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도(嚮導) KBS, ’한국어 깃발‘ 들 자격 있나?

염두와 엄두…향도 길 잘 못 들면 대열(隊列)은 곧 위험 강상헌 기자l승인2019.10.21 11:32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생각을 소리로 나타낸 것이 ‘말’이고, 기호로 나타낸 것이 ‘글’이다. 말과 글, 말글은 그래서 생각과 바로 이어진다. 생각을 표현하는 말이나 글의 사용법은, 한국인 등 같은 언중(言衆) 사이에서는, 이미 정해진 약속에 따른다. 어법이나 문법, 말글의 용법이다.

▲ 북한이 최근 시험했다고 발표한 잠수함발사미사일의 발사 모습. 미국 등과의 비핵화 협상을 ‘염두에 둔’ 도발로 읽혔다. (KBS 뉴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거론하며, 미국과 국제사회를 겨냥해... 비핵화 협상을 염두한 압박을 이어 갔습니다...”

10월 10일 한국방송의 대표 보도 프로그램 ‘KBS 뉴스 9’의 한 대목, 그 뉴스의 제목과 내용을 설명하는 앵커의 말이다. 누리집(홈페이지)에도 그렇게 적혀있다.

염두는 생각(念)과 머리(頭)의 뜻 한자(漢字)를 붙인 말이다. 한자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저마다 제 뜻을 가지는 한 단어다. 두 단어를 합친 이 念頭는 ‘생각의 (첫)머리’라는 뜻이다. 생각이 시작하는 대목 또는 생각의 (가장) 중요한 부분쯤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래서 ‘염두하다’라는 그 대목은 틀렸다고 판단할 수 있다. 대개 ‘염두에 두다’처럼 쓰는 것이 용례이고 상식적으로도 옳다. ‘생각이라는 상자’의 첫 부분이나 제일 위 서랍에 어떤 사안을 두고 먼저 검토하는 등으로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앵커는 ‘염두하다’를 ‘생각하다’의 뜻으로 알고 썼던 것 같다. 인터넷 기반의 여러 매체나 일반 시민의 블로거 등에서 이런 잘못된 인식과 용법이 상당히 퍼져 있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이제 이렇게 주요 매체에서도 이를 보게 된 것이다.

그 설명은 “... 염두한...” 대신 “... 비핵화 협상을 염두에 둔 압박을 이어 갔습니다...”라야 했다. 낱말의 바른 사용은 어문(語文)의 첫 계단이다.

KBS는 국내외의 시청자를 겨냥하는 TV와 라디오, 인터넷 등 많은 채널을 가진 방송사다. ‘우리말 겨루기’라는 TV 프로그램도 만들고, 라디오도 매일 아침 ‘바른말 고운말’이라는 프로그램을 들려준다. ‘KBS 한국어 능력시험’이라는 검정시험과 관련 강좌도 다양하게 운영한다.

공영방송의 ‘권위’와 거대 규모를 바탕으로 한국어의 규범(規範) 또는 기준을 자처(自處)하는 모양새다. ‘바른 한국어’의 깃발을 들고 언어 관련 이념과 현안, 사업을 독차지하는 상황으로도 보인다. 국립국어원이라는 나라의 공식 기구가 있으나 이런 KBS에 비해 눈에 잘 안 띈다.

그러나, 정작 간판 프로그램에서 말글의 기초도 없는 이들과 매한가지의 얼치기 어법이 여과장치도 거치지 않고 시청자에게 전해졌다. 황당하게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를 보고 잘못된 언어를 익혔을까? 향도가 길을 잘 못 들면 대열(隊列)은 곧 위험에 빠진다.

게이트키핑(gate keeping) 스크리닝(screening) 데스크워크(desk work) 등 언론 또는 정보산업의 기본을 지키는 전제 조건이 다 눈을 감았을까. 언어 부문뿐일까? 이번 한 번의 ‘참사’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상황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음을 스스로도 알고 있으리라.

구성원들이 말과 글, 한국어의 제 능력을 곧 갖추지 못하겠다면 한국방송은 당연히 ‘한국어의 기치(旗幟)’를 내려놓아야 한다. 더 이상 허세를 붙들고 있다가는 더 큰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말과 글은 겨레의 생각, 민족정신의 그릇이다. 시민들은 매섭게 지켜본다.

시청자는 나라의 재산인 KBS에 세금과 다름없는 시청료를 낸다. 여러 의무감을 염두에 둔 획기적인 언어개선정책이 필요할 터다. 하지 않겠다면 KBS는 시청료를 받을 ‘엄두’도 내서는 안 된다. 물론 언어뿐 아니라 방송 다른 여러 분야의 더 좋은 품질도 기대한다.

▲ 정해진 어법과 다른 뜻이나 형식의 언어로 방송을 한다면, ‘겨레의 혼’인 우리말과 뜻은 쉬 망가질 것이다. (KBS 뉴스)

토/막/새/김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염두와 엄두, 소리처럼 느낌 비슷하다. 뜻도, 교집합(交集合)처럼, 겹치는 대목이 있다. ‘같은 말 아니냐?’고들 한다. 같은 말은 아니되, 어감(뉘앙스)은 미묘하게 서로 손을 잡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 엄두는 염두에서 나온 말로 추측된다.

한자어 ‘念頭’가 언젠가부터 ‘엄두’로도 불렸다. 엄두는 원래 말 염두의 몇 갈래 뜻 중 한 가지 뜻으로 쓰이게 됐다. 소먹이 써는 칼 작도(斫刀)를 '작두', 깨끗하고 말쑥하다는 뜻 정결(淨潔)을 ‘정갈(하다)’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흔히 부정적인 말과 함께 쓰이는 ‘엄두’는 ‘감히 무엇을 하려고 마음을 먹음, 또는 그 마음’의 뜻이다. ‘나는 그 일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쓴다. 염두의 뜻 중 ‘생각의 맨 처음’이란 갈래가 두드러지게 쓰인 단어다.

이런 관계지만, 그래도 이 말들은 엄연히 다른 말로 각각 정해진 용례에 따라야 한다. 말과 글은 현재의 논리보다는 오랜 세월을 지나며 더께가 진 역사성이 우선일 때가 자주 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라는 언어 관련한 흔한 질문이나 투정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강상헌 기자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