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편으로 러시아와 그루지야와의 전쟁은 발발한지 엿 새 만에, 유럽연합(EU) 순회 의장국인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평화 중재안을 받아들여 일단 휴전상태에 돌입했다. 그러나 '그루지야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로 비화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던 러시아의 재부상은,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대국주의 야망가의 등장과 연 26%의 고성장률을 가능케 한 오일머니가 결합한 결과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는듯 하다.
냉전이 종식된 지 20여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재부상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나의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생각은 이 거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힘이 어디로 향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올림픽을 계기로 그동안 은인자중 감춰온 빛을(韜光養晦) 이제는 거칠 것 없이 내비칠 것임을 예견한다. 또한 많은 이들은 러시아의 재부상과 이번 그루지야전쟁은 신냉전 체제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닐까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과연 어떤 길을 갈 것인가? 그들 앞에는 예전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는 대의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두 나라 모두 모양새가 어떠하든 대국주의와 민족주의가 꿈틀거리고 있는데, 그들 앞에는 패권적 민족주의냐 협력적 민족주의냐라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을 뿐이다.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냐에 따라 세계, 동북아, 한반도 질서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두 거대국가가 후자의 길을 걷게 되면, 우리가 바라는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공존공영의 동아시아평화공동체로 나아가는데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전자의 길을 걷게 된다면, 국제정세는 대단히 불안정해질 것이고 한국은 동맹국 미국과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다. 북한도 냉혹한 국제정치의 한가운데서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은 이제 고래싸움에 등이 터졌던 구한말의 새우에서 돌고래로 성장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보면, 네 마리의 메기(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와 살아야하는 붕어의 처지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이는 한국이 세계 10위권 진입을 꿈꾸는 경제강국이지만, 지정학적인 약소국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뜻 일게다. 한반도는 인구, 영토, 국력 제반측면에서 초일류강대국에 둘러싸여 살 수밖에 없다.
이 거대한 고래(메기)들 틈에서 살려면, 우리는 돌고래처럼 유연하고 평화지향적이지만 매우 영악스럽고 붕어처럼 물살을 가르는 날쌤과 단합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 국내에선 우물안 개구리처럼 ‘건국60년이냐 아니냐’는 담론을 둘러싸고 애국파(국가주의)와 애족파(민족주의)간의 좌우이념전쟁이 아직도 한창인 몰골을 하고 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처연함을 느끼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이제 우리는 규모와 상황과 전통이 다르지만, 유럽 대국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오히려 유럽의 평화중심국가로서 초일류 정치경제선진국의 지위를 구가하는 스위스를 유심히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라 전역에 핵무기 폭격에도 견딜 수 있는 지하벙커 시스템을 구축한 안보체제를 바탕으로, 지역 공동체에 기초한 복지제도와 자치권력을 강화하는 현존하는 제도로서 시민중심의 실질적 민주주의 정치모델과 더불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구현하는 초일류 경제선진 시스템 말이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실사구시와는 거리가 먼 이념적인 정책이나 비현실적인 관념적 평화노선을 넘어서야 한다. 이제는 좌우의 경직된 대립구도에서 사이 넘어(between and beyond)의 창조적 발상법이 필요하다. 대다수 국민을 안심시킬 정도의 안보체제와 성장-분배의 선순환을 구현하는 초일류 경제선진 시스템을 바탕으로 생태, 문화, 여성, 평화와 같은 대안의제에 기반을 둔 사회권력과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자치권력 그리고 다차원적인 소통과 협치(거버넌스)의 정치력이 융합되는 국가비전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한국형 스위스모델 정도의 국가비전을 제시해야 진보는 물론 보수성향의 국민들을 설득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임진철 생명평화재단 대표, 중앙민족대 객좌교수
임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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