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죽으란 말이오”

귀농 축산업자의 한탄 "대책 지켜볼랍니다" 남효선l승인2008.05.0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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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의 산중 마을인 소곡리에서 ‘소야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주성중(47) 씨는 요즘 도통 잠이 오질 않는답니다.

산안개가 쏴 하니 피어나는 새벽 4시면 주 씨는 밤새 뜬 눈으로 뒤척이던 잠자리를 털고 우사로 달려 나가 자식처럼 소중하게 키운 소를 물끄러미 처다 보며 넋 놓고 한참을 앉아 있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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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부터 미국산 쇠고기와 더구나 미국산 갈비가 밀물처럼 밀려들어 올 것을 생각하면 도무지 밥숟가락조차 들기 싫을 만큼 입맛도 살맛도 나질 않는답니다.

주 씨가 정작 살맛조차 잃어버릴 정도로 허탈해 하는 것은 미국산 소고기 개방문제도 문제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에 한 말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그런 말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 소고기를 한국 국민들은 먹을 권리가 있다’니요. 이게 도대체 무슨 망발입니까?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 소고기 홍보를 한 셈 아닙니까? 노인들만 남아 있는 농촌을 지키면서 밤잠 걸러가며 소 키우는 축산농민은 모두 죽으라는 말입니까.”

주 씨는 13년 전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식솔들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도시노동자로, 해외노동자로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참아가며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허기가 졌습니다. 도시 생활에서 만난 아내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억척같이 벌었습니다.

덕분에 고향을 떠난 지 12년 만에 그닥 크지 않지만 집도 한 칸 마련했습니다. 주 씨는 이 무렵 아내와 귀농을 결심했다 합니다. 평생을 도시에서 보낼 수만은 없다는 것이 귀농을 결심한 이유였습니다. 더구나 아이들을 도시에서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었던 것도 고향을 되찾은 이유 중의 하나라고 덧 붙였습니다. 눈덩이처럼 불어 나는 사교육비 때문이었습니다.

한사코 반대를 하던 아내를 설득해 1995년도에 주 씨는 어릴 적 벌거벗고 뛰어 놀던 고향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오자 아이들이 무엇보다 즐거워했습니다.

주 씨는 청춘을 바쳐 번 서울의 집 한 칸을 밑천으로 고향에서 한우사육을 시작했습니다. 가진 것은 천성으로 물려받은 부지런한 성격과 건강한 몸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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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째 묵어 있던 밭과 야산을 일구어 축사를 짓고 첫 해에 송아지 7마리를 들였습니다. 새벽 4시면 우사로 달려갔습니다. 이웃에 묵어 있는 밭을 빌려 보리와 호청, 옥수수를 재배했습니다. 질 좋은 한우를 얻기 위해 화학사료 대신 조사료를 먹였습니다.

2002년 이후 지자체가 앞 다투어 한우생산 지원에 나서면서 ‘키토산 한우’ 생산에 본격적으로 매달렸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아내도 팔을 걷고 소 먹이 나섰습니다.

마침 2003년부터 울진군이 친환경농업 육성에 발 벗고 나서자 지자체의 지원폭도 대폭 늘어났습니다. 한우를 키운 지 10여년 만에 200여두로 늘였습니다.

친환경사료인 키토산 사료와 조사료만을 사용하면서 한우 사육비는 1두 당 76만여원 이상이 늘어났지만 친환경 한우 사육만이 FTA를 극복할 수 있는 절대적인 무기라고 주 씨는 믿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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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말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FTA를 타결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경제전반을 위해서는 축산농가만이 고집을 부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 때는 30개월 미만 뼈 있는 쇠고기는 수입을 불허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몽땅 풀어버렸습니다. 그것도 사전에 축산농가나 국민의 의견수렴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체결을 해버렸습니다. 정부에서는 고품질과 원산지 표시제 강화로 경쟁을 하면 된다고 얘기하지만 현실성이 전혀 없는 말입니다.”

주 씨는 며칠 전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있은 축산농가 시위에 밤을 세워 다녀왔습니다. 도무지 이대로 앉아 있기에는 미칠 것만 같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산골의 우사를 가득 채운, 잘 생긴 소를 바라보는 주 씨의 눈에는 얼핏 눈물이 비쳤습니다. "정부가 농민을 위해 무슨 대책을 내놓는지 지켜볼랍니다." 주씨는 소 잔등을 어루만지며 혼자소리처럼 작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바람이 이따금 황금색으로 매끈한 소잔등을 훝으며 지나갔습니다.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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