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주장대로 과연 대리모 합의가 유효하게 성립될 수 있을까? 한국에 입국한 지 3일된 베트남 여성, 한국말 할 줄도 모르고, 한글도 읽을 줄 모른다. 그런 베트남 여성이 자신의 자궁을 빌려주고 자신의 아이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는 위험천만한 제안에 동의를 하는데 있어 어떠한 법적, 의학적 조언은 커녕, 제대로 된 통역조차 제공받지 못했다. 조약한사전이 대리모 약정 성립에 동원된 소통 방법의 전부였다. 또한 상대방이 소위 ‘대리모’ 약정 제안을 했다는 시점은 결혼 성립 이전이 아니라 결혼이 이미 성립하고 한국으로 이주해온 후이다. 아무리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아도 혼인 성립 ‘후’ 한국으로 이주한지 ‘3일째’ 되는 날 ‘대리모’ 약정이 성립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설사 당사자 간에 대리모 약정에 대한 의사 합치가 존재한다하더라도 불법행위가 법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
여성의 자궁을 도구화하고 아이를 상품화하는 대리모 약정 자체가 우리 사회 미풍양속과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정에 나서는 한국인 남성은 너무나도 떳떳하고 지나치게 당당하다. 나는 그 당당한 자신감에 깃들어 있는 여성 폭력에 대한 윤리적 둔감성, 저개발 국가에서 온 이주여성에 대한 경제적, 인종적 우월감, 돈이면 자궁도 아이도 살 수 있다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인식이 소름끼치도록 무섭다.
선례 없을 현대판 씨받이 사건을 다루는 법원의 태도에서도 우리 사회 인식의 미천함은 그대로 드러난다. 법원은 자녀의 복리를 이유로 들며 사안의 불법행위성을 적극적으로 판단하기를 주저하며 합의와 조정을 권하고 있다. 또한 양육권자 변경 청구에 있어서도 아이들의 혼란을 우려해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현재 법원의 입장이 관철된다면 베트남 여성은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며, 불법행위 주장 또한 조정이나 합의로 무마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이와 같은 법원의 소극적 개입으로 우리사회에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 무감증과 경제적, 인종적 우월감은 더욱 조장, 확산될 것이며 제2, 제3의 씨받이 피해 여성이 나타날 개연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선진법치국가’라는 한국사회에서 이 사건의 베트남 여성과 제2, 제3의 이주여성들의 인권침해는 과연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을까? 지금 우리사회는 ‘인신매매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심판대에 올려져 있다.
소라미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소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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