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홍어-전라도의 덕성(上)

남도밥상의 ‘개미’, 코로나시대 인류 새 동력 되리니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l승인2020.09.2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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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밥상의 맛을 이르는 특징적인, 그러면서도 뜻 모호한 채 쓰이는 맛난 언어가 있다. ‘개미’다. ‘맛이 있다’를 넘어서는, 특별한 맛을 이르고자 하는 의도로 쓴다. ‘개미 있다’ ‘개미지다’라고 쓴다. ‘게미’라고 쓰기도 한다.

개미의 말밑(어원)이나 유래가 명료하지 않다. 한자가 변한 말인지 아니면 온전한 토종어인지, 어떤 일을 계기로 시작되어 이런 뜻으로 쓰이는지 등의 언어(학)적 지식이 낙낙히 쌓여있지 않은 것이다. 사투리라며 제쳐두기도 한다. 국어사전에 없다.

▲ 만만치 않은 산 유달산은 개미진 홍어가 배로 지나던 그 바다를 지금도 내려다본다. 조용백 화백이 2015년 그린 ‘목포항-그날의 추억’이다.

글 쓰는 이들의 묘사를 모아보면, 이는 은근하면서도 깊은 음식의 맛을 기리기 위한 언어다. “이 말 모르고 누가 감히 남도밥상을 안다 하랴” 얼마 전 타계한 박준영(전 나주문화원장) 선생이 나직이 들려준 얘기다. 다소곳이 지켜온 긍지의 언어인 것이다.

남도 땅과 사람들의 삶을 새겨온 황풍년(전라도닷컴 발행인) 씨의 에세이집 ‘풍년식탐’(2013년 刊)은 ‘개미’가 이 지역 음식의 개미를 얼마나 개미지게 풀었는지를 절절히 드러낸다.

‘흑산도 최명자 아짐의 홍어된장찜’ 글을 맛보면 개미의 쓰임새 확연하다. ‘천 갈래 만 갈래로 뻗어가는 맛의 지존’이라고 했다. 홍어의 다양한 개미인 것이다. 아 그렇지, 개미의 뜻은 홍어(요리)의 맛으로 설명해야 제격이겠구나. 홍어 모르면, 알고서 다시 오시게나.

동아지중해 한가운데 흑산도는 예로부터 홍어 포인트였다. 거기서 건너보이는 영산도는 본섬의 예리 항(港)과 함께 홍어중심이었다. 나주의 영산포는 영산도 이주민이 옮겨와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왜구의 노략질 피하자고 고려는 공도(空島)정책으로 섬을 비워버렸다.

살림집은 옮겼어도 홍어잡이는 흑산바다였다. 유달산이 내려다보는 목포나루 앞을 지나 영산강을 오르는 운송과정에서 홍어는 곰삭았다. 신선(新鮮)부터 삭힘까지, 세계적인 홍어 맛의 파노라마가 시작됐다. 선조들은, 김치 같은 발효의 이 명품을 ‘발명’한 명인(名人)들이었다.

용맹스런 덕장(德將) 이순신의 바다이기도 하다. 유달산은 이 바다를 지금도 지켜본다. 우리는 자칫 이 인류문화(사)적 의미를 대수롭지 않다 경시하는 것은 아닌가, 저어한다.

남도의 덕성 중 거의 모든 지역과 사람들을 매혹하는 요소, 혼을 담아 예술의 경지에 이른 ‘맛’이다. ‘풍년식탐’의 이모저모에 그 맛과 맛을 빚는 사람들의 인심(人心)이 절절히 드러난다. 아름답다 가(佳)자 넣어 가미(佳味)라고도 개미를 푸는 까닭일 것이다.

현대사 여러 상처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맛의 고을 미향(味鄕)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지점이다. 모두 감동하는, 현재 제 가진 가장 큰 재산인 이 덕(德)을 바탕삼아 ‘전라도’와 한국을 펴야 덕스러운 선택일 터다. 물론 제대로 보완하고 정비한 명품을 내놔야 한다.

개미가 미래로, 인류로 비상(飛上)하여 중국 프랑스 터키 등지의 글로벌 음식명품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하는 근거다. 실상은, 이 말과 뜻이 이 지역에서조차 시나브로 잊히는 것이 안타깝다. 겉모습 요란한 서구의 허접문명에 한눈파느라 자칫 제 보석 팽개칠라. <계속>

토/막/새/김

가미(佳味)와 백채(白菜) 그리고 비교발음론

개미의 문자학, ‘아름다운 맛’ 가미(佳味)를 다시 보자. 한자의 발음표기법인 반절(反切)로 가(佳)를 풀면 고해절(古膎切)이니 古의 ‘ㄱ’과 膎의 ‘ㅐ’가 합쳐지는 ‘개’가 佳의 원래 발음이었다. ‘개미’가 佳味의 한자발음에서 왔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加味(가미)라 하는 이도 있다.

배추를 백채(白菜)라고 하는데 한자발음이 ‘바이차이’다. 일부에서 배추를 ‘배차’라고 부르던 우리 말 옛 습관을 기억한다. 가미와 개미의 경우와도 흡사한 ‘비교발음론’이랄까. 허나 개미든 게미든 가미든, ‘개미’는 이미 남도의 개미를 설파하는 힘차고 이쁜 말이다.

강상헌 논설주간/한국어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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