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은 말 그대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장애인이기 때문에 비장애인과 다르게 대접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를테면 장애인이기 때문에 일반학교가 아닌 특수학교에 다녀야 하고,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어쩌다 취직이 되어도 저임금에 시달려야 하고, 가정과 시민사회에서 사는 게 아니라 격리된 시설에서 살아야 하고, 또 마음대로 식당이나 영화관에 가거나 쇼핑을 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이 같은 일상적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또 이런 차별을 받은 장애인들에게 정신적, 물질적으로 보상하기 위한 법률이다.
하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다르게 대우하더라도 모두 이 법이 금지하고 있는 차별행위로 간주되는 건 아니다. 그 행위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차별행위로 보지 않는다. 정당한 사유란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있는 경우’와 ‘차별행위가 특정 직무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를 말한다. 여기서 ‘특정 직무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는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가령 장애인이 소방관이나 경찰관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제한하는 정부의 공무원 채용 규정은 정당한 차별로 보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은 논란의 소지가 많다.
특히 이 조항은 기업이 장애인 고용을 기피하는 수단으로 이 조항을 악용할 수 있다. 따라서 어디까지가 과도한 부담인지, 어느 정도가 현저히 곤란한 사정인지, 보다 분명한 사회적 합의와 법 규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장애인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장애인 사회가 이 법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건 아니다. 이 법에서 아주 중요한 일부 조항이 장애인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제43조가 규정한 시정명령제부터가 그렇다. 차별 진정을 접수받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정 권고를 했는데도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하지 않는 가해자에게 법무부 장관은 시정명령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단서 조항이 있다. 차별로 인한 피해자가 다수이거나, 차별행위가 반복적이거나, 고의적으로 시정을 불이행하는 가해자에 한해서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심각하고 공익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경우에만 법무부 장관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개인의 권리구제를 위한 인권법이 공익까지 고려해야 한다니, 다른 나라의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제49조 벌칙 조항도 마찬가지다.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 경우는 그 행위가 ‘악의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악의적이라 함은 차별의 고의성, 반복성, 보복성, 피해의 내용과 규모를 ‘전부’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법이 못박고 있다. 즉 단순한 차별로는 처벌할 수 없고 ‘3중 4중’의 차별임이 입증되어야 처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이런 법률로 장애인 차별을 없앨 수 있을지, 그리고 실효성 있는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이다. 차별행위의 종류만 장황하게 늘어놓았지 진작 권리 구제 절차가 이처럼 까탈스럽다면 이 법은 인권‘법’이라기보다 인권‘선언’에 가깝다는 게 장애인 사회의 우려다.
어느 사회든 법만으로는 근본적인 갈등 치유를 기대하기 어렵다. 법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최저치만 규정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도 마찬가지다. 법 보다 더 우선되어야 하고 또 법이 담지 못하는 장애인 인권을 최종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일 것이다. 장애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받아주지 않는데 그 사회를 선진 사회라고 부를 수는 없다. 우린 흔히 1인당 GDP를 선진국의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이미 국제 사회는 그 나라 장애인의 인권 수준과 장애인에 대한 시민 의식과 태도를 선진국의 중요한 잣대로 보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시민 인권의식도 한층 고양되기를 기대한다.
윤삼호 대구DPI 정책부장
윤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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