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생활인에게 물은 현장 민생 실태

“어이, ‘요즘 어떠냐고’ 묻는 건 먹고 살만할 때 인사고. 요즘은 실례야, 실례.”

연초부터 하강 국면으로 빠르게 진입한 한국 경제가 하반기에도 밝지 않을 것이란 시그널이 잇따라 울리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강화되면서 서민 경제는 더욱 타격이 클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실제 민생의 현재 온도는 어떨까? 지난 7일 시계 도매업을 하는 선배에게 반갑다고 건넨 말에 그만 한소리를 들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냐’는 식으로 들린단다.

“주로 여성 손목시계를 취급하지. 그런데 사람들 먹고 사는 게 빠듯해지니 패션소비의 구매 의사가 떨어지는 거야. 매출? 올 초부터 40% 급감한 뒤 쭉 이 모양이다.”

그는 시계회사 월급쟁이 생활을 접고 1년 6개월 전에 독립을 했다. 언제 도태될지 모르는 회사 생활에서 벗어나 자기 사업을 일구겠다는 직장인의 꿈에 도전한 것이다. 처음엔 예전 거래선도 살아있어 그럭저럭 유지할 만 했다. 하지만 이젠 당장 내일이 고민이라고 했다.

“수출은 그래도 꾸준히 잘되는 것 같긴 해. 그렇다고 세월 좋다는 말은 못하지. 회사에선 벌써 내년 연봉협상은 경기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데 뭐.”

중소 해운회사를 다니는 또 다른 동석 선배는 ‘수출은 그나마 호조라는데 무역회사는 돈 잘 벌겠네’란 자영업 선배의 말에 손을 내젓는다.

“그전부터 100개 컨테이너 실을 배에 70개만 채우고도 배를 보내기도 하고, 업계 내 경쟁이 심했지. 중국 가는 배에 20피트(컨테이너 단위) 운임이 150달러에서 60~70달러까지 떨어졌다니깐. 위태위태하다는 이야기 업계에선 많이 나왔지. 거기에 이번에 유가급등이 컸다. 아마 조만간 문 닫을 해운사 여러 곳 될 거다.”

만일을 대비해 지난달부터 출근 전 새벽시간을 이용해 중국어 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사는 거? 묻지 마라. 괴롭다…

“원인? 나도 묻고 싶다. 대통령이 잘 살게 해준다고 한 약속이나 기다려 볼까?” “에이, 누구 말을 믿으란 거야!”

‘자영업’ 선배의 말에 ‘직장인’ 선배가 역정을 낸다. 직장인 선배는 시청 앞 촛불집회에서도 우연찮게 본 게 두 번이나 된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촛불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 질 수 있다”는 대통령 발언으로 이어진다.

“그냥 해보는 말이다. 경제가 ‘747타고 날아 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열정이 있고 순박하잖아. IMF 때처럼 금모으기라도 할 수 있는 국민들이지만 그것도 정부에 신뢰가 있을 때 이야기지. 정부가 촛불 끄고 경제 살리자고 말하지만 내가 들어도 믿음이 안간다. 장고 끝에 애꿎은 차관만 경질시킨 3.5명 내각 인선 보고 누가 ‘야 이 정부가 이 악물고 국민 뜻 받아들여 경제를 살리겠다고 노력하는구나’ 생각하겠냐? 불신을 계속 만들어내면서 믿어달라고 하니….”

자영업 선배는 정권이 바뀐다고 경제가 확 살거란 기대부터 잘못이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온라인 판매 쪽이 그동안 토요일 날 제일 잘됐는데 촛불이 켜진 이후 급감하긴 했다며 웃고 만다.
“대외 신인도? 금융 쪽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와 관련된 수출입 업무 보면서 촛불 걱정하는 외국 파트너들은 한 명도 못봤는데? 사실 지금 촛불 때문에 더 이상 거래 못트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가 아니다. 유가상승이니 국제 경제 침제로 그쪽도 정신이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외 파트너와 통화한다는 직장인 선배는 ‘촛불=경제 경착륙’은 속이 뻔히 보이는 레토릭이라고 판정을 내린다.

MB경제, “미래가 안보인다”

어떻게 하면 경제 문제, 민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물었다. 답 나오기 힘든 질문이란 생각은 했지만 ‘그걸 어떻게 알겠냐’고 또다시 역정이 즉각 날라 온다. 잽싸게 술자리가 벌어졌던 광장시장 노점 주인 아주머니한테 되물었다.

“촛불시위나 빨리 그만 뒀으면 좋겠어요. 3천원 하던 간장 한통이 6천200원으로 올랐는데 매상은 반으로 줄었어.” 집회가 열리는 서울 종로에 인접하다보니 버스노선이 통제라도 되면 장사를 접어야 했다고 한다.

이날은 대규모 집회도 없는 날이었지만 광장시장 먹거리 골목은 한산하다. 그렇다면 언제나 풀릴 것 같냐고 다시 물었다. “글쎄 내가 아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우문의 연속이다.

촛불 때문이 아니라는 직장인 선배의 참견, 먹고 살고 힘드니 그러는 거 아니냐는 자영업 선배의 중재, 그러다가 ‘장사하는 게 맘은 편하지 않냐’는 반격과 ‘월급쟁이 좋은 줄 알아라’는 공격이 오고가며 설전이 벌어지는 사이에 ‘금융감독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선배가 저녁 11시가 넘어 합류했다. 비실명을 전제로 나오는 이야기들이 ‘독하다.’

“시중에서 제2의 IMF가 찾아오고 있다는 이야기 들어봤냐? 사실 여부를 떠나 이게 지금 MB 경제의 현주소야. 4% 성장률 지키기도 사실 힘들지. 미국경제의 연착륙이 담보돼야 하는데 그도 아니고, 환율도 점진적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이도 모르겠고, 유가니 부동산이니 등등 저해 요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촛불로 경제적 여파가 일고 있다는 것은 성립이 안 돼. 그렇다면 87년 당시 정국이 그렇게 시끄러웠는데도 우리 경제는 가장 호황에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냐. 솔직히 말해야해. 촛불과 경제는 상관없어.”

내친 김에 정부의 경제팀 운영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유임에 관해 물었다.

“내부 비판 있지. MB 경제 교사인 강만수 장관은 정책당국자가 드라이브를 걸면 경제가 움직여주던 과거를 생각할지 모르지만 IMF 이후 우리 경제의 구조와 시스템이 달라졌잖아. 미스 매칭이 이어지면서 경제 위험성은 더 커지고 있어.”

야당은 물론 당정 내부에서도 교체 압박이 들어오던 강 장관을 끌어안을 수 밖에 없는 MB의 정체성이 문제라고 덧붙인다.

“국민 수준을 이 정부가 따라가질 못해. 80년대 후반 사고방식으로 계도적 거시경제를 수행하는 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거기에 촛불 시민들에게 몽둥이 찜질하고 한편으론 겁많은 소시민 ‘좌빨’로 자극해 포위하려는 전략은 국민들한테 비웃음 사기 딱 좋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지만 그 사이 국민들 인식이 많이 성숙했다는 것마저 잊어버린 것 같아. 앞으로 한국경제가 어떤 대가를 치를지, 서민경제가 얼마나 힘들어질지 생각하면 가끔 아찔하다.”

이재환 기자

이재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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