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임제 개헌, 현란한 말바꾸기

[문한별의 미디어 바·보] 문한별l승인2008.06.0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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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뭥미~?" 지난 28일자 중앙일보 사설을 읽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 마디가 이랬다. 너무나 엽기적이어서 인터넷신조어로 밖에 표현 못하는 걸 양해하시라. 도대체 이 사설이 어쨌길래….

‘18대 국회가 해야 할 일, 개헌 공론화 하자’가 사설 제목이다. 내용은 보나마나다. 제목 그대로 18대 국회가 앞장서서 '개헌'을 공론화 하라는 얘기니까. 사설을 간략히 요점만 정리하면 이렇다.

대통령 중임을 금지한 87년 헌법은 '대통령 무책임제'의 극치요, '정치 실패'의 근원이다. 단임제는 "대통령이 집권 과정에서만 평가받고 정작 대통령이 된 뒤엔 실적으로 평가할 방법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헌법 구조"이다 보니 "세종대왕같이 훌륭한 대통령이 나오더라도" 실패할 수밖에 돼 있다. "단임제의 비전 부재적 특성" 때문이다. 게다가 "국회의원과 지방정부의 임기는 4년인데, 대통령 임기는 5년이기에 나타나는 임기 불일치 현상은 숱한 국력 소모를 가져왔다" 따라서 "따라서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조정해 3대 동시선거로 가든, 대선 2년 뒤 총선을 치르는 중간평가 선거로 가든 변화가 필요하다" 운운.

이 글을 읽고 무엇이 생각나시는가? 눈 밝은 분이라면 대뜸 2007년 초 정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중임제 개헌 대소동이 떠오르실 게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중임제 개헌안의 내용은 오늘자 중앙일보 사설 내용과 한치의 틀림도 없이 똑같다. 이해를 돕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의 담화내용을 잠깐 소개한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제안한 중임제 개헌안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에 의해 철저히 묵살되고 거부됐다. 중앙일보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중앙일보는 뭐라 했던가.

노 전 대통령의 담화 바로 다음날 작성된 사설 ‘개헌, 차기 정권으로 넘겨라’(2007.1.10)에서 중앙일보는 "물론 5년 단임의 문제점은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다. 연임을 신경 쓰지 않으니 대통령의 정책 책임이 약할 수 있으며 임기 말에 여지없이 레임덕이 생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주장했다. 중앙일보의 육성을 직접 들어 보시라.

"그러나 5년 단임에 대한 옹호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이 연임에 신경 쓰면 정책이 인기영합으로 흐를 수 있고 연임을 위해 무리수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같은 현실에서 대통령이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으로 현직이 무조건 연임될 소지가 높지는 않을지 따져봐야 한다. 총선과 대선의 시기가 엇갈리는 것이 오히려 유익할 수도 있다. 대통령선거 중간에 실시하는 총선은 중간평가와 국론 여과의 장(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임, 단임을 떠나 모든 게 제도보다는 사람의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여론조사 수치로는 대체로 4년 연임이 앞선다고는 하나 압도적은 아니다. 그리고 개헌의 주체, 개헌의 시기, 부작용까지 따지면 조사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개헌 문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따를 수도 있다. 대통령은 권력구조만 손을 대는 원 포인트(one point) 개헌을 하겠다고 하지만 일단 논의가 시작되면 각종 요구가 분출할 것도 우려된다. 영토조항을 고쳐야 한다, 경제조항이 낡았다는 등 여러 얘기가 나올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사회의 갈등과 긴장이 높아갈 것이다. 특히 개헌 찬반으로 사회는 다시 소용돌이칠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불과 1년 전 중앙일보 사설이 이랬다. 그래놓고서 안면 몰수하고 이제사 한다는 말이 개헌을 공론화 하자? 이걸 보고서 "이게 뭥미?"란 말이 안나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1년새 무엇이 바뀌었나? 단지 정권이 교체된 것 밖에 없다. 그런데 정권의 향방따라 이토록 손쉽게, 이토록 재빨리, 이토록 허무하게 말이 바뀌는가? 이러고서야 어떻게 논리의 일관성과 언어의 무거움을 독자들에게 경계할 것인가.

신문 사설도 물론 바뀔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아니다. 말이 극적으로 바뀌었으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소상히 설명하고 독자에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는 게 먼저다. 그 정도 양심 쯤은 있어야 한다. 신문 사설이 장난인가.

지금 증앙일보가 보인 태도는 1년 전 그 필요성을 익히 알고 공감하면서도 오로지 정략적으로, 오로지 노 전 대통령이 싫기 때문에 부러 반대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부지자'(二父之子) 노릇을 이렇듯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겠는가.

권력의 호오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가 아니라 '사기'(詐欺)에 불과하다. 중앙일보는 개헌을 주장하기 앞서 구멍난 뇌부터 개조하라.


문한별 미디어전문기자

문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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