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불온도서에 대한 단속은 노태우정권까지 군사독재정권 내내 이어졌다. 많은 학생들이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등을 돌려 읽다 하루 아침에 캠퍼스에서 사라지곤 했다. 리영희 선생 등 ‘불온도서’의 저자들은 악명 높은 남산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가야 했다. 공항을 통한 외국 서적 반입은 더욱 어려웠다. 막스 베버의 책은 ‘맑스’ 저작물이라는 이유로 반입이 금지됐고, 책 제목에 ‘Social’이라는 글귀만 들어 있어도 어김없이 ‘불가’ 딱지를 받았다.
그로부터 3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학생과 시민의 끈질긴 항쟁으로 민주화를 쟁취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불온도서’ 타령이다. 국방부가 뜬금없이 ‘반정부’ ‘반미’ ‘반자본주의’를 들먹이며 23권을 ‘불온도서’로 선정했다고 한다. 언뜻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이 떠올랐으나 이내 지워 버렸다. 이명박 정부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20~30년 전으로 돌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뿌리는 박정희 정권의 공화당까지 닿아 있으니 당연히 박정희 정권의 ‘불온’은 MB정권의 ‘불온’이 아니던가.
23권의 ‘불온도서’ 목록 중에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우리들의 하느님’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이 포함돼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시중에서 10만권이상 팔려나간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베스트셀러이다. ‘우리들의 하느님’은 얼마 전 작고한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산문집이며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4.3제주항쟁을 다룬 소설가 현기영선생의 자전적 소설이다. 둘 다MBC TV 인기프로그램 ‘느낌표’의 권장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 권정생 선생은 나에게 세속적인 욕심과 명예를 버리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전형을 일깨워주신 분이다. 80년대 중반 보도지침 사건으로 서대문 구치소에 있을 때 권정생 소설집 ‘몽실언니’를 읽었다. 나는 집에 있던 ‘불온서적’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후배가 넣어준 이 동화는 내가 잡념을 버리고 감옥생활을 견디게 해준 청량제와도 같았다. 고 권선생은 문학상과 상금을 우편으로 돌려 보내고 ‘느낌표’ 권장도서 선정도 거부한 적이 있다.
국방부의 ‘불온도서’ 선정 내역이 알려진 이후 이들 23종의 책이 다시 잘 팔리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이들 불온서적만을 따로 분류한 코너를 만들어 소개하고 있다. 알라딘은 이들 책이 종전의 5배를 넘는 하루 150권 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질세라 진보적 학자로 널리 알려진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와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자신들의 책이 왜 불온도서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느냐 며 이의(?)를 제기했다.
진 교수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저자 소개를 보면 노골적으로 적화를 선동하고 있는데 왜 배제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국방부는 23권 선정과정에서 출판사측과 검은 거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도서 선정의 기준과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국방부를 조롱했다. ‘88만원 세대’ 등을 쓴 우석훈 연구위원은 “사회과학이 금서가 되는 시기가 돌아왔으니, 사회과학이 찬란하게 꽃피던 사회과학 르네상스가 정말로 오기는 올 것 같다”고 국방부의 행태를 비판했다.
‘불온(不穩)’의 역사는 매우 오래 되었다. 멀리는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부터 히틀러 등 수많은 독재자들이 자유로운 사상의 전파를 막기 위해 책을 불사르거나 학자들을 처단했다. 국내에서도 일제 식민지하에서 일제는 독립운동가들을 ‘훗데이센징(不逞鮮人)’으로 몰아 극형에 처하기도 했다. MB정권이 과거 독재정권에서 끌어온 ‘불온’이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온’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는 한 ‘불온도서’는 ‘권장도서’가 될 뿐이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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