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과 미국 민주주의의 ‘혹독한 겨울’

트럼프의 대선 불복에 따른 정권교체 극복 등 난재 산적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l승인2020.11.2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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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코로나19가 창궐하고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인종차별이라는 부정의에 항의하는 시위는 전국을 뒤덮었는데, 지난 11월 3일 실시된 미국 대선에서 어떻게 트럼프가 여전히 투표참여자의 약 47.3%, 7천3백만명이 넘는(11.18 기준) 미국인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

트럼프의 맹목적인 추종세력은 그렇다 치자. 상대를 악마화하는 분열과 반목을 뒤로하고 치유와 단합을 도모하자는 바이든의 호소에도 아랑곳없이 트럼프의 대선 불복을 막아서기는커녕 그에 동조하는 매코넬(A. McConnell) 상원 원내대표 등 공화당 지도부는 또 무엇인가? 무엇이 미국을 이토록 갈라놓고 망가뜨렸는가? 바이든과 트럼프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지난여름 대선후보를 지명하는 민주당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바이든과 트럼프가 동의한 것은 단 하나, 이번 대선의 역사적 중요성뿐이었다. 8월 20일 후보지명 수락연설에서 바이든이 밝힌 출마의 계기는 2017년 샬러츠빌 사태(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로버트 리의 동상 철거를 반대하며 일어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동)였다.

이에 반해 트럼프는 네오나치와 백인우월주의 시위대가 인종주의 반대 시위대에 가한 폭력을 비판하지 않았다. 이는 모든 미국인에게 행동에 나서라는 경고였고 자신도 ‘미국의 영혼’을 위해서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바이든에게 인종문제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100여년 이래 최악의 보건 위기,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 그리고 실존적 위협이 되어버린 기후변화와 더불어 미국이 직면한 네가지 역사적 위기 중 하나였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이들 위기를 해결하는 데 처절하게 실패했고, 미국을 분열과 분노 그리고 공포의 어둠에 가둬놓았다고 비판했다. 바이든에게 있어 대선은 자신과 트럼프, 빛과 어둠, 미국의 최선과 최악 사이의 선택이었다.

일주일 후 트럼프는 설령 현직 대통령이더라도 백악관을 선거운동본부로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관례를 깨고 성조기로 치장된 백악관에서 후보지명 수락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트럼프는 4년 전 대선 출마를 결심한 계기로 바이든과 같은 직업 정치인이 자유무역협정과 불법이민, 동맹의 군사비 분담 등으로 미국을 배반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기존 패권의 논리를 부정하는 ‘미국 우선주의’, 배외주의와 인종적 민족주의가 결합된 ‘백인 우선주의’, 그리고 기성질서 전반을 부정하는 권위주의적 민중주의로서 ‘트럼프 우선주의’를 앞세워 집권했다.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 대신 ‘글로벌리즘’을 선택해 미국이 외국에 이용당하게 해온 엘리트 전체에 분노했다면, 2020년 그의 직접적인 공격 대상은 그가 4년 동안 ‘위대하게’ 만들어놓은 미국을 부정하는 급진 좌파와 바이든이었다.

트럼프의 관점에서 이들은 ‘중국 바이러스’에 단호하게 입국금지로 대응하고 백신개발에 진력한 공로나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경제를 다시 살려내고 있는 성과는 인정하지 않고, 에너지 개발과 자립을 방해하고 일자리를 앗아가면서 미국을 인종적‧경제적‧사회문화적으로 부정의한 나라로 비판하고 있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난민과 불법이민, 무슬림 테러리스트로부터 미국인의 안전을 지키는 법과 질서의―실제로는 ‘백인 우선주의’―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했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법과 질서 캠페인은 미국을 부정의하고 사악한 나라로 비판하는 급진 좌파,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며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는 시위대, 그리고 그를 방조하는 바이든과 민주당 주지사와 시장들을 향하고 있었다. 바이든은 미국 영혼의 구세주가 아니고 일자리의 파괴자일 뿐이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미국의 위대함 또한 파괴할 것이었다. 대선은 미국의 위대함과 꿈을 지켜낼 트럼프 자신과 미국 예외주의를 부정하는 급진 좌파의 ‘앞잡이’(Trojan horse) 바이든 사이의 선택이었다.

미국인의 선택은 절묘한, 양측이 모두 반쯤은 절망하고 반쯤은 희망을 가질 만한 극단적인 분열과 교착이었다. 트럼프는 아직 개표가 진행 중이던 11월 5일 ‘합법 투표’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며 대선 불복을 공식화했다. ‘트럼프 우선주의’가 대통령직의 사유화와 공화당의 접수(hostile takeover)에 이어 평화적인 정권교체의 기본마저 무너뜨린 것이다. 트럼프 자신의 패배이고 미국 민주주의의 패배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지적한 것처럼 비백인 유권자들의 트럼프 지지가 늘었고 공화당은 상원의 다수당 지위를 지킬 전망이고 하원 의석도 늘렸다. 민주당은 압승하지 못했지만, 최악의 상황인 현직 대통령 트럼프의 재선은 막았다. 11월 7일 승리연설에서 바이든은 역대 최고로 다양하고 폭넓은 연합의 결성을 승인으로 꼽고, 특히 경선 과정과 중서부 격전지역에서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흑인유권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대선 결과는 미국의 영혼을 복구하고 다시 단합하여 코로나19·경제·인종·기후변화의 위기를 해결하라는 분명한 위임이며, 단합된 미국에 불가능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에 단일한 ‘영혼’은 없다. 트럼프의 ‘백인 우선주의’와 구조적 인종주의 극복의 열정은 서로 다른 영혼을 지녔다.

바이든 지지자의 59%가 흑인에 비해 백인이 특권을 누린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거기에 동의하는 트럼프 지지자는 5%에 불과하다. 바이든 지지자의 82%가 코로나19의 극복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보지만 트럼프 지지자는 24%만 그렇게 생각한다. 바이든 지지자의 18%, 트럼프 지지자의 22%만이 상대방 지지자들과 미국의 본질적 가치를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정치의 극단적인 분열과 교착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공화당이 매케인(J. McCain)과 롬니(M. Romney)의 점잖은 보수주의로 복귀할 가능성은 없다. 세련된 혹은 ‘착한’ 트럼프 같은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 공화당을 다인종 노동자정당으로 발전시킬 전망도 나오지만 그것은 대선에서 역대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했고 공화당의 최대 지분을 가진 트럼프가 은퇴한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공통의 적이 사라진 반(反)트럼프 선거연합은 서로 불화하며 바이든 정부에 승리의 지분을 요구할 것이다. 흑인 청년층 등 기층 유권자를 조직해낸 진보의 입장에서 인종과 경제 문제 등에서 구조적 개혁은 필수이고, 이는 당장 하원 의석을 잃은 민주당 중도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자살행위다. 바이든은 오바마와 같은 카리스마가 없고 오바마의 선거연합(Obama coalition)을 재건하지도 못했다.

민주당의 재편은 아무리 빨라도 다음 대선 이후의 일이 될 것이다. 당장은 코로나19의 창궐과 연방정부의 추가적인 실업급여 지급과 세입자 보호조치 등의 만료로 인한 경제위기, 그리고 트럼프의 대선 불복에 따른 정권교체의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혹독한 겨울’이 바이든을 기다리고 있다.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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