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유령들의 사회

[이주원의 티핑포인트] 이주원l승인2008.08.25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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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죽어 무덤에 묻혀 있던 유령들이 깨어나 서울을 활보한다. 80년대 도로를 점거한 채 대학생들과 시민들을 무차별 연행하던 백골단이 경찰기동대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이 백골 유령이 지난 8월 15일에 보여준 모습은 80년대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강제연행, 폭행, 색소 물대포 등 아수라장 같은 장면이 연출되는 걸 인터넷으로 지켜보면서 난 80년대로 되돌아가는 착시현상을 느꼈다.

유령들의 부활은 이명박 대통령과 촛불의 상관 속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던졌다. 이 대통령의 강남과 교회, 고대에 대한 뜨거운 애정, 아니 집착은 국민들과 소통의 부재로 이어졌다. 소통의 부재는 곧 광우병 쇠고기 수입문제가 기폭제가 되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촛불저항’의 역사를 기록하게 해주었다. 이 대통령이 멍석을 깔아 준 ‘촛불집회’의 ‘촛불’들 중에 또 따른 유령이 깨어나 활보했다. 30대 후반과 40대 초중반으로 구성된 ‘전대협’이란 유령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배나온 이 유령은 백골유령과 오버랩이 되어 우리 역사가 80년대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도 주었다.

전대협 유령에게는 더 이상 쇠파이프와 화염병이 없었지만 백골 유령은 80년대 그 때와 같은 불법집회 엄단이라는 법제도와 제도 뒤에 숨은 야만의 폭력이 여전하다.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무장하지 않은 전대협 유령은 촛불이 사그라지면서 다시 무덤 속으로 돌아갔지만 백골 유령은 2008년 8월 서울 한 복판에서 여전히 민주공화국의 주인인 시민들을 위협하고 공포심에 떨게 한다.

백골 유령이 아무리 시민들에게 공포를 준다고 하더라도 피해가면 그뿐인지라 사실 그다지 별스럽지 않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그런데 촛불이 사그라지면서 가공할 공포로 무장한 유령들이 속속 무덤에서 깨어나고 있다. ‘부동산 규제완화’라는 유령이 태양의 열기가 힘이 빠질 무렵이던 8월말에 깨어났다. 이 유령은 그 위력이 너무 강력해서 지난 참여정부 시절 대다수의 국민들이 겪었던 부동산가격 폭등의 악몽을 되살릴 수도 있는 메가톤급의 유령이다.

이 유령이 부활하자마자 악마의 전주곡이 모든 언론을 도배하면서 울려 퍼지고 있다. 재건축 재개발규제 완화, 신도시 개발, 분양가상한제의 무력화, 전매제한 완화…. 듣기만 해도 2003년부터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집값 상승의 악몽이 내 어깨를 짓누른다.

두렵다. 산 사람들이 열정을 바쳐 몰입해도 세계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데 죽은 유령들이 대명천지에 거리를 활보하면서 산 사람들을 압박하고 구속하고 위협하고 고통에 빠트린다면, 더욱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누구냐? 이 모든 유령들을 부활시켜 서울을 디스토피아적인 좀비의 거리로 만드는 이가. 국민들의 희망 속에 당선된 그가 임기 몇 달 만에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고 유령들을 부활시켜 과거로 회귀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제 더 이상 깨울 유령이 없다고 안심하지마라. 그의 심복 이재오 전 의원이 촛불에 의해 지옥의 심연으로 전락한 ‘대운하유령’을 깨우려 작업질을 하고 있으니까.

촛불 이전과 촛불 이후는 분명 달라야 한다. 그런데 그 다름이 촛불 이전은 산 사람들의 세상이었는데, 촛불 이후는 죽은 유령들 세상이라면 너무 비극적이지 않은가?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세상이 촛불 이전이라면 촛불 이후 세상은 희망이 올곧이 되살아나야 한다.


이주원 사단법인 나눔과미래 지역사업국장

이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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