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새해, ‘다리’ 아름다운 뜻 피어나리니...

강상헌 신년칼럼/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강상헌 논설주간/말글연구원 원장l승인2019.12.3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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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정재도 뜻 좇아, ‘육교’ 말고 ‘구름다리’라 불러야

선암사 홍교처럼 고운 무지개 세상, “우리도 다리가 되자”

▲ 2020년 경자년은 흰색에 해당하는 천간 경(庚)과 쥐에 해당하는 지지 자(子)가 만난 흰 쥐의 해다. 쥐는 번식력이 강해 예부터 다산(多産)과 풍요를 상징했다. 민간에서 쥐 서(鼠) 자를 부적으로 그려 풍농을 기원한 이유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쥐띠 해를 맞아 특별전 ‘쥐구멍에 볕 든 날’을 3월 1일까지 연다. 그림은 열매를 갉아 먹고 있는 쥐(鼠齧果實), 20세기 초 작품,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사이먼과 가펑클(Simon&Garfunkel)의 화음이 들려주는 속삭임,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Bridge Over Troubled Water, 1970년 작). 아픈 마음 당신이 험한 세상 잘 건너도록 나를 눕혀 다리가 되겠다는, 뜨거운 가슴의 헌신은 백년의 절반이 지나도 늘 인류를 적신다.

...지친 그대 지 스스로 초라하다 느낄 때, 맺히는 눈물 닦아주리. 나는 그대 편이라오. 거리 방황하는 당신에게 힘든 저녁 밀려오면, 내가 험한 세상 다리가 되오리다. 그리하여 그대의 꿈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기쁨으로 바라보리라, 내 당신 뒤에 서있으니...

지금도 그러할 터이지만, 모두들 내심 제 처지를 대신 울어주는 천사의 따뜻함으로 그 노래를 들었다. 저 쉽고 간단한 낱말과 문장들의 조합(組合)이 빚어온 위로와 공감의 크기는 쉽게 가늠할 수 없다.

기적 같은 놀라운 언어의 화학(化學)이다. ‘SG워너비’라는 남성 듀오가 한국에 생긴 이유겠다. 그들처럼 노래하라...

▲ 사이먼과 가펑클의, 험한 세상 건네주는 그 ‘다리’는 아름답고 귀하다. 음악과 시(詩)의 케미, 위대하지 않은가.

다리의 의미는 등대(燈臺)처럼 귀하고 아름답다. 중국 일본 미국을 향한 연대기적인 사대(事大)의 심리 때문에 ‘다리’라는 단어가 대교(大橋)나 교량(橋梁)이라는 말에 무색해진 상황이지만, 그 고운 뜻이 어딜 가랴?

더구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모두의 마음속 다리, 그 변용(變容)의 은유법은 새삼스럽게 가슴을 흔든다. 그 다리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의 이름일 터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일 것이니. 김춘수 시(詩) ‘꽃’의 이미지다.

‘구름다리’라는 아름다운, 적절한 이름을 잊고 멋없는 육교(陸橋)란 일본 이름만 기억하고 써대는 우리네 말글살림은 퍽 가난하고 초라하다. 글 아는 이로서 영 무참하고 동료 후배들에게도 미안하다. 잊지 않고 오래 품어온 주제 중 하나, 새해 덕담으로 풀어 고백한다.

한문 중국어 일본어 영어에도 밝은 한글학자로 한말글연구회를 이끌었던 고(故) 정재도 선생께 들은 꾸중이기도 하다. 영화 ‘말모이’에도 나오는 ‘조선말 큰 사전’ 편찬자 중의 한 분인 정 선생은 ‘국어사전 바로잡기’라는 역저(力著)에 놀라운 연구와 통찰을 담아두었다.

물(수 水) 건너는 다리와 달리 뭍(육 陸)을 건너는 다리를 우리말글은 구름다리라고 했다. 한자론 구름 雲 자 운교(雲橋)다. 중국은 하늘다리(천교 天橋)라고 뻥 좀 센 이름을 쓴다. 이렇게 세 나라가 각각 다른 이름을 썼다.

1920년대 말에 우리 문건에 ‘육교’가 처음 기록됐고, 공식 단어 대접을 받아왔다. 지금껏 우리 이쁜 말 구름다리와 운교는 시나브로 잊히고 있는 것인가. 도시의 거리에도 고속도로와 KTX선로에도, 토목의 시대 맞아 구름다리는 도처에 생겨난다.

정 선생의 노력은 후학의 연구 ‘일본어에서 온 우리말 사전’(이한섭 著, 2014년 刊)에서 입증된다. ‘도로나 철로 위에 놓아 건너갈 수 있게 만든 다리’의 뜻으로 동아일보가 1929년 처음 쓴 것으로 그 사전은 적었다.

새로운 문명의 멋스런 이름으로 여겼을까, 언중이 눈 감은 사이에 ‘육교’가 주인행세를 한 것이다. 제 말 찾는 노력의 하나로 이제 육교 대신 ‘구름다리’를 되살리자. 역시 오래 전부터 우리말이었던 ‘운교’라는 한자어 단어도 기억하자. 다리의 아름다운 뜻이 다시 피어나도록.

‘아름다운 다리’의 상징처럼 우리 마음에 새겨진 풍경 하나, 순천 선암사의 무지개다리(홍교 虹橋)를 떠올린다. 저 건너편은 피안(彼岸)인가, 차마 두려워 발 굴러 건너지 않고 내내 바라만 보았다. 워즈워드 詩 ‘무지개’의 마지막 낱말 경건함(piety)이 그 풍경에 안겨있는 듯.

기쁜 새해, 기쁜 다리 구름다리 되찾자. 나선 김에 마음과 마음 이어주는 마음의 다리를 우리 마음에 짓자. 비로소 우리도, 험한 세상 다리가 되자.

▲ 홍교(虹橋)라고도 하는 고운 그 다리, 순천 선암사의 무지개다리를 보셨나요?

토/막/새/김

적반하장(賊反荷杖) 양상군자(梁上君子)의 아전인수(我田引水)

한자어 교량(橋梁)의 梁은 (글자의 그림에) 물 수(水,氵)가 들어있는데도 한자의 역사에서 다리의 뜻보다는 지붕 아래 대들보의 뜻으로 더 자주 쓰인다. 말과 글은 생명체와도 같아서 바퀴처럼 구르고(轉) 또 물처럼 흐른다(注). 문자학의 용어 전주(轉注)의 속뜻이기도 하다.

두 글자 모두 나무 목(木)이 들어있는 점은 원래 다리를 나무로 짓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대들보 또한 나무가 재료다.

양상군자(梁上君子), 젠틀맨 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군자가 대들보에 걸터앉았다. 도둑놈이다. 이 말 보며 문득 대들보 위의 요즘 사람들이 저 스스로를 군자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허허로움을 느낀다.

도적이 되레 매를 잡는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실제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으로 내가 옳다 우기면 문득 할 말을 잊는다. 사람은, 그래선 안 된다. 꼼수나 억지는 그 다리의 뜻이 아니다. 이제는 바르게 살자. 그래야 새해가 기쁘다.

강상헌 논설주간/말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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