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도, 농촌도텅 비었는데...가을하늘만 공활

남효선

남효선

올해 들어 말 바꾸기가 유난히 심한 경우를 두 가지 든다면, 하나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기조요, 또 하나는 기상청의 일기예보이다. 올 여름 내내 기상청 일기예보는 거의 불발이었다. 급기야 기상청은 내년부터 장마 일기예보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길고 무덥고, 지루했다’는 세간의 지적처럼여름 내내 땡볕과 예고도 없이 쏟아 붇는 빗속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서 있었다.

주말까지 비를 퍼 붇더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파랗게 열렸다. 맑은 햇살과 바람을 받으며 작물은 이내 생기를 되찾는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맑고 바람은 설렁거리는데 여전히 사람들 가슴은 허허롭다. 가진 것이 많은 자들은 땡볕과 빗속에서 여름을 즐겼듯, 다시 맑은 가을을 즐긴다.

세상을 가을볕이 어루만지는 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다. 이명박 정부의 이념적 편 가르기가 급기야 종교 편 가르기로 전화된 것이다.

불교계는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며 이명박 대통령 사과,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 등 4개 요구조건을 제시하고 시국 투쟁에 돌입했다. 이른바 중앙 메이저언론은 앞 다투어 ‘불교계가 심상찮다’, ‘한나라당. 청와대 입장 조율’, ‘추석 전 불교계 달래기’ 등 연일 종교편향 문제를 대서특필했다.

그러다 최근 조중동은 슬그머니 ‘불교계 오랜 숙원 해결’ 등을 끄집어내며 ‘당근론’을 대거 흘린다. 종교편향적 국정운영을 따갑게 바라보는 국민의 눈초리를 ‘우는 놈 떡 하나 더 주기’ 식으로 호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양도세 등을 대폭 낮추는 감세정책을 발표했다. 돈 있는 계층의 굳어 있는 소비심리를 자극해 소비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감세정책의 배경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강부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애기이다.

정부는 5일, 서민경제 살리기를 위한 ‘67개 과제 생활공감정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특히 “국민생활에 파급효과가 큰 10개 과제를 선정, 차질없이 시행키로 했다” 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소득세 환급금 찾아주기, 전통시장 영세상인 소액 저리대출 확대, 농가 부채 경감을 위한 농기계 은행사업 실시, 빈곤층 아동에 대한 양육비 지원, 장애아동 재활치료 바우처 확대 실시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하다. 국민들의 떨떠럼한 표정에는 ‘실시 돼봐야 실시되는 것’이라는 정부에 대한 오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는 탓이다.

어민들이 수개월 째 무리지어 바다만 멀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고유가로, 원자재 상승으로 바다에 배를 띄울 엄두조차 못 내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정작 국제 유가가 급락했어도 여전히 출어를 포기하고 있다. 주야로 흥청거리던 항구는 텅 비었다.

지자체에서 어민들의 아우성에 떼밀리듯 ‘어민 면세유 지원방안’을 마련했으나 집행 자체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추석을 앞두고 고깃배를 띄워야 주머니에 푼돈이라도 들어 올 터인데, 추석이 코앞에 다가와도 ‘곧 푼다, 푼다’고 하는 유류지원비는 깜깜 무소식이다.

가슴 속이 바다 속처럼 시퍼렇게 멍들기는 산간 농촌마을도 마찬가지이다. 여름 내내 방송에서는 바캉스다 피서다 떠들어댔지만, 정작 객지에 어렵게 발붙인 자식놈들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도 없이 먹고사는데 정신이 휘둘린 터라 언감생심 ‘집에 한번 댕겨 가라’는 말도 입 밖에 못 꺼내는 게 노부모 심정이다. 개 짖는 소리조차 없이 산간 마을은 고요하다. 가을 따사로운 볕은 한사코 양철지붕을 달구고 키가 훌쩍 커버린 기장만 잔뜩 고개를 젖히고 있다.

하늘은 여전히 높고 햇살은, 바람은 바다를, 들을어루만진다.

남효선 기자

남효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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