태로 세계화 과정에 정치적 개입이 증대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세계화가 강화되면서 각 문화권마다 문화적 정체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세력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년 전 볼리비아에서는 사회문제와 노동운동, 농민문제, 독재와 혁명, 민주주의가 토론의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볼리비아에서 공적 토론의 주제는 거의 인종적 문제와 원주민 문제에 집중돼 있습니다. 문화적 정체성 주장과 더불어 세계적인 수준에서 볼 때 종교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도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 문제가 가장 두드러집니다만,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개신교의 변화 또한 두드러집니다.

현존하는 좌파 정치의 위기

-정수복=세계화 과정에 미국과 이슬람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전선의 형성과 더불어 인종과 문화적 정체성 주장이 커지고 종교의 세계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헌팅턴이 ‘제3의 민주화 물결’이라고 표현한 민주화 과정이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프랑스에서만 해도 정치사상 분야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재활성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비비오르카=세계화는 이론적인 수준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시켰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전에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 세력으로 정의됐지요. 그러나 공산주의 붕괴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은 전체주의라는 외부 세력과의 토론이 아니라 민주주의 내부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직접 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 등 다른 형태의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대의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유는 좌파 정치세력의 위기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좌파 정치는 크게 두 개의 모델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소비에트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민주주의 모델입니다. 그런데 그 두 모델이 모두 위기에 처했습니다. 공산주의는 붕괴됐고 소비에트 모델을 주장하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예전처럼 잘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회민주주의 모델의 기초가 되는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 약화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은 멋진 것입니다만 현실 세력으로서는 점점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좌파 세력은 변화된 상황에 미래지향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근본적인 수준에서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정수복 파리 특파원(왼쪽)이 미셀 비비오르카 세계사회학회장(오른쪽)을 지난 16일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이 있는 라스파이 거리의 한 카페에서 만나 대담을 진행했다.

-정수복=정치적 수준에서 진보정당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운동이 강화되어야 할 터인데요. 세계화의 진행과 더불어 나타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의 여러 문제들에 개입하는 세계적 수준에서의 사회운동이 반세계화 또는 대안 세계화라는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화의 부정적 결과에 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운동의 거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또 대안적 세계화운동의 주요 행위자들은 누구라고 보십니까.

▲비비오르카=먼저 이야기해야할 것은 세계화 과정에서 사회운동도 세계화된다는 점입니다. 많은 수의 NGO들이 일국적인 수준을 넘어 세계적인 수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안 세계화 운동은 세계적 차원에서 전지구적 관점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소 구좌파 모델에 입각해 있지만 아탁(ATTAC)을 비롯해서 여러 운동조직들이 세계적인 수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운동은 세계화에 대한 저항운동이 아니라 세계화 과정의 한 부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반세계화운동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대안 세계화운동이라는 용어를 써야 마땅하리라고 봅니다.

세계적 차원의 사회운동에 대한 저의 두 번째 주장은 세계화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사회운동은 각자가 처한 지역적 차원을 바탕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글로컬라이제이션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고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활동하자’라는 구호가 활동가들 사이에 널리 퍼졌습니다만, 이것은 지나가 버린 유행이 아니라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한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정수복=오늘날 세계화의 부정적 효과에 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대안 세계화운동의 중심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비비오르카=대안 세계화운동은 하나의 중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 곳에서 여러 수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먼저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세계화가 불러일으키는 경제적 문제들을 다루는 대안 세계화운동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신들의 문화적, 종교적, 지역적 정체성을 주장하는 대안 세계화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제도적 차원에서 대안 세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족국가를 넘어서는 초국적 영역의 문제들이 정글의 법칙이나 시장의 법칙으로 움직이지 않고 전인류적인 차원과 미래의 차원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여러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지구적 인식, 지역적 적용’ 유효

-정수복=사회과학이 상아탑 속에 갇혀있는 학문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운동과 사회적 행위자들의 행동을 더욱 분명하게 만드는데 기여해야 한다면 오늘날 세계적인 차원에서 사회과학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비비오르카=오늘날 사회과학은 지역적 수준과 동시에 세계적인 수준에서 생각하는 틀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20세기의 사회과학은 19세기 민족국가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회를 민족국가의 틀로 한정시켰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은 민족국가의 틀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울리히 벡이 말하듯이 ‘방법론적 민족주의’의 틀을 벗어나야 문제의 진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민족국가 내부의 변수와 세계적 차원의 변수가 뒤얽혀있는 상황인데, 그 두 범주의 요소들을 구별하여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간섭하고, 이어지고, 강화되고, 모순을 일으키는가를 밝혀내야 운동의 논리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더불어 근대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 과거에 서구중심주의자들은 근대성은 유럽의 근대성 하나밖에 없고 지구의 나머지 지역들은 유럽의 근대성 모델을 따라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 사람들이 ‘복수의 근대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거 계몽주의자들은 전통과 개별적 특성들이 보편적 기준 앞에서 사라져야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근대성의 실현은 법과 이성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와 각 나라나 문화권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 가치를 조화시키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각각의 문화권과 나라들은 근대성과 전통 사이의 갈등과 긴장을 관리하면서 자기 나름의 근대성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정수복=세계화 과정에서 사회과학도 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평소에 사회과학은 위기를 맞이한 것이 아니라 단지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라는 주장을 하셨는데, 미국이 주도하는 사회과학이 세계화가 불러오는 문제들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비비오르카=사회과학 안에는 여러 이론적 학파들이 존재합니다. 미국 사회학 안에도 여러 흐름이 존재합니다. 합리적 선택 이론은 그 중 하나일 뿐입니다. 몇 년 전 미국사회학회 총회에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선택한 것을 보면 미국 사회학이 곧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사회학은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를 제외한다면 미국 중심의 북아메리카는 말할 것도 없고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사회학이 매우 활발하게 새로운 모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론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회학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집니다. 브라질의 카르도소 전 대통령과 라고스 칠레 전 대통령, 볼리비아의 현재 부통령 등이 모두 사회학자 출신들입니다. 남미에서 사회학은 학계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혀있지 않고 자기 사회의 문제들을 다루며, 그것을 공적인 문제로 제기하여 공적 토론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화시대 사회학의 방법론

-정수복=각 나라의 사회학을 세계화시키는 방식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십시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사회학의 세계화는 어떤 방식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비비오르카=세계화 시대에 사회학을 하는 방식에 세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먼저 미국 사회학의 뒤를 따라가며 똑같은 방식의 사회학을 하는 것입니다. 그건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미국 사회학이 세계를 주도하는 이유는 다른 이유보다도 영어가 세계를 주도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회학이 독일 사회학, 이태리 사회학, 프랑스 사회학보다 우수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두 번째로는 문화권이나 나라에 고유한 범주나 개념들을 발전시키면서 자족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학, 중국 사회학, 일본 사회학은 다른 사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개별 사회의 고유한 현상을 다루기 위해 고유한 개념과 이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상대주의적 입장인데요, 제 생각에는 조금 위험해 보입니다. 그것은 제가 프랑스 사회학자이기 때문에 한국사회에 대해서는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면 서로간에 대화와 토론이 불가능해집니다. 세 번째는 각 나라 사회학자들이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자기 사회에 대한 연구 결과를 국제적인 토론장에 들고 와서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를 써서 함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대화를 통해 현실을 더 잘 설명하고 현실을 변화시키는 지식을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수복=바쁜 와중에 대담을 허락하시고 한국의 시민운동계와 사회과학계에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수복 파리 특파원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객원교수)

정수복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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