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종속, 지역 통해 해결

식료공급 안정성 넘어 ‘안전성’ 문제로 심재봉l승인2008.04.2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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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도시 아바나 흉내 내는 미국 풍경

교외지역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은 집 앞에 푸른 잔디밭을 가꾸는 게 주거문화의 관행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이러한 풍경이 변하고 있다. 잔디를 파헤쳐 텃밭을 가꾸는 새로운 주거문화의 관행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국제 농산물 가격의 폭등에 의해 식료비가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문화가 바뀌면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는 게 인간사의 자연스런 경제적 특징이다. 이러한 가구가 많아지다 보니 텃밭을 전문으로 관리해주는 직종까지 생겼다고 한다. 유기농으로 재배하다보니 식료의 안전성도 담보된다. 심지어 지역 식품업체에서 텃밭 생산작물을 사들이는 풍경까지 연출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미국의 경제봉쇄로 자급자족을 위해 도시에서 유기농 텃밭운동을 벌였던 쿠바의 농업혁명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세계의 경제대국 미국의 자발적 텃밭운동이란 점에서 식료가격의 상승이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다.

자발적 텃밭운동의 확산

이런 사례를 보면 우리의 처지는 한없이 처량해 보일 정도이다. 영양공급을 해외에 완전히 종속시킨 것도 모자라 광우 의심소를 수입해 싼 가격에 공급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상상력은 놀라움을 넘어 공포스럽다. 광우병은 아직도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초식동물에게 육식사료를, 그것도 동료들의 살과 피를 사료로 공급한데서 근본원인이 있다고 밝혀졌을 뿐이며, 프리온 단백질이 의심 물질로 알려졌을 따름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 부분에서도 입장이 갈리고 있다. 신경조직에 분포하는 프리온이 발병원인물질이라고 보는 입장이 있는 반면, 기억과정에 영향을 주는 물질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기 때문이다.

심재봉

명확한 발병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국민사기극을 연출했던 황우석 박사는 광우병 내성소를 발명했다는 쾌거를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이라면 전세계에서 축전을 받으며, 인류를 위험으로부터 구원할 구세주의 탄생이 말구유가 아닌 황 박사 실험실에서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야말로 노벨상감이지만 떠들썩한 국내언론과는 다르게 해외언론은 이 사건에 관심이 없었다. 당연하다.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원인도 모르는데 원인에 대한 처방을 한다는 것이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잠복기만 10년이 넘는 광우병은 변형크로이츠펠츠-야콥병이라는 이름으로 인류에게 재앙을 안겨줄 것이라고 생태학자들은 진단한다.

이러한 이유로 광우병의 처음 발생지였던 영국은 식료체계를 전면적으로 수정해 식품안전성을 확보했다. 철저한 생산이력과 추적을 통해 검증받은 식품만이 유통되게 했기 때문이다. 식량주권을 스스로 확립하고 있는 유럽국가들을 비교하는 것은 우리에게 사치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미래, 국가의 운명과 관련된 사안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너무 안이하다 못해 스스로 공포를 생산하는 식품체계를 가지고 있다.

사회책임 소비의 시대

지난 1996년 로마의 세계 식량 안보(World Food Security) 선언(Rome Declaration)은 이런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선언문은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식량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적절한 식량을 얻을 권리와 모든 사람들이 기아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기본적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는 이러한 식량안보 선언에 정확히 역행하는 무역정책을 펼치고 있다. 상품무역으로 보기 어려운 문화와 지역기반 식품체계(현지 농업)를 자유무역대상에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농업과 식량 시스템의 세계화는 다국적기업(TNCs)의 이윤 증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산업적, 수출 지향적 생산이 특징이다. 이는 결국 세계 곡물수급이 몇몇의 ‘보이는 손’에 의해 쥐락펴락하게 될 것이다.

이 영향은 현재 우리의 밥상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유수의 식가공업체들은 이미 곡물메이저의 공급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직간접적인 영향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밥상은 이미 점령된 지 오래다. 최근 중국은 이러한 위기에 적극적인 대처를 취하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79년까지 중국은 인구의 92%가 토지를 기반으로 한 경제활동을 했다. 그러나 집단 농업의 포기와 수출경제지향의 개발체제로 이러한 수치는 42%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런 변화와 함께 세계곡물가의 가파른 상승세가 지속되자 중국은 곡물의 대외반출을 금지시키고 있으며, 그 절정은 지난 4월 16일 자유무역지대인 홍콩의 중개무역을 통해 곡물을 수출하는 것을 금지시킴으로써 완결했다. 그만큼 식량안보가 국가적 중심문제로 대두되었음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어떤 노력을 펼치고 있을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식료정책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식료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싸고 영양가가 높은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한다는 것에서 농업정책의 일단을 극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안전성에 대한 전제조건 없이 영양을 외부에 완전히 의존하겠다는 정책을 보여준 것이다.

같은 시기 등뼈가 발견되어 수입을 전면 중단시킨 일본과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식료는 이제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 애그플레이션은 한 나라의 물가정책의 초점이 먹거리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제 적극적인 정책적 방어를 통해 영양의 의존사슬을 끊어나가야 한다. 식료의 안정적 수급과 안전성을 되찾기 위한 방법에는 많은 대안들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 가지 대안을 소개하고자 한다.

시장을 되찾아 오기

우선 높은 식량 표준을 제정하는 것은 이에 대한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는 식량과 농산물에 명확하고 정확한 표시제를 시행함으로써 환경적, 사회적, 건강상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역 생산자를 후원할 수 있는 큰 길을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지역생산 기반을 후원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소비’로도 연결된다.

우리의 식탁은 세계 각지에서 먼거리를 이동한 먹거리의 경쟁장이다. 국내에서는 정확한 정보가 없지만 미국의 경우 시카고의 한 도매시장 통계는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이동거리가 농산물 킬로그램당 2,400킬로미터라고 한다. 자급력이 부족한 국내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는 이보다 더 먼 거리를 운송한 먹거리를 섭취하고 있을 것이다. 거리의 확장은 식탁을 불안하게 만든다.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한 인위적 처리과정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로컬푸드’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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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먹을거리가 몸에 좋으며, 지키고 보존해야 할 것이 많은 농업과 농촌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면 지역 농민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이 운동을 하는 단체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코덱스 알리메타리우스 위원회(Codex Alimentarius Commission, CAC)의 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CAC는 지난 1963년 식량 농업 기구와 세계보건기구에 의하여 공동 표준 프로그램 하에서 시행되는 행동 규칙들과 비유사한 식품 관련 기준, 가이드라인들을 만들기 위해 설립되었다. 코덱스의 식품기준은 세계적 기준이기 때문에 이를 강화하는 것은 화학약품의 살포를 통해 단작작물 대량생산체계를 갖추고 있는 곡물메이저의 생산방식에 위협이 될 수 있다.

학교급식조례제정의 사례

이러한 방식은 자연스럽게 다른 대안과 연결된다. 학교급식조례제정이 그것이다. 학교는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건강하게 양성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지식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건강한 체력을 유지시키는 것도 포함된다. 최근 학교급식 확대에 따른 경영 효율성과 시설 설비 및 운영비 절감, 그리고 학교별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위탁급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문제는 위탁급식을 맞은 사설 위탁업체도 하나의 기업이기 때문에 이윤의 극대화를 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해마다 급식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그래서 안전한 먹거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학교급식조례운동이 펼쳐지게 되었다. 희한한 점은 우리 정부는 WTO협정 원칙에 따라 자국산 농산물의 강제 사용은 협정 위반으로서 무역 보복의 대상이 된다고 지레 겁먹고 미리 경계선을 긋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WTO 협정 국가들은 오히려 자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는 학교급식을 하고 있으며, WTO협정에도 분명한 예외 조항이 있다. 그리고 시행 주체가 중앙 정부가 아닌 자치정부일 경우 협정자체를 피해갈 수 있는 요소도 있다. 결국 급식조례문제는 철저히 중앙, 지방 정부의 의지 문제이다. 전 인구의 1/7인 급식대상 학생 723만 명이 하루에 한끼 우리 농산물을 먹어준다면 사양 산업으로 치부되는 농업은 오히려 21세기형 생태산업으로 각광을 받으며 영양종속의 사슬을 끊기 위해 지역적 기반을 갖춰갈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 소비자의 윤리적 구매가 더해진다면 그 시너지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커질 것이다. 무엇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가 담긴 소비자의 선택은 모든 노력의 기본 전제가 될 것이다.

심재봉 시민기자

심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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