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작고한 소설가 이청준 씨의 대표작으로 ‘당신들의 천국’을 꼽는다.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그래서 ‘죽은 자만 말을 하는 침묵과 죽음의 섬’ 소록도를 천국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병원장들과 주민의 갈등, 그리고 화해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자유없는 권력은 증오를 낳고, 사랑없는 권력은 강요된 의무만을 요구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1974년에 최초로 출간됐으니 벌써 30년이 넘었다.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26조원 규모의 감세안과 정기국회에서 ‘좌편향 정책’을 담은 법안을 솎아내겠다는 여당의 투지를 보면서 ‘당신들의 천국’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당신들의 천국’ 아니 ‘부자들의 천국’을 만들겠다는 노골적인 의도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부르짖는 기독교 신자의 막무가내식 선교처럼 ‘장로 대통령’은 ‘부자 천국, 서민 지옥’을 꿈꾸는 것 같다. 이청준의 혜안이 무섭다.

이명박 정부가 1일 발표한 감세안은 한마디로 부자를 위한 것이다. 앞으로 4년간 16조6천억원의 소득세를 깎아 준다.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연 소득 1억원이 넘는 부자는 99만원, 2천만원의 서민은 4만원의 혜택을 보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정부는 과세표준 8천800만원(연봉 약 1억2천만원) 이하를 '중산서민층'이라고 분류했다. 1년 후부터는 매년 8조7천억원 가량 법인세를 인하한다. 이 혜택의 3/4은 0.8%의 대기업에 집중된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에서 33%로 대폭 완화했다. 상속세는 2007년 30만명의 사망자 중 0.7%에 해당하는 2천600여명의 부자들만 내는 세금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이번 감세안이 부자를 위한 세제 개편안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연 소득 1억원 이상, 상속재산 30억원 이상의 '중산서민층'과 0.126% 기업을 위한 감세 선물폭탄"이라고 비난했다. 경실련도 "불로소득인 상속·증여세율을 소득세율과 유사한 수준으로 인하하는 것은 부의 재분배 기능에 대한 논란과 심각한 조세회피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감세 혜택이 부자들에게 집중되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줄어드는 세수로 인한 재정악화로 서민에 대한 복지혜택이 줄어들 것은 불문가지이다. 조세연구원의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추정한 바에 따르면, 복지재정을 20조원 늘릴 경우 저소득층은 가구당 125만~236만원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

거꾸로 해석하면 20조원의 감세는 가구당 125만~236만원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세금을 줄이면 기업투자와 일자리가 증가하고 재정악화는 세원이 늘어나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한물간 레코드판을 틀어놓고 있을 뿐이다. 감세의 혜택이 집중될 대기업들은 현금을 쌓아놓고도 투자하지 않고 부자들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소비하고 있는 현실은 안중에도 없다. ‘강부자 내각’에겐 서민의 아픔은 보이지 않고 부자들의 환호만 들리는 모양이다.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은 정기국회에서 더욱 극성을 부릴 전망이다. 과반을 훨씬 넘는 171석을 확보한 거대여당인 한나라당은 소위 ‘좌파정책 적출’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보수입법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개정된 1천471개의 법령을 솎아내겠다고 공언했다. 한나라당은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공기업 민영화, 부동산 규제완화 등 대기업과 부자를 위한 입법을 추진할 방침이다. 강부자 내각에 걸맞은 ‘강부자 정당’을 자처한 셈이다.

반면 시민의 입은 철저하게 틀어막을 작정인 모양이다. KBS 2TV와 MBC 민영화, 신문?방송 겸영확대는 물론, 포털규제와 시위 집단소송제를 통해 정부에 대한 비판은 철저하게 봉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민주주의 성과물을 한꺼번에 없애버리겠다는 객기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정부와 여당의 밀어붙이기식 부유층 편향정책에 대한 전문가들의 여론은 매우 비판적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치분야 전문가 72.8%가 이명박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에 기대하지 않으며, '충분한 여론 수렴 없는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56.1%)과 '외교 안보 등 국정운영 부재'(34.1%), '종부세 완화 등 보수편향적 정책 노선'(3.5%) 등을 국정운영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지난 6개월의 국정운영 평가는 100점 만점에 평균 35점에 그쳐 낙제를 면치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이 나라를 ‘국민의 천국’이 아닌 ‘부자들의 천국’으로 만들려는 기도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국민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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