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런 지침들이 누구에게 규제가 되는가. 머리를 굴려 생각해봐도 학교에 있는 구성원들 중에는 규제라고 느끼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은 분명한 규제이다. 입시교육을 더욱 강화해서 초중등교육까지 온전히 서열화를 이루어내고자 하는 교육관료들에게는, 사교육시장을 더욱 활성화하고자 하는 사교육기업들에게는, 리베이트로 먹고사는 일부 교장들에게는 분명한 규제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가 풀겠다고 하는 규제와 자율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분명하다. 99%의 국민, 99%의 학생, 99%의 청소년이 아니라 1%의 국민, 1%의 학생, 1%의 청소년이 바로 그 주인공인 것이다.
4·15 학교학원화 조치 이후 각 학교에서는 방과후학교에 한 강좌당 600~700만원짜리 유명 학원강사들을 서로 모시려고 난리가 났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한 강좌당 20~30만원씩의 방과후수업료를 내야 한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것이다. 모든 학교가 입시학원이 되고, 모든 교사가 입시강사가 되고, 모든 학생과 학부모가 대한민국 입시학원을 쇼핑하는 고객이 된다. 그야말로 입시백화점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경상북도교육청이 지난달 30일 후속조치라고 내놓은 방안은 더 가관이다. 총점평균으로 우열반 편성은 안 되고, 과목별 우열반 편성은 된다. 0교시 수업은 안 되고 너무 이른 시간만 아니면 된다. 방과후학교 수업에 학원업체는 안되고 학원강사는 된다. 사설모의고사를 너무 많이 치면 안 되는데 조금 많이 치는 것은 된다. 실업계 고등학생은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좋지만 일찌감치 노동착취를 맛보는 것도 학교장 재량이다. 한마디로 입시교육강화를 위해 죽지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쥐어짜도 좋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어뤤쥐’ 영어몰입교육 정책에서 시작하여 수능등급제 폐지, 대학본고사 부활, 기여금 입학 허용은 물론, 자율형사립고 및 특목고 확대, 외국인학교 규제 완화, 10년 만에 부활한 전국단위 일제고사, ‘4·15학교학원화’ 조치까지 그 맥은 한결같이 점수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고 전국적인 줄세우기를 강화하는 방향이었다. 자연히 사교육비는 치솟게 되고 그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자녀들 간의 학력 격차도 점점 더 커지게 되어 더 이상은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부의 세습, 가난의 대물림이 교육을 통해서 또한번 공고해지도록 하는 방향으로 우리 교육은 나아가고 있다.
국내는 물론 미국의 여러 연구결과에서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녀의 학력은 가장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밝혀지고 있다. 그래서 서유럽 많은 국가들은 이러한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극단적인 평준화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평준화가 교육관료들의 말처럼 ‘하향평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핀란드는 경쟁 없이도, 서열 없이도 학업성취도에서 매번 최고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경제규모로 세계 11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넘는다. 서유럽에서 전 국민의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시작할 때 그들은 국민소득 1만달러 수준이었다. 우리는 공교육비 30조, 사교육비 40조, 총 70조원의 교육비를 쓰고 있다.
다시 말하면 대학생까지 모든 학생들에게 무상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재원이 이미 있다는 것이다. 차이는 돈이 학부모의 주머니에서 나오는가, 국가가 책임지는가에 있을 뿐이다.이명박 정부가 ‘교육’이라고 할 줄 아는 것이 오로지 아이들을 줄 세워 자르는 것, 교사를줄 세워 자르는 것 밖에 없다면 자리를 내 놓고 얌전히 물러나는 것이 이 나라 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최소한 국가가 해야할 역할이 무엇인지 학생, 학부모, 교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의사소통’에 좀 더 신경을 쓰시라.
전남주 전교조경북지부 참교육실장
전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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