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를 통해 대통령이 내놓은 메시지는 딱 두 가지다. 즉 무슨 일이 있어도 한미 FTA는 반드시 관철시키고야 말 것이며,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것을 국민들에 미리 충분히 홍보하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쇠고기 협상에서 자기들은 잘못한 것 없고, 난무하는 괴담 속에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국민들이 오해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딱 하나 자기들이 반성할 게 있다면 사전에 충분한 홍보를 통해 미련한 국민들을 계몽시키지 않은 채 일을 추진한 점뿐이라는 얘기다.
광우병에 관련한 논란에는 크게 위험평가, 위험관리, 위험소통의 세 가지 차원이 존재한다. 대통령은 ‘소통’에 관해서만 사과를 했지만, 사실 앞의 두 가지 것과 관련하여 저지른 오류를 반성하지 않고 ‘소통’을 얘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경우 반성이란, 그저 ‘우리들은 위험평가와 위험관리를 충분히 했는데 이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에만 실패했다’는 얘기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대통령 담화는 딱 그 수준이었다. 즉 국민들이 오해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얘기다.
먼저 위험평가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광우병의 기전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밝혀져 있지 않고, 광우병의 잠복기는 다른 질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다. 그 불확실성의 지대는 마땅히 광우병의 위험지대로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 정권의 태도는 어떤가? 심지어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날로 먹어도 안전하다고 말한다. 이 정도면 정부의 담화가 아니라 완전히 몬도가네 영화다. 도대체 세계의 어느 나라 정부에서 자국민에게 광우병 쇠고기를 날로 먹어도 안전하다고 말하는가.
위험관리에 관해 말하자면, 광우병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방법이 존재한다. 가령 30개월 이상의 소는 먹어서는 안 되고, 30개월 미만이라도 SRM(특정위험물질)은 절대로 수입해서는 안 되며,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는 것 등이다. 참여정부 하에서 마련해 놓은 다섯 가지 빗장을 이명박 정권은 일주일만에 다 풀어주었다. 팬티까지 벗어주고 얻어 입은 사료조치마저도 알고 보니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니 어디 국민이 정부를 믿을 수 있겠는가.
국민들은 바로 여기에 항의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어땠는가? 그들은 국민들의 정당한 항의를 한갓 ‘괴담’으로 치부하고, 나라 예산으로 미국 쇠고기 수출업자가 해야 할 광고나 해주고, 나아가 모든 정부기관을 동원해 촛불시위의 배후를 찾아내겠노라고 엄포를 놓았다. 심지어 수업 받던 고등학생까지 끌어내어 조사를 했다. 이게 이명박 정권의 ‘위험소통’의 방식이다. 한 마디로, 위험평가, 위험관리, 위험소통의 세 가지 측면 모두에서 이명박 정권의 성적은 빵점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지금 뭘 반성하는가? 자기들이 저지른 이 세 가지 오류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반성한 게 없다. 그게 다 국민의 오해라는 거다. 그리고 하는 얘기가 고작 ‘FTA만 체결되면 잘 살게 될 테니 제발 오해를 풀고, 무조건 자기를 믿고 따라달라’는 것. 겉모양새는 대통령이 반성하는 형식이나, 실제로 내용을 따져 보면 ‘미련한 국민들, 너희들이 반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참새가 어찌 대붕의 뜻을 알리요, 거의 이런 수준이다. 나라의 운전대를 쥔 청와대가 완전히 현실감각을 상실해 버렸다.
집권초기는 영화에 비유하면 ‘트레일러’에 해당한다. 거기에는 관객을 끌기 위해 엑기스만 담긴다. 그런데 트레일러를 보고 관객들이 매긴 평점이 별 열 개 중에서 고작 별 두 개. 극장의 영화야 안 보면 그만이지만 이 영화는 안 볼 수가 없다. 불쌍한 대한극장 관객들, 이 끔찍하게 지겨운 영화를 앞으로 4년 9개월 동안 계속 봐야 한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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