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건국 60주년 발상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뉴라이트 세력의 주도로 이루어진 ‘건국절’ 강조의 흐름위에 있다. 뉴라이트 진영은 지난해는 물론 재작년에도 8·15 때마다 '건국 00주년' 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어왔다.
맨 첫 행사는 2003년 노무현 정권 때 자유시민연대 등 보수단체가 주도한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 국민대회'였다. 이후 '건국절'을 부각시키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보수진영에서는 지난해 11월 ‘새 정부’의 등장을 예견이라도 한 듯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물론 중심에는 뉴라이트 학자들이 있었다.
이후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이 단체를 기반으로 지난 5월 국무총리산하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들은 주로 ‘이승만 영웅 만들기’에 집중한다. 과거사는 지우고 반공주의, 국가주의를 다시 논의의 장으로 불러들이려는 시도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시도는민족의 정체성, 정통성 그리고 헌정질서를 완전 무시한 처사로 다음과 같은 점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건국절은 대한민국헌법 전문이 명시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함으로써 현재의 헌정질서를 파괴한다. 대한민국 건국이 언제 이루어졌는가는 1948년의 제헌헌법 뿐만 아니라 1987년 6·10항쟁이후 개정된 현행 헌법전문에 비추어 의문의 여지가 없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경축식에 내걸은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하식'이라는 대형 현수막이었다. 당시 민족 지도자들조차도 그 경축식을 정부수립으로 축하하였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그 때 '대한민국 30년'이라는 건국 연호를 언급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출범하였음을 강조하였다. 다시 말해 1919년 3·1 민주혁명으로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건립을 1919년 4월 14일에 내외에 선포하였고, 중국에 망명정부를 수립하여 일제에 항거해 오다가 일제의 패망으로 1948년 새로이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그리고 광복절은 국회의 결의에 의해 국경일로 지정받았고, 온 국민이 이를 경축하여 59년이란 세월이 흘렸다. 그 관례와 법적 근거에 의하여 금년의 광복절을 ‘정부수립 60주년기념행사’로 치루는 데 대한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이것을 굳이 건국절로 이름을 바꿔 대대적인 국민적 행사를 치룬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임시정부의 광복투쟁 업적을 폄하하려고 하는 뉴라이트의 반민족적 역사관을 수용하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축출한 4·19학생의거의 역사적 의의를 부정하고, 반민주적 권위주의적 역사관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둘째, 건국절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 수립 시까지는 1910년 한일 합방조약이 유효하다는 일본의 주장을 합법화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일제식민역사를 합법화하려는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된다. 이는 한국정부가 주장해온 일본군위안부문제, 독도문제 그리고 간도 문제 등 과거청산문제에 대한 우리 측의 법적 타당성의 근거를 약화시킨다.
셋째, 건국절은 대한민국정부를 완성국가로서 간주함으로써 남북한의 현재 분단상태를 기정사실화, 고착화하고, 나아가 더 이상 남북한 민족통일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다. 이는 우리 헌법의 전문과 제4조 등 평화통일 지향 조항에도 정면 위반된다. 만약에 1948년 8·15를 ‘건국절’로 본다면, 최소한 헌법적으로는 우리 헌법은 완성헌법으로써 더 이상 통일의 길은 없다.
넷째, ‘건국절’로의 변경 행사는 국가의 정체성 및 정통성의 변화를 가져오는 사항인 바 학계의 논의와 국민적 여론수렴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거치지 못한 것은 민주적 절차의 위반이다. 대통령 훈령으로 헌법적 본질사항은 바꿀 수가 없다.
다섯째, 우리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미국도 1776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기념하고, 중요시한다. 1776년 7월 4일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신생국인 미국도 1783년 9월 파리강화회의의 독립인정과 1789년 4월 30일 미 연방정부 수립의 과정을 거쳐 건국했지만, 독립을 선언한 1776년을 건국원년으로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했다.
여섯째, ‘건국절’행사는 6·15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정면 부인하는 것으로 현 한반도 시대 정세와 정신에도 전혀 맞지 않다. 21세기가 8년째를 마무리하는 엄중한 시점에 있는 우리 민족은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6·15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에 기초해 정전체제를 종식, 민족통합의 대도를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뉴라이트의 문명사관에 기초해 ‘건국절’로 하게 되면 “문명화된 대한민국정부건국”이 중심에 서게 되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이 되고 만다. 그러면 이들의 역사관은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고 오히려 냉전시기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사수하고자 했던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보다 본질적이 된다.
이명박 정부의 이같은 행보는 나라 안팎으로 국가의 정체성을 부인할 우려가 있다. ‘건국절’은 현재 국민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향후 온 겨레와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이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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