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지금처럼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진 적은 없다. 지난 1996년 영국에서 인간광우병이 처음 발병한 이래 200여명이 사망했지만, 그동안 국내에서는 발병사례가 없어 우리 국민들은 ‘광우병 안전지대’에 있다고 자부해왔다.(물론 이 사실도 실제로 우리나라에 광우병 환자가 없다기보다는 유사광우병 사망자들에 대해 부검 등 추적조사를 이행하지 않은 것에 따른다는 보도가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뼈조각 하나만 나와도 수입 중단되었던 미국산 쇠고기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정부대표단이 협상을 마쳤다며 LA갈비 등 뼈 있는 부위와 30개월로 제한한 월령까지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광우병 위험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 된 것이 이 시점부터다.
정부는 연일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언론의 톱뉴스를 장식하는 것에 대해 당황한 나머지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검역주권의 회복을 위한 노력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국민들의 우려에 대해 ‘비이성적’, ‘괴담’으로 치부하며 대통령이 나서서 ‘안 사먹으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한 발언을 일삼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촛불시위를 좌파세력의 음해라는 둥, 교육감이 나서서 전교조 배후를 지목하기도 했다.
광우병 안전성 논란에 대해서는 현재 과학적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가, 안전하지 않은가에 대한 문제는 사실 두 번째 문제이다. 국민들이 진정 당혹스럽고 분노하는 지점은 안전성 논란 중인 문제에 대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권을 지켜야 할 정부가 일방적으로 안전하다는 입장만을 대변하며 국민들의 우려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몇몇 신문 일면에 홍보하며 내세운 것이 수입산 쇠고기 표시를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광우병, 들어올 수도 없고 들어오지도 않습니다’고 했다.
국민들이 정작 듣고자하고, 들어야 할 말은 이처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아니라 ‘광우병, 들어올 수도 없고 들어오게 하지도 않겠습니다’라는 정부의 국민 건강을 지키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원산지 표기는 국민의 선택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 트랜스지방 표기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국제적으로 엄격한 수준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에서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다른 사례를 들었다. 덴마크에서는 제품에 일정함량의 트랜스지방이 들어가는 것을 법적으로 아예 금지한다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알 권리만 주어지면 건강에 유해한 물질이라도 국민이 먹거나 말거나 알아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위험을 평가할 때는 과학적 증거가 불확실하더라도 미리부터 조심하고 조치를 취하는 ‘사전예방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확률이 얼마가 됐든 국민들을 위험에 노출시켜놓고 알아서 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차단하는 것, 지금 우리 정부가 광우병에 대해 취해야 할 입장이 바로 이것이다.
신권화정 환경정의 다음지킴이본부 식품안전팀장
신권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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