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투쟁·공존의 정치’ 함께 키워가야”

특별대담/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에게 듣는다 설동본 기자l승인2020.02.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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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정치’시 합리적 소통으로 협치 가능…교육에선 다원적가치 필요

시민사회의 의회에 대한 감시도 양적 감시에서 질적 감시로 바뀌어야

NGO, GO에 포섭돼지 말고 ‘우호적 환경’ 활용 저변 넓혀가는 지혜 절실

▲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연구해온 석학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민주주의는 ‘공존을 강제하는 체제로’이며,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전이 투쟁의 정치가 지속돼야 하지만 이제는 투쟁의 정치가 70%, 나머지 30%는 공존의 정치로 채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에는 두 가지 정치가 있다. 투쟁의 정치와 공존의 정치다. 민주주의는 투쟁을 통해 발전한다. 민주주의는 과거 전근대적인 체제와는 다르다. 3족을 멸하는 체제가 아니다. 갈등하는 주체들이 투쟁도 하지만, 공존을 가능케 하는 체제다. 투쟁의 정치와 함께 공존의 정치도 키워가야 한다. 소수자도 다수자가 되는 가능성을 부여하며 반대로 다수자도 소수자와 공존하도록 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은 민주주의에 대해 ‘공존을 강제하는 체제로’이며,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전이 투쟁의 정치가 지속되어야 하지만, 이제는 투쟁의 정치가 70%라면, 나머지 30%는 공존의 정치로 채워져야 한다고 격정을 쏟았다.

조 교육감은 또 최근 ‘정체성 정치’가 세계적으로 논란이 많은 것에 대해 “여성·장애인·성소수자·청소년·이민자 등 소수자들의 차별 없는 평등을 향한 열망과 역동성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라며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모든 정체성의 차이가 차별로 대우받지 않는 사회를 향해서 가야하고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 위상과 관련, 조 교육감은 “현재 시민사회 출신인 서울시장과 서울시교육감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한국시민사회의 선도적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시민사회 스스로가 새로운 역량을 확충해 활용을 다방면으로 넓혀 나갈 것을 주문했다.

<시민사회신문>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의 특별대담을 통해 우리 안에서 펼쳐지는 민주주의, 정치, 시민사회 이야기와 교육을 비롯 혁신학교2.0 등 서울교육 현안을 들어본다. 조 교육감과의 대담은 2월 14일 오후 서울시교육감실에서 진행됐다.

▲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이 함께한 청와대 간담회에서 조희연 교육감은 교육 혁신과 각종 현안 협의를 위해 대통령과 시도교육감의 정기적 소통 통로가 있었으면 한다며 ‘(가칭)교육국무회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사진=청와대

“합리적 소통 위해 30%는 공존하자”

민주주주의를 공존의 정치와 투쟁의 정치로 대별했다. 그 가운데 공존의 정치는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 놓았는데 어떤 의미인가.

탄핵이후 만들어진 제2의 민주화체제가 투쟁을 통해서 만들어졌지만 여야간 또는 좌우파간의 다수자와 소수자간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어야 했다. 공존의 민주주의를 만들기도 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성공적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공존의 정치가 가능하려면 교육의 측면에서는 다원주의적 관점, 공화주의적 관점이 필요하다. 87년 이후 승자독식민주주의가 지배적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여야간의 좌우파간에도 투쟁의 정치가 70%, 공존의 정치가 30% 정도는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선거 시기가 되면 100% 투쟁의 정치가 지배하는 상황으로 간다. 공존의 정치가 확대되면 승자와 패자, 다수당과 소수정당이 모든 문제를 가지고 사사건건 싸울 필요가 없게 된다. 선거민주주의는 어차피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사사건건 목숨을 걸듯이 싸울 필요는 없다. 30% 정도는 합리적 소통을 통해서 공존하고 이른바 협치를 할 수 있다. 이제 이전과 달리 공존의 정치영역 그런 부분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투쟁의 정치와 함께 공존의 정치도 키워가면 좋겠다. 투쟁의 정치 70%, 공존의 정치 30%로 발전해가야 한다. 87년 이후 선거민주주의가 승자독식민주주의 및 다수자 중심 민주주의에서 협치적-협의적 민주주의의 성격을 보강해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87년 이후 민주주의 얘기를 이어가 보자. 1987년 6월 민주항쟁 정점에서 한편에선 독재를 극복하고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다른 한편에선 이를 뛰어넘는 다양한 급진적 지향이 있었다. ‘87년 체제’ 30년을 훌쩍 넘긴 지금 민주주의에 대한 큰 변화가 있다고 보는가.

한국에서 ‘자유’는 ‘반공’과 동의어로 쓰인 시기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민주주의’라면 사실상 자유도 없고, 민주주의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토대는 자유주의와 다원주의다. 말씀하신 ‘급진적 지향’은 이 두 가지 토대 중에 후자를 더 강조하는 입장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나도 한국 사회에 다원주의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급진 민주주의’를 주창한 바 있다. 모든 변화가 그렇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실망스럽고 장기적으로 보면 혁명적이다. 최근 ‘정체성 정치’에 대해 세계적으로도 논란이 많지만, 여성·장애인·성소수자·청소년·이민자 등 소수자들의 차별 없는 평등을 향한 열망과 역동성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모든 정체성의 차이가 차별로 대우받지 않는 사회를 향해서 가야하고 가고 있다.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 줄 다시 고쳐 맬 시점”

6,70년대에 극단적으로 산업화시대를 추구하는 독재체제가 있었다. 80년대를 기점으로 민주화체제가 들어선 다음에 이명박·박근혜 정부 출현으로 독재적, 권위주의적 방식, 과거의 산업화방식을 답습하는 지점이 있었는데.

그런 면에서 탄핵과 촛불시민혁명은 87년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촛불시민혁명 이후 들어선 민주화 세력이 주도하는 정부가 이명박 박근혜정부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안정적 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는 도전이 있다. 과거 민주화 세력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자면 촛불시민혁명의 정부와 그걸 주도하는 민주화 세력의 도전을 가지고 있는 면이 있다. 실패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성공했다고도 볼 수 없는 그런 위기의 기간이다. 문재인 정부 남은 기간 ‘해현경장(解弦更張)’, 즉 거문고의 줄을 다시 고쳐 매야 될 시점이다.

‘민주주의 좌파(democratic left)’라는 독특한 이론을 설파하고 이를 정립했다. 현재 보수진영과 ‘민주주의 우파’에서 현실정치를 ‘급진주의 좌파’가 독점, 그 폐해가 심각하다고 공격한다. “대중의 좌절과 분노가 한 단계 높은 정치적·계급적 의지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평소지론을 유추해 심화되는 좌우분열을 통합으로 이끌 방안은 무엇인가.

ㅎㅎ(웃음)학자시절 이야기다. 거기서 좌파라는 개념은 요즘의 좌파라는 개념 보다는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1인 1표주의’의 잠재적 진보성을 과감하게 확장하자는 취지다. 많은 진보적 이상들이 좌파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추구될 수도 있지만,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으로도 추구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사회의 대결적 성격은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측면이 크다. 과거 ‘반공’과 ‘산업화’를 두 축으로 하는 권위주의 국가에 맞서 시민들이 안티테제로써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해온 흐름이 현재의 정당 체제와 시민사회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렇게 한 번 구조화된 패러다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는 우리의 이념과 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의 변화에 대응하는 실용적 태도를 갖는 것이다. 동시에 지난 역사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면서 적대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역사를 돌아보며 누구 편이냐 물을 것이 아니라, 잘한 것은 잘했다고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달 31일 제5회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의 날을 맞아 열린 ‘제8기 학생참여단 교육정책 제안서’ 전달식에 참석해 학생들의 교육정책 의견을 청취하고 제안서를 전달받고 있다.

“우리 국민은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갖는 대중”

<민주주의 좌파, 철수와 원순을 논하다>라는 책도 쓴 적이 있는데, 민주주의 좌파라는 것은 고전적 개념보다 사실 한계가 있는 제도 아닌가.

제가 학자 시절에 안철수와 박원순으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을 다룬 적이 있었다. 민주주의는 사회주의, 노동혁명보다 한계가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1인1표주의를 갖는 민주주의는 1원1표주의가 갖는 자본주의보다 더 전향적이다. 그런 취지에서 민주주의가 갖는 진보적 잠재성을 확장하는 취지에서 민주주의좌파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대중에게는 기성세대에서 실현하지 못하는 좌절과 분노, 대안과 희망이 있다. 대안적 체제에 대한 열정, 기대, 희망이 철수와 원순에게 투사되는, 나는 여전히 그 조건은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안철수와 박원순에 새로운 변화에 대한 열망을 투사하는 조건의 성격은 많이 변화했다. 한국의 국민을 저는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갖는 대중’으로 본다.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불만이 높고 그 불만이 대안적 지도자에 대한 희구로 나타나게 된다.

서구 사회민주주의를 확장하자는 의견에 동의하는가. 또 글로벌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지점은 어디라고 보는지.

두 가지 모두 여전히 유효하다. 그 책을 잊고 있다가 최근에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대중의 대안적 열망을 실현하는 이념적 지향으로 생태평화 사회적 민주주의를 제안했더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여기서 사민주의라는 표현을 안 쓰고 사회적 민주주의라고 굳이 썼던 것은 고정화된 이념이나 체제로서 보다는 민주주의의 사회적 확장의 한 구현이 바로 사민주의라고 보았다. 한국에서 여전히 불평등이나 양극화 같은 현실에 대항하는 민주주의의 사회적 확장을 통해서 해결해가야 한다. 한 가지 지금도 유효한 것이 있다면, 그런 사회적 민주주의가 서구의 사민주의와도 달리 생태주의적 및 평화주의적 이상과 결합해야 한다. 나아가 글로벌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그 책에서 사회적 완충국가(social buffer state)를 제안했는데,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국민국가가 불평등과 양극화 시대에 국민들의 삶을 보듬는 버퍼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복지의 확대일 수도 있고 기본소득일 수도 있고 각종 사회보장제도일 수도 있겠다. 국가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이런 지점을 감지했으면 한다. 신자유주의는 영화 ‘기생충’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양극화를 동반한다. 이러한 것을 완충해줘야 한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식의 완충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복지체제로 확충해 서민·노동자들이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국가와 사회가 필요하다.

“세계시민형 인성교육 핵심은 ‘다양성’ 교육”

민주시민교육이 전국에서 화두다. 국무총리실에서도 민주시민교육센터 발족을 직접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학교에서의 민주시민교육이 더욱 중요하다. 서울시교육청이 밝힌 ‘세계시민형인성교육’과도 일맥상통한다.

우선 총리실의 민주시민교육센터 발족 준비를 환영한다. 말씀한 대로 민주시민교육은 국가적 과제다. 나는 이를 ‘세계시민형 인성교육’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름이 어떻든 핵심은 ‘다양성’ 교육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토론하고, 합의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다양성’, ‘다원주의’가 민주주의의 토대라는 것이다. 물론 삼권분립, 선거의 의의 등도 배워야겠지만 다원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세계시민형민주시민교육, 세계시민형인성교육, 지구촌시대 글로벌 표준에 맞는 인성, 리더, 감수성, 가치기준을 갖는 그런 시민, 민주시민을 기르고자 한다. 여기에 맞춰 세계시민윤리 책을 발간하려 한다. 우리 학생들이 내가 세계시민으로서의 덕목과 가치기준이 뭔가를 배우는 기준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면 훨씬 더 현대적이지 않을까. 민주시민교육을 보다 보편·시대적, 그리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시민사회를 국정운영 동반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민사회를 ‘시민·단체·조직·공익활동의 주체와 영역’으로 정의하고 갖가지 제도개선에 나섰다. 그동안 총리실 자문기구였던 ‘시민사회발전위원회’를 정책심의의결기구로 그 위상을 재정립한다. 시민사회와 정부, 어떤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고 보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사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정부를 견제하는 동시에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넓히는 역할을 맡아왔다. 근래에 들어서는 거버넌스라는 개념을 통해 민·관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정부가 시민사회 위에 군림하던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 비교하면 발전적인 변화다. 다만, 시민사회와 정부는 서로 다른 각자의 목표와 역할이 있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정부가 시민사회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시민사회도 정부가 될 수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일정한 긴장 관계는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시민사회에 개방적인 정부라는 것은 우호적 환경 속에서 시민사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고 자원적으로 더욱 유리한 환경에 속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도 있는데.

맞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포섭될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내가 교육감이라는 행정가로서 여전히 지향하고 있는 생각은 시민사회 인사였던 시절의 마인드와 시선을 가지고 최대한 시민사회 친화적 행정 혹은 시민사회의 기대와 요구에 가장 근접한 행정을 펼쳐보자는 것이다. 나도 행정가로서 간부들에게 이런 방향을 얘기하고 있다. 관은 이전에 비해서는 훨씬 더 시민사회에 친화적이려고 노력한다. 그걸 또 뛰어넘어 조금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공공행정기관을 끌고 갈 수 있는 새로운 선도적 역량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시민사회 친화적인 행정이라고 하더라도 시민사회는 또 그것을 넘어서서 더 높은 수준에서 비판하고 선도해야 한다. 사실 이전에 비해 관이 시민사회 친화적이려고 노력하면 아무래도 시민사회가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 이러한 공간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시민사회가 더욱 풍부화되고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강화되게 해야 한다. 그런 지혜가 필요하다. 시민사회와 관은 언제나 긴장관계에 있어야 한다.

관이 너무 앞서서 시민사회 일을 도모한 나머지 NGO가 본연의 역할인 감시 기능에 소홀하다는 비판도 있는데.

좋은 지적이다. 관이 먼저 알아서 하고자 하니 그런 측면은 이해한다. 현재 시민사회 출신인 서울시장과 서울시교육감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한국시민사회의 선도적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 사람이 유능해서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도덕성과 잠재적 역량을 국민들이 인정해주어서 서울의 두 직선단체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시민사회가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관을 감시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이다. 시민사회 스스로가 새로운 역량을 확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시민사회의 위축이냐 아니냐를 판단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시민사회, 특히 내가 대면하고 있는 교육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새롭게 병풍같고 비빌 언덕같은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 시민사회의 재강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면은 없을까를 때로 고민하기도 한다.

▲ 조희연 교육감이 지난달 31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와 교육공무직 근무 조건과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NGO와 GO간 끊임없는 대화 이뤄져야”

오래전부터 ‘시민운동 위기’라는 한계는 시민단체 내에서도 극복하기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 스스로 이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시민사회 출신 중에서 행정 혹은 제도권에 진출한 사람들이 꽤 된다. 양자 간에 서로의 고민과 지혜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한다. <시민사회신문>이 'NGO와 GO의 대화'를 이끌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선 비정부와 정부 기구간 서로 지혜를 나누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기도 할 것 같다. 예컨대 의회에 대한 감시를 양적 감시에서 질적 감시로 전환할 것으로 주문하고 싶다. 양적 감시의 대표적인 형식은 의원이 얼마나 의정활동을 잘하는 가를 법안 발의율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부에서 보면 바로 그러한 감시방식 때문에 굳이 안 해도 되는 법안을 발의하는 경우도 있고, 서로 품앗이하듯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 불필요한 규제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된다. 규제가 많아져야 할 영역도 있고, 규제가 완화되어야 할 영역도 있다. 그런데 무조건 법안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 강박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에서 NGO-GO간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인지.

예를 들면 시민사회 감시가 필요한데, 조금 더 우리가 후진국 시대의 감시와 선진국 문턱에 가고 있는 사회에서의 감시가 다른 지점이 있다. 우리사회가 시민사회의 투쟁과 헌신의 결과로 이미 상당한 레벨에 올라가 있다. 그래서 이제는 여러 가지 진보적 가치의 조화지점과 균형지점이 어딘가를 고민해야 한다. 2개의 가치 혹은 3개의 가치의 조화지점을 찾는 것이 사회발전에 더 필요한 경우도 많다. 교육영역을 예로 들어보자. 내가 진보교육감이자 학생인권 교육감으로 평가된다. 나는 최근에 학생인권과 교권의 조화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시민사회와 관의 관계의 변화 속에서 한 단계 높은 발전을 위해 시민사회와 시민사회단체의 역할 지점에 대해서, 그리고 대안적 개입지점에 대해서 지혜를 나눌 필요도 있다. 요즘 시민사회가 원론적 감시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개발독재가 횡행하던 시대와 달라진 조건에 맞는 감시 방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대화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그래서 NGO와 GO의 대화를 제안하는 것이다.

올해 2020년은 서울형 혁신학교 도입 10년을 맞는다. 서울시교육청도 올해를 ‘서울인공지능 원년’으로 선포하면서 ‘혁신학교 2.0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정책을 효과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인가.

세 가지를 강조할 수 있다. 첫째는 성찰적 관점, 둘째는 교육의 본질을 회복한다는 관점, 마지막은 미래지향적 관점이다. 우선 지난 10년의 성과와 과오를 모두 객관화하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출발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바,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재정립해야 한다. 또한 세계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한 세계의 변화를 교육에 반영할 것이다. 2020년을 인공지능 교육 원년으로 삼고, 기후위기 문제 등 학생들의 미래를 좌우할 문제들을 스스로 고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 조희연 교육감(오른쪽)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라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조 교육감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남부초등학교에서 등교하는 어린이들에게 손 소독제를 발라주고 있는 모습이다.

“혁신교육 2.0세대 열어 인공지능시대 새 내용성 확보”

87년 민주화 이후 사회민주화의 흐름을 받아 안아서 학교민주화, 교육민주화의 흐름을 구체화 한 것이 어떻게 보면 혁신학교 운동이고 혁신교육 운동이라고 알고 있는데.

지난 10년 동안 혁신교육 1.0세대라 보고 우리는 이제 혁신교육 2.0세대를 열어 나갈 것이다. 학교라기 보단 교육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흐름을 계승하면서 문제를 보완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새롭게 응전하는 새로운 내용성을 확보해가는 노력이다. 하나는 성찰적 반성적 관점이고 두 번째 교육의 본질을 회복한다는 의미는 혁신이 바꾸는 거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보수적 교육과도 공통적인 교육 본연의 과제를 공유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저는 요즘 교육의 목표는 지덕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혁신교육을 혁신하겠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혁신교육2.0이라면 혁신교육1.0, 즉 과거의 혁신은 잘못됐다는 것인가.

그런 의미는 아니다. 지금처럼 혁신교육의 계승이면서 단순반복 단순확장은 안된다는 뜻이다.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 예컨대 기초학력문제를 새롭게 중요하게 본다. 성적 줄 세우기에 반대하며 1등에만 치중하는 교육을 극복하려고 하는 그동안의 과정에서 혹시 기초학력 문제에 대해서 우리 공교육의 책무성이 방기된 것은 아닌가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기초학력이 부진한 학생에 대해 책임성있게 접근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방임의 문제가 있다고 스스로 자성해보고 있다. 또한 학교가 최적의 교육공간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학생인권도 존중하지만 교사의 교육권도 보장돼야한다. 지난 1.0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일부지만 긍정적 의미의 교권마저도 흔들리는 지점이 있다. 이 점은 보완해야 한다. 나아가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IT교육도 심혈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 모든 혁신학교에 스마트 환경을 다 갖춰 주고자 한다. 혁신학교를 자임하는 학교일수록 스마트 교육에서도 앞서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는 기술적 측면에 대해 보수적이거나 무관심하다는 인식이 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공공성·시민성‘에 관한한 자타가 공인한 실력가다. 그래서 공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이 한층 발돋움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공교육과 사교육은 여전히 괴리감이 있어 보인다. 공교육에 대한 확고한 철학은 무엇인가.

대입을 중심으로 한 고교 서열화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혀왔다. 고교 서열화 자체도 문제지만, 부모의 경제적 격차가 대물림되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본다. 내 철학은 이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태어난 집은 달라도 배우는 교육은 같아야 한다.” 단순히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학생을 돕는다는 차원을 넘어, 기초학력을 공교육이 확실히 보장함으로써 미래의 격차도 좁히고자 한다.

“태어난 집은 달라도 배우는 교육은 같아야”

시민사회가 사립유치원 비리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통제장치인 유치원3법(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이 사립유치원의 비리 근절과 유아교육 공공성 확보라는 본래 취지를 훼손하고 국회를 통과했다고 비판하는데.

최대주의적으로 생각하면 모자라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여기까지 오는 과정도 매우 험난했다. 그렇게 요구했던 법안이 통과됐으니, 이제 현장에서 잘 안착시키는 일이 남았다. 법은 법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달라서는 안 된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되,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일이 되게 만드는 집행력을 보여주고자 한다.

시민사회가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가 공공성·투명성·연대성인데, 이런 가치에 보다 더 충실할 수 있지 않았을까.

유치원 3법이 통과됐지만 그것이 교육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완전히 확보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한유총 사태 관련 오히려 선출직 의원들이 사립유치원, 한유총의 눈치를 보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박용진 의원이 주최한 한유총 토론회 사태를 계기로 말미암아 3법이 이 정도까지 만들어진 것도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이다. 아시겠지만 한유총에 대한 해산조치를 제가 직접 내렸다. 일부 사립유치원 쪽에서는 박용진, 조희연, 유은혜를 ‘삼적’이라고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새로운 전환적 계기를 만든 사람이 박용진 의원이고, 그 사태 이후 에듀파인 도입 등 유치원 공공성 확대를 위해 유은혜 장관이 힘써왔고, 내가 최종적으로 한유총 해산결정을 내렸다는 취지인 것 같다. 어쨌든 3법과 함께 한유총 해산까지 해서 여기까지 왔다. 한유총 해산까지 가서 사법적으로 마무리 돼야 하는데 1심 법원이 한유총 손을 들어줬다. 비리해결, 공공성의 견제장치를 만들기 위한 유치원 3법 조정이 한유총 해산과 사법적 수용으로 완결돼야 하지 않겠는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영향으로 학교에 휴업명령을 내리고 있다. 앞으로 추이를 지켜보면서 휴업명령 외에 다른 특단의 조치가 있는가.

현재 두 차례에 걸쳐 총 74개 학교에 국지적 휴업 명령을 내렸다. 우리 교육청을 포함해 정부 전체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 하고 있다. 때문에 상황이 잘 관리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말씀하신 특단의 조치까지 안 가도록 하는 것이 우리 목표다. 나는 코로나 사태가 불신사회에서 신뢰사회로 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모두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라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학부모의 불안으로 휴업조치에 대한 요구가 빗발쳐 국지적 휴업방침을 정한 것으로 안다.

전국적 휴업 또는 한 지역 전체의 휴업과는 다른 국지적 휴업이다. 확진자가 다녀간 지역 중심이다. 질병관리본부와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르면서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 대통령도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요구도 있었던 것처럼 확산에 대한 관리 시스템이 갖춰진 상태에 들어간 것 같다. 오히려 과도한 대응이 경제를 위축시키는 지점도 있기에 정상적인 교육활동으로 돌아가기 위한 단계적 조치를 취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지적한대로 학부모의 불안이 확산돼 있는 상황에서 과잉대응이라 비판받을 우려와 안이한 대응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는 중간에 끼어서 어떤 것들이 가장 합리적인 대응이냐를 감안해서 나름대로 균형 잡힌, 그러면서도 선제적인 정책을 취해왔다.

“선거교육과 선거운동은 분리해서 봐야”

서울시교육청의 ‘모의선거 프로젝트 수업’에 선관위가 불허 결정했다. 민주시민교육차원에서도 안타깝다는 반응이 나온다.

선관위 입장이 ‘원천 불허’는 아니다. “행위양태에 따라...공직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다고 결정”한 것이다. 때문에 달리 읽으면 위반되지 않을 확고한 조치들이 마련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처음 계획했던 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상태지만, 지금도 실현가능한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폭넓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게 민주주의 근간이다. 모의선거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불합리한 조치라는 게 시민사회 의견이다.

선관위 입장을 존중할 수밖에 없겠지만, 선관위가 모의선거 등 참정권 교육에 소극적인듯 해서 안타깝다. 하지만 참정권 교육자체는 포기하지 않고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이다. 선거교육과 선거운동을 분리해서 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참정권 교육을 포함한 선거교육은 더욱 폭넓게 해야 한다. 단지 학교 내에서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규제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선거법이 허용하는 범위와 규제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학교 내 학생들간 ‘이념 사태’로 비하될 수 있음은 주목해야 한다. 특히 선거법이 사이버 공간에서의 지지활동 등에 대해서는 폭넓게 허용적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는 사이버를 통해 역동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오프라인 학교와 운동장에서는 선거운동을 할 수 있고 2개 이상의 교실에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선관위가 학교 내 선거운동에 대해서 지침을 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학교에 혼란을 줄 수 있다. 학교 공간의 선거운동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교육정책을 펼치는 현장에서 어떤 현안에 대해 대립과 반목, 그리고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핵심의제로 주창하는 ‘숙의민주주의 공론화’는 학부모나 일반 성인의 문제가 아닌 학생시절부터 몸소 체험해야 한다고 보는데.

민주주의 자체가 사실 ‘숙의’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5천만 국민이 다 같이 모여 논의할 수 없으니 국회라는 숙의 기관을 만든 것이다. 시민들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숙의를 거쳐 좋은 결정을 하라는 취지다. 학급처럼 작은 단위에서는 숙의가 일상이 되어야 한다. 일부러 숙의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 아니라, 수업 자체가 숙의의 과정이 되고, 또 학생회 활동, 학급 운영 등 생활 속에서 숙의 과정이 익숙해지는 것이 가장 좋다.

▲ 조희연 교육감은 서울시교육감이 시민사회 출신인 것 자체가 한국시민사회의 선도적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러한 위상 변화에 맞게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관을 감시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시민사회 스스로가 새로운 역량을 확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지적이다.

“정치·사회적 갈등은 천사와 악마의 싸움이 아니다”

교육감 조희연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거창하게 말하면 포용력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 주장하는 것을 포함해 100% 옳거나 100% 틀린 의견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선의로 행동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의견에도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좌우이념이나 보수 대 진보, GO와 NGO의 가치와 지향 등에 대해서는 오랜 동안 연구해온 전문가이고 진보적 정체성을 40여 년 동안 견지해온 사람이라고 자임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적 지향성과 방향성, 가치지향을 견결히 가지면서도 보다 포용적이고 개방적이고 경청하는 공존의 길을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정치적 사회적 갈등, 혹은 넓은 의미의 정치도 천사와 악마의 싸움이 아니라고 최근에는 생각한다. 통상 우리 편은 천사로 간주되고 상대편은 모두 악마로 간주하는 식의 시선을 가질 수 있다. 80년대 반독재 민주화투쟁이 강렬했던 시대에는 그런 시선으로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을 불태우고 대의를 위해 헌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우리 편의 악마성도 보고 우리 안의 악마성도 직시하면서, 갈등하면서도 공존의 끈을 놓지 않는 노력도 해야 할 조건에 이르지 않았는가하는 생각을 한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국민들이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갈 길이 멀고 투쟁과 갈등을 통해서 사회발전과 정치발전을 도모해가야 할 영역도 많다. 그러나 이제 조금은 더 공존과 협치의 영역을 확대하고 보존해갈 필요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조국사태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조국이다’라는 말은 ‘내 안에 있는 조국의 모습’을 성찰적으로 돌아보는 말로도 사용돼야 한다.

시민과 시민사회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외부에서 보기에 변화의 속도가 매우 더디다고 느낄 수 있다. 특히 내가 오래 몸 담았던 시민사회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게 느끼실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여유를 갖고 지켜보면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7년 만의 공립특수학교 개교, 혁신교육 대중화, 미래교육 기반 마련, 더욱 안전해진 학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가 보고되고 있다. 사실 내가 가장 조급한 심정이다. 차근차근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도 제일 잘 알고 있다. 앞으로도 서울교육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

설동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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